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8. 31. 11: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BLUE CUBE
Technology expanding based on constructability
평범한 평일 오후 개포동에 위치한 BLUE CUBE 앞 거리는 유독 더 활기찬 모습이었다. 거리에서 한 개 층 들어올려진 입방체 볼륨은 그 조형적인 단순함 덕에 이웃한 건물들과 비교되는 현대적인 경쾌함을 갖고 있었고, 세심하게 조정된 비례를 갖고 있는 ‘넓고 높은 창’을 통해 ‘이웃의 생활상(近隣生活)’을 도시로 투영하고 있었다. 건물의 무게감을 의도적으로 지우려는 듯, 반복되는 창호가 만들어내는 격자형 입면을 따라 계획된 가볍고 세장한 현대판 코니스(Cornice)들이 만들어나가는 기하학적 질서와 양감을 쫓아가다 보면, 지속적으로 변화하게 될 임대공간 프로그램 자체가 건축과 도시의 입면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갈 것이라는 현대 도시건축 해법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었다.
완전한 변신(Surgical Treatment)
건축사가 수집한 사진과 도면자료를 통해 알게 된 1970년도에 준공된 기존건물은 저층부의 기둥-보, 상층부의 내력벽 구조가 혼합된 형식의 건물이었고, 입면 역시 구조형식이 그대로 드러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5층짜리 타일벽과 슁글지붕 건물’이었다. 2층과 3층 코너가 특이하게 모따기가 되어 당시 설계자의 조형의지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라고 건축사는 설명했다. 기존의 기둥과 보를 보강하면서 모든 외벽은 철거되었고, 내력벽은 철골기둥-철골보 형식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기존건물의 평면 궤적을 거의 그대로 지켰다는 건축사의 설명이 놀라울 만큼,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적 덧댐이나 떼어냄 없이도 이 건물은 현대적인 조형성을 획득했고, 입면은 새로운 구조 형식을 통해 자유를 얻었고, 공간은 동시대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에 적합해졌다. 건축의 복잡함이 단순함으로 치환되며 건축의 언어들이 더욱 명료해졌다.
현장에서 볼 수 있었던 BLUE CUBE 외피의 입체감은 꽤나 복합적인 양상을 띠고 있었다. 첫째로 기둥모듈 복제에서 시작되었을 수직분할 면의 위치조절을 통해 정면 4개의 창들은 서측 방향(유리코너가 있는 방향)으로 그 크기가 조금씩 작아지고, 이는 다소 경직될 수 있는 격자패턴에 운율감을 부여한다. 둘째로 알루미늄 시트를 접어서 만든 날렵한 비례의 수직/수평 띠들과 판들이 서로 다른 수평면(Plane)상에 위치하면서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그림자들은 기하학적 그래픽 패턴으로 읽히면서, 원재료의 금속성 대신 순수한 분절과 구성(Composition)을 강조한다. 셋째로 수직 금속띠장 사이에 채워진 미색의 세라믹타일은 유리와 금속으로 구축된 입면 요소들 사이에서 그 온화한 빛과 질감을 존재감 있게 드러낸다. 다소 낯설고 미묘한 재료들의 조합방식은 획일적인 도시건축의 재료감각에 대한 건축사의 재치 있는 발언으로 이해된다.
구축성과 다듬어나가는 기술(Tectonic Articulation)
이근식 건축사는 본인이 주로 사용하는 시그니쳐(signature) 재료가 ‘아직’ 없다. 다양한 재료의 특성과 가능성을 연구하고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게 새로운 방식으로 구축하는 것이 건축행위의 주된 즐거움이라는 건축사의 말을 들으니 이해가 간다. 성수동에 위치한 정빌딩 (2020.3)에서 건축사가 구현한 물결무늬 콘크리트가 좋은 예이다. CNC 밀링으로 모양을 낸 압축 스티로폼을 콘크리트 거푸집에 붙여서 콘크리트 타설 후, 층간타설 이음매를 현장에서 갈아낸 이 실험적인 형상의 콘크리트 벽은 최종적으로 요구되는 품질과 결과물을 얻기 위해 수십번의 목업테스트를 통해 디테일과 시공법들이 조정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러한 물결모양을 또다시 트레이싱하여 만든 웨이브 금속두겁 디테일을 보면, 이미 정형화된 미감 및 물성을 갖는 소위 ‘모두가 다 아는 노출 콘크리트’에 대한 건축사의 도전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재료의 구축방식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무겁기만한 재료의 성질에 재치 있는 표현을 결합한 이 웨이브월이 도시로 전달하는 감각은 여전히 새롭다.
