2025 보스톤 미국 건축사협회 AIA 컨퍼런스 참여기 2025.8

2025. 8. 31. 10: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Story about participation in the AIA Conference on Architecture & Design 2025 in Boston

 

 

 

한 단체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고 그 회원들이 사회적인 인정을 받는지를 가늠할 때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은 통상적으로 아래 범주에 속할 것이다. 회원 수가 몇 명인가? 그 단체의 회원들이 사회적 영향력이 있고,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가? 혹은 그 단체가 관리하는 기금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가 등.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건축사 단체인 미국건축사협회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는 작년 12월 기준 회원 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처음 창립된 1857년 단 13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이 단체가 이처럼 성장한 것은 미국 경제와 사회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과 더불어 건축이 가지는 중요성이 미국에서 그만큼 중요한 화두가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단체가 생긴 것은 노예제도에 대한 의견분열로 남과 북이 격렬하게 대립하다가 결국 4년간의 전쟁 끝에 70만 명의 인명이 희생된 남북전쟁 직전이다. 그때 뉴욕에 모여 이 협회를 창립한 회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작은 단체가 창립 후 168년이 지나서 10만명을 돌파하는 세계최대의 건축단체로 성장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원수 10만명을 돌파한 2024년 12월 AIA 의 홈페이지 공고

 

이런 역사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AIA의 홈페이지에는 “우리는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우리가 기준을 만든다(We don't follow standards, we set them.). 우리는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동력을 제공하고, 더 나은 세계가 되도록 디자인한다(We are a force for positive change. We are designing a better World.) 는 슬로건을 전파한다.

2025년 AIA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열정,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열망, 가장 높은 수준의 실무에 대한 책임의식 (Passion for design, desire to change the World. A Commitment to the highest standards of practice)”을 새로운 구호로 주장한다.

금년 AIA 컨퍼런스가 열린 보스톤 컨벤션 센터

 

미국건축사협회가 매년 미국 내 다른 도시를 돌아가며 AIA 건축 컨퍼런스를 개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행사를 통해 회원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우수 회원과 탁월한 디자인에 대한 포상, 상호친목 증진, 건축에 대한 사회인식 제고에 힘쓰면서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 올해의 AIA Conference, 2025는 미국 동부의 유서 깊은 도시 보스턴에서 열렸다. 이번 6월 4일부터 8일까지 열린 AIA Conference on Architecture에는 13,000명의 회원이 참여해 다시 한번 성대한 건축잔치를 열었다.

AIA 컨퍼런스 대회장

아시아계 여성회장 - 에벌린 리 Everly Lee

올해 2025 보스턴 대회 개막식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올해 AIA 회장을 맡은 에벌린 리 Everly Lee 회장이다. 작년 회장인 Kimberly Dowdell과 그전 회장 Emily Grandstaff-Rice 회장 뒤를 이어 다시 여성 회장이 미국 건축계를 이끌고 있다. 그녀는 AIA의 101대 회장이다. 여성회원 비율은 이제 AIA 전체 회원의 25%를 넘으면서 여성 건축사들이 더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중국계 이민자 부모를 따라 뉴멕시코에서 성장한 그녀가 성장과정에서 자주 받은 질문은 너 여기 출신이니? (Are you from here? )라는 것이었다. 이민자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친 것은 아시안이 미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튀지말고 줄 잘지키고 미국애들의 몇배의 노력을 기울이면서 기다리면 여기서 성공할 수 있을거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부모 말을 따라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 이민자 가정이 통상 밟던 성공방정식을 따르던 그녀는 건축사의 길을 택하면서 부모의 기대에서 이탈한다.
또한, 그녀는 전통적인 AIA회장이 밟던 유명 건축사사무소 근무, 건축사 취득, 업계사람들의 기대를 받는 성공가도 질주 라는 공식에서도 탈피한 사람이다. 건축사무소 근무 경험 이후 실리콘 밸리의 디지털 기업 슬랙(Slack Technology)에서 일하면서 건축과 디지탈 혁신 사이에 가교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지금은 건축관련 산업에 전반적인 컨설팅과 인기 팟캐스트 팟캐스트 진행을 하는 몇 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협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포용적인 건축이 되는 인클루시브한 건축환경을 만들어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녀는 후배 여성 건축사나 소수 인종 건축사들을 위해서라도 협회의 문화와 구조를 더 민주적으로 바꾸는 디딤돌이 되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되새기며 결국 AIA 회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지속되는 건축의 변화와 도전 : AI의 지속적인 관심 
몇 년간 AIA 컨퍼런스에 계속 참석해 보니, 지금 건축이 당면한 과제와 이슈들이 기후위기 대응과 AI를 통한 생산성 혁신 두가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 달성해야 할 목표가 건축사들의 전통적인 과제인 “쾌적한 공간, 살기 좋은 도시의 디자인”을 훨씬 넘어서는 “기후위기 대응” 같은 전 지구적인 과제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것은 결국 “산업 생태계의 전환”까지 포함하는 거대한 과제로 연결된다. 이로 인해 건축사들이 당면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과제도 점점 더 거대하고 기술적으로 복잡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건축설계 업무는 난이도가 증가하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거대 과제들의 해결을 위해서는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의 연대가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이슈인 “기후위기 대응”의 의제는 2015년 가을에 전 세계가 프랑스 파리에 모여서 비준한 파리협정(COP21) 체결한지 이제 십여년이 경과했고, 지금 전세계의 모든 산업은 과거의 에너지 절감에서 이제 탄소제로(Carbon-free)를 달성할 수 있는 디자인 방법론들을 교육하고, 실행하는 단계에 도달하고 있다.

