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미디어 월인가? 2025.11

2025. 11. 28. 10:1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For Whom Is the Media Wall?

 

 

<사진 1> 동아미디어센터 미디어 월 ⓒkshin

지난 10월 동아미디어센터(동아일보 사옥)에 가로 50미터, 세로 60미터로 국내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초대형 미디어 월이 설치되었다.<사진 1> 이름이 ‘룩스(LUUX)’다. 올해 4월에는 룩스 맞은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 벽에 가로 20미터, 세로 59미터의 초대형 미디어 월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사진 2> 코리아나 호텔은 조선일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곳이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양대 보수 신문이 모두 한국 역사와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광화문 일대에 초대형 광고판을 설치하고 운영하게 된 것이다. 지난 9월에는 이 둘 못지않은 규모로 KT 사옥 미디어 월의 오픈식이 열렸다. 이 건물에는 가로 47미터, 세로 21미터짜리 전광판이 무려 두 개나 있다.<사진 3> 두 개를 합치면 코리아나 호텔의 전광판보다 크고 동아미디어센터보다 조금 작은 규모다. 이로써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지난 2022년에 ‘광화시대’라는 이름의 미디어 월을 설치한 뒤 올해에만 3개가 추가돼 광화문 광장엘 가면 사방이 번쩍거리는 전광판으로 휘황찬란하다.


한 개만 있어도 빛공해 문제 소리를 들을 만한데 무려 3개가 더 추가된 데다 앞으로 5개가 더 설치된다고 하니 이게 무슨 일인가? 초대형 미디어 월, 또는 미디어파사드는 설치 비용이나 유지 관리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뉴욕 타임 스퀘어나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 같은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자국 내뿐만 아니라 전세계 뉴스에 보도되는 곳인 만큼 광고 효과 또한 커서 충분히 비용을 뽑아 낼 것 같다. 물론 광화문 일대도 최근 K팝의 흥행과 함께 예전보다는 훨씬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그만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광화문 일대가 미디어 월의 전시장이 되고 있는 현실은 지난 2023년 12월 이 지역을 ‘옥외광고물 자유표시구역’으로 선정한 서울시의 계획에서 비롯한다. 이 계획의 이름은 ‘광화문 스퀘어’다. ‘타임 스퀘어’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2033년까지 단계적으로 추진되는데, 9개 건물에 대형 미디어 월을 설치한다고 한다. 이제 4개가 설치되었고, 교보생명, 동화면세점, 일민미술관이 변신할 예정으로 보인다. 이순신 장군 눈이 많이 부실 것 같다.

<사진 2> 코리아나 호텔 미디어 월 ⓒkshin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추진한 이 계획에는 광화문 광장 일대를 ‘빛의 광장’ ‘미디어 랜드마크’로 포지셔닝하려는 도시 브랜딩 전략이 담겨 있다고 한다. 참 그럴 듯한 말이다. 여기에는 기운이 쇠하고 있는 신문사들의 열망도 담긴 듯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신문사다. 최근에는 종합편성 방송국으로 확장했다.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의 공세로 신문은 과거와 같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한 번에 수십만 명의 동시 접속자를 보유한 유명 시사 유튜브보다 힘과 영향력이 약해졌다. 그나마 아직 신문을 보는 세대가 살아 있지만,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에 친숙한 세대가 자라면 미래는 더욱 불투명하다. 그러면 광고 수익은 어떻게 될 것인가? 조선, 동아 두 신문사는 아주 목좋은 곳에 고층 빌딩을 가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대한민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에서 ‘초대형 미디어 월’이라는 영구적이고 값비싼 지면을 소유한 셈이다. 미래의 먹을 거리를 찾아 기울어져가는 신문 지면에서 건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계획은 이들 미디어가 단지 광고물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는 콘텐츠를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소유주는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그렇다면 광고의 비중이 압도하지 않을까? 손해를 보아 가면서 문화 창조에 이바지할 사기업을 없다.