새로운 재료의 실험을 즐기는 만큼, 건축사의 프로젝트별 작법도 특정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하다. 이는 건물이 담고 있는 프로그램의 본질과 그에 대응하는 건축 공간의 원형, 그리고 그것을 구축하는 방법의 관계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접근한다는 건축사의 디자인 프로세스와 관계가 있다. 내력벽 구조를 사용한 건축사의 주택 프로젝트와 같은 경우에는 구조 엔지니어와의 긴밀한 협업을 통해 표피철근(Skin Bar)을 포함한 장스팬 인방보(Lintel Beam)를 개구부 상단에 설치하여 다양한 위치와 크기의 창호를 구조적인 제약 없이 계획하면서도, 내력벽 두께를 슬라브까지 균일하게 유지하여 구조적 요철이 없는 절제되고 균일한 내부 공간을 구축해낸다.
건축사의 프로젝트는 절제, 고요, 시적 단순함 등을 본인 건축의 기본 기질로 생각하는 만큼 복잡하지 않고, 불필요한 요소들은 제거하는 방식으로 건축요소들을 결합하고 구축해 나가는 특징이 있다. 하지만 근작 ARK (2025.5)에서는 이러한 건축사 특유의 작업방식에 은유와 제스쳐(Gesture)라는 새로운 접근법이 더해졌다. 회색 도시라는 바다에 유유히 부유하는 배(방주)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시작했다는 ARK는, 흰색 박판세라믹 패널로 마감된 가로로 길고 큰 창이 특징적인 흰색 볼륨을 수평 줄눈이 강조된 검정색 혼드 화강석 벽으로 감싸안는 독특한 형상으로 계획되었다. 흰색 속(Mass)과 검정색 외피(Surface)의 건축적 상호작용을 통해 특색있는 공간들을 조성해 나가는 건물이다. 음각으로 처리된 검정색 석재패널의 수평 조인트와 코너에 사용되는 곡면 석재 패널 디테일 모두, 수평적으로 연속되는 흐름을 강조하면서 감싸안는 듯한 제스처를 완성하기 위한 건축사의 고민의 흔적으로 읽힌다.
건물은 완성되는 순간 등기상 건축주의 소유물임과 동시에 도시 속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속의 풍경으로서 공공재의 성격을 갖지 않는가 라는 다소 원론적인 질문에 대해 건축사는 ‘건물은 스스로 영속성을 갖는 사유체’와 같다고 답변한다. 매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로서 건축은 동시대의 요구와 제약들을 토대로 건축사가 정의한 재료의 구축법과 그로 인해 조성된 공간의 상호작용을 포함하여, 어쩌면 우리가 다 헤아릴 수 없는 스스로의 질서를 그 안에 담고 있는 독립적인 오브젝트로 존재한다고 필자는 그 의미를 해석하였다.
글. 박범진 Park, Bumjin 건축사 · AOE 대표
박범진 건축사·AOE 대표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및 펜실베니아 건축대학원을 졸업했고 아이아크 건축가들, 딜러 스코피디오+렌프로(Diller Scofidio+Renfro, New York)등에서 근무했다. 현재 AOE(Architecture Of Everything) 사무소를 운영중이며 미국 뉴욕주 건축사 및 대한민국 건축사이다.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아주대학교 강사로 설계스튜디오를 담당하고 있다.
bumjinpark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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