또, 위에 다룬 많은 과제들을 해내기 위해서는 건축설계의 업무 영역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할 생산성 혁신 논의는 설계 자체의 생산성이나 생존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산업 전체가 연결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올해 AIA 컨퍼런스에 선보인 세미나 프로그램 가운데 AI 관련 강좌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AIA 컨퍼런스와 함께 열리는 EXPO에 출품된 자재나 기술들을 둘러보면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세계의 추세는 디자인과 시공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뿐 아니라, 건물 생애 주기 동안의 탄소를 분석하는 ‘탄소 라이프사이클 분석’이 요구되고 있으며, 이는 건축 자원의 순환 재생까지 확장된 ‘순환성(Circularity)’ 개념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건축사사무소가 이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AI의 활용 없이는 어렵다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다.

데보라 버크 사무소 프린스턴 대학 기숙사동/ 2022년 완공 © 데보라 버크 홈페이지

 

2025 AIA 골드 메달 과 우수 건축사사무소 Firm Award : 데보라 버크 와 LPA 
AIA는 매년 컨퍼런스 행사 중 전 미국에서 1인의 건축사와 1곳의 건축사사무소를 선정해 가장 큰 영예인 ‘골드 메달 (Gold Medal)’을 수여하고, 1곳의 사무소에는 ‘우수 건축사사무소상(Firm Award)’을 수여한다. 매년 동료 건축사들의 귀감이 될 만한 건축사사무소 한 곳을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만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정된 사무소들은 역사와 개성,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역량이 모두 뛰어난 곳들이다.

올해의 골드 메달 수상자로는 여성 건축사이자 오랜 기간 예일대학교 건축학과 학장으로서, 실무와 건축이론의 통합을 위해 힘써온 데보라 버크(Deborah Berke, FAIA)가 지명됐다.

1982년 뉴욕에서 자신의 사무소를 개소해, 작지만 훌륭한 디자인과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40년간 지속해 온 그녀의 끈기와 집념이 수상의 영광을 가져왔다. 그녀는 자신의 경력에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낸 인물이다. 자신의 사무소에서 건축 실무를 하며 예일대학교 건축학 교수로서 학문을 병행하고, 사회적인 발언도 꾸준히 이어 온 그녀의 사무소를 특징짓는 용어는 ‘평범한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확장하는 것’이다 (approach to architecture celebrates the extraordinary within the ordinary). 그녀의 사무소는 오랜 기간, 남들이 외면하는 풀뿌리 민주주의 단체나 시민 예술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단체의 오피스 리모델링이나 대학 기숙사 설계를 맡아 오며 버텨 왔다. 그녀의 끈질김 없이는 이 작은 사무소가 살아남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올해의 Firm Award는 LPA 디자인 스튜디오가 수상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1965년 설립되어 6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이 건축사사무소는, 소규모 디자인 오피스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환점을 1990년대에 맞이하게 된다. 미국 내에서 친환경에 대한 의식이 가장 먼저 태동한 캘리포니아의 사회 분위기를 재빨리 간파한 그들은, 주정부와 의회가 ‘Title 24’라 불리는 에너지 효율성 강화를 위한 규제를 도입하자,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해당 기준보다 25% 더 높은 에너지 절감 수준을 적용해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짓기 시작한다. 이러한 방향 전환의 배경에는, 단순히 건축설계에만 집중한 전통적인 방식이 아니라 기계, 전기 설비, 친환경 디자인을 포함한 다학제적 통합 디자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노력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주 최초로 LEED 등급을 받은 오피스를 설계하며 새로운 인증 체계와 에너지 성능에 대한 인식을 키운 그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선량한 시민’이 되고자 하는 건축주와 사용자들에게 어필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꾸준히 확장해왔다.