<사진 3> KT 사옥 미디어 월 ⓒkshin

지나가는 행인과 관광객들에게는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서 즐길 만하다.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주변이 늘 번쩍거리는 빛으로 충만하다는 게 그리 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늘 이익이 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건축적으로 보면 건물은 디자인을 망치는 결과를 낳는다. 세종문화회관을 마주한 KT 빌딩은 지난 3년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했다. 과거 석재 마감으로 둔중한 느낌을 주던 건물은 세련되고 투명한 유리 커튼월 건물로 변신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다시 그 유리 벽 위에 두 개의 초대형 미디어 월이 설치되었다. 어떤 모습이 더 보기 좋을까? 군더더기가 많으면 질서는 무너지고 아름다움은 힘을 잃기 마련이다. 동아미디어센터도 건물 디자인 자체로만 보면 미디어월이 설치되기 이전이 더 나았다. 교보생명에도 그런 대형 전광판이 설치되면 어떤 모습일까? 처음부터 그런 미디어 월의 설치를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된 건물이 그런 덧붙임으로 더 근사해질 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대가는 미디어 월 안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치른다. 광화문 일대 미디어 월은 모두 모듈형 LED 패널이다. 이는 기존 건물의 벽을 완전히 차단한다. 창은 채광, 통풍은 물론 조망도 확보해야 한다. 소음 같은 길거리의 소리도 어느 정도 들려야 한다. 하지만 모듈형 LED를 설치하게 되면 이 모든 것이 차단된다. 공기는 건물의 인공적인 환기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다지만, 차단된 빛, 차단된 시야, 차단된 소리는 복구할 방법이 없다. 마치 카지노에서 도박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도박꾼의 신세가 되기 쉽다. 이런 갑갑한 근무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우울증이나 폐쇄공포증을 앓을 수도 있다고 한다. 창이 막혀 있는 것을 직접 겪지 않고 상상만 하더라도 답답하고 숨이 막히지 않은가. 빛의 반사나 소음, 열의 문제는 없을까? 또 그런 미디어 월이 설치된 건물 맞은 편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창 쪽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맞은편 건물의 번쩍거리는 전광판이 성가실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불편은 돈과 이익이라는 목표 아래 무시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사진 4> 메시 LED를 설치한 파리 퐁피두 센터의 미디어 월 ⓒkshin

이런 불편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모듈형 LED 패널이 아니라 메시(mesh), 즉 그물망 구조의 LED 패널을 설치하는 것이다. 메시 LED는 60% 투과율을 갖고 있어서 통풍과 시야가 확보된다.<사진 4> 하지만 이 방식은 비용이 훨씬 크다. 또 낮과 밤에 영상의 선명도가 약해진다. 사람들에게 불편과 고통을 더 주지만 돈도 덜 들고 선명도도 더 좋은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역시 자본이 승리한다. 무엇보다 이 초대형 미디어 월에 광고를 하거나 영상을 보낼 수 있는 주체 역시 글로벌 기업이나 권력자들일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자본의 승리를 증명한다. 현재 코리아나 호텔이나 동아미디어센터의 전광판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은 나이키, 샤넬, 디오르 같은 글로벌 브랜드의 광고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는 ‘프라에코(praeco)’라는 직업이 있었다. 군중이 있는 광장에서 큰 소리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알림꾼, 고함꾼, 선포자 같은 의미다. 목소리가 아주 큰 사람이 이 직업에 종사했다. 그는 돈을 받고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이다. 주로 집정관, 원로원, 법원과 같은 권력기관이나 부유한 귀족, 상인, 극장 운영자가 고용했다. 돈 없고 힘 없는 시민들은 결코 이 고대의 미디어에 접근할 수 없었다. 광장의 미디어 월은 현대의 프라에코다. 자본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그런데 그것을 일반인들이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못 마땅하다. 우리가 광고를 볼 때는 어떤 이익을 대가 없이 얻을 때다. TV나 유튜브로 방송을 볼 때, 그 컨텐츠들은 무료다. 하지만 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대가를 치른 셈이다. 요즘엔 스마트폰의 앱을 켰을 때도 맨 먼저 광고가 뜬다. 그러니 무료 앱도 완전한 무료는 아니다. 모든 이익에는 광고 시청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 우리가 어떤 정보나 메시지를 본다는 것은 공짜가 아니다. 그렇다면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거대한 미디어 월은 소유한 주체로부터 어떤 이익을 받을까? 없다. 물론 작은 상점의 간판도 일종의 광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의 초대형 미디어 월은 피할 길이 없다. 우리는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한 채 그것을 봄으로써 미디어 월의 주체와 광고주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역시 자본의 승리다. 우리는 그들이 쏘는 영상에 길들여지며 그 영상을 보내는 주체들을 돕고 있다.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한 채 말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