작년 AIA Firm Award를 받은 퀸 에반스(Quinn Evans) 사무소가 설립 이후 40년간 신축보다는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과 재생이라는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 온 점을 감안하면, 최근 미국에서 인정받고 경의를 표하는 건축사무소의 새로운 모범은 도시에 존재하는 건축물군의 가치를 살피고, 새로운 발견을 통해 시민들에게 그 가치를 알리는 데 집중되고 있는 듯하다.  

LPA 가 디자인한 어린이 친환경 유치원 Environmental Nature Center Preschool © LPA 누리집

 

대한건축사협회 - MIT Senseable City Lab 교류회 / KIRA - MIT exchange
건축사협회 대표단은 AIA 컨퍼런스 기간 중 바쁜 일정 가운데 MIT 공과대학 건축도시대학(School of Architecture + Planning at MIT)을 방문해, 첨단 센싱 기술을 통해 도시 문제 해결에 연구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센서블 시티 랩(Senseable City Lab)의 파비오 두아르테(Fabio Duarte) 교수와 면담하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이 랩이 지난 20여 년간 집중해 온 것은, 센싱 기술을 활용해 도시의 교통량 분산, 쓰레기 처리, 가로수 관리 등의 일상적인 문제에 시민을 참여시키고, 빠른 피드백을 통해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 랩이 그간 연구한 모범 사례는, 건축사들이 흔히 간과하기 쉬운 도시 운영의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하며, 한국의 스마트 도시 기술이 한 단계 진일보할 수 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느꼈다.

MIT 공과대학 센서블 시티 랩 교류회를 마치고 파비오 두아르테 교수와 기념쵤영한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김항년 건축사교육원장

 

한국계 기조연설자 / Korean Keynote speaker - 이 다미 Dami Lee
매년 AIA Conference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은 기조연설의 연사들이다. 이번 컨퍼런스 마지막 날 하이라이트로 등장한 연사는 한국계 이다미(AIA) 건축사였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200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기 유튜버이자 건축사로 활동 중인 그녀는, 건축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을 얻지 못한 실망의 시기에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소개했다. 자신이 건축주를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 건축주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생각에 공감하고 사무실을 찾아오게 된 경험을 들려주며 청중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한국계 인사로 유일하게 AIA 강연에 나선 이 다미(Dami Lee)의 강연

 

국제 회장단 포럼 / International Presidents Forum 
세계 최대 건축사 단체의 중요한 행사인 만큼, 마지막 날에는 세계 각국의 건축사 단체 회장단이 AIA 회장단을 방문해 세계 건축의 동향과 각국의 고민을 토론하고, 공통의 과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매년 마련된다.

대회 마지막 날 열리는, 각국 건축단체 회장들만 초대받는 자리인 국제 회장단 포럼(International President Forum)에는, 올해 AIA 회장인 에벌린 리(Evelyn Lee)와 내년에 회장을 맡을 일리야 아자로프(Ilya Azaroff) 당선자 등이 총출동해, 각국 회장들과 함께 건축이 당면한 과제를 주제로 포럼을 열었다.
이번 포럼에서는 기후위기 대응과 건축단체의 실천적 역할, 각국 주택정책에서 건축사의 참여 방안 등에 대해 짧지만 심도 있는 논의가 이뤄졌고, 각국의 사정을 청취하며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때 상호 연대하고 경험을 공유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번 프레지던트 포럼의 마지막에는 김재록 회장이 FIKA 대표회장 자격으로, AIA 회장이 수여하는 Presidential Medal을 수상하며 명예 AIA 회원(Honorary Member)으로 추대되는 영예로운 자리가 마련됐다. 건축계의 리더로서 그간 건축계를 위해 헌신해온 공로가 인정받은 이번 수상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건축사협회 전체가 받은 국제적 인정과 격려라고 볼 수 있다.

International Presidents Forum 에 참석한 김재록 KIRA 회장
김재록 회장 명예회원 수여



 

글·사진 이건섭 Rhie, Gibson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회 위원장

 

이건섭 건축사 · 자유기고자 (주)스튜디오5 건축사사무소

 

대한건축사협회 국제위원장이자 (주)스튜디오5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다. 연세대 건축과와 대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삼성미술관, 고려대 백주년기념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미국 Virginia Tech에서 교환교수로 건축역사 및 이론을 가르쳤다. 지은 책으로 네이버에서 오늘의 책으로 선정된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있다.

gibson.rhi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