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라진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변화 주기 2026.1

2026. 1. 30. 10:1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Faster Cycle of Identity Design Change

 

 

 

지난해 발표된 2026 월드컵의 공식 포스터는 무려 16개다. 피파(FIFA)는 이번 대회부터 본선 진출팀을 32개에서 48개로 확대했다. 16개 국가가 더 참여한다. 이는 본선 진출과 지역 예선전의 가치를 모두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그런데도 진출 국가 수를 늘린 이유는 더 많은 나라에 관심을 불러일으켜 흥행과 매출 실적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올림픽처럼 더 많은 국가가 참여한다면 중계권 수익, 스폰서 노출 빈도, 티켓과 기념품 매출이 모두 올라간다. 그런데 참여 국가 숫자가 늘어나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더 많은 경기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월드컵 축구는 최소 5만 명 이상을 수용하는 초대형 구장, 그것도 노후화되지 않은, 쾌적하고 첨단 기능을 갖춘 경기장이 더 많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이번 월드컵은 미국, 멕시코, 캐나다 북미 3개국이 공동 개최하게 되었다.

<사진 1> 2026 월드컵 댈러스 시티 호스트 포스터 © 제이슨 시슬러, 2025년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는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공식 포스터는 대개 국가주의적 성향을 띠기 마련이다. 자국 홍보의 큰 기회이기 때문이다. 3개국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월드컵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에 따라 16개 개최 도시가 16개의 시티 호스트 포스터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국가 대신 도시를 홍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의도로 제작된 포스터는 각 개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데 주안점을 두고 디자인되었다. 예를 들어 댈러스 포스터는 댈러스가 속한 주인 텍사스의 카우보이 문화를, 뉴욕 포스터는 자유의 여신상을 메인 이미지로 하고 있다.<사진 1, 2>

<사진 2> 2026 월드컵 뉴욕 시티 호스트 포스터 © 리치 투, 2025년

 

16개의 포스터는 피파 홈페이지에서 판매되고 있다.<사진 3> 피파는 아프리카, 아시아, 북중미 국가들에게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줌으로써 유럽과 남미의 월드컵이라는 인식을 전환하여 진정한 세계 월드컵으로 거듭나겠다는 의도를 강조한다. 피파는 그것이 결국 더 많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공식 포스터 16개라는 초유의 결정이 그것을 대변한다.

<사진 3> 피파 월드컵 시티 호스트 포스터 판매 홈페이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2028년 LA 올림픽의 공식 로고도 엄청나게 많다. LA 올림픽은 가변형 로고를 최초로 선택했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도 색상과 패턴에서 다양성을 보여준 바 있다.<사진 4>

<사진 4> 2012 런던 올림픽 로고, 디자인: 울프 올린스, 2007년

 

하지만 로고의 모양 자체가 바뀌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LA 올림픽은 아예 로고의 형태가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LA와 28이 세로로 구성된 모습인데, L과 28은 늘 같지만 A는 변형을 허용했다.<사진 5> 2020년에 로고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30개 정도였다. 그 뒤로 몇 년간 간헐적으로 추가되어 지금은 50개가 넘는다. 정확한 숫자도 집계되지 않고,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LA 올림픽의 로고는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도록 의도했다. 일종의 플랫폼 개념으로 디자인되었다. 고정된 플랫폼 안에서 제시된 가이드라인을 지킨다면, 어떤 변형도 가능하다. 지정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다. 로고가 많기 때문에 기념품의 숫자도 대폭 늘어난다. 이는 매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로고가 적용된 티셔츠, 후드티, 모자, 컵, 배너, 페넌트, 메달, 배지 등의 기념품이 개발되었다. 여기에 적용된 로고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여서 소비자가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 5> 2028 LA 올림픽의 가변형 로고


가변형 로고를 채택한 이유는 LA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 다양한 미학의 도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고정된 정체성을 제시하지 않고 구조만 제공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권위로 통제하기 보다 참여의 여지를 남긴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로고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면서 신선함을 유지한다. 새로운 이미지가 계속해서 등장하므로 고정된 이미지로 기억되지 않고 패션성과 화제성을 낳는다는 계산이다. 이 또한 기념품의 판매에도 힘을 실어줄 것이다.


비슷한 현상을 최근 메이저리그 야구 유니폼에서도 볼 수 있다. 2021년부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시티 커넥트 유니폼을 도입했다. 메이저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유니폼 문화를 고수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보스턴 레드삭스 유니폼은 1933년에 발표한 유니폼이 9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사진 6>

<사진 6> 보스턴 레드삭스의 1930년대 유니폼(왼쪽)과 현재 유니폼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같은 전통의 팀들도 유니폼의 변화가 그리 크지 않다. 유니폼은 20세기 내내 홈과 원정 딱 두 가지로 유지되었다가 1990년대 들어와 처음으로 대체 유니폼을 허용해 3가지가 되었다. 홈 유니폼은 흰색, 원정 유니폼은 회색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추가된 대체 유니폼은 아이덴티티 컬러를 적용한 사례가 많았다.<사진 7>

<사진 7> LA 다저스의 홈(흰색), 어웨이(회색), 대체 유니폼(팀 정체성 컬러)

 

21세기에 들어와 대체 유니폼과 함께 복고 유니폼을 특별한 이벤트 경기 때 입었다. 그리고 2021년부터 시티 커넥트 유니폼을 개발하면서 복고 유니폼은 사라지고 홈, 원정, 대체, 시티 커넥트 이상 4가지 유니폼이 유지되고 있다. 이 시티 커넥트 유니폼은 기존의 아이덴티티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아이덴티티 컬러는 물론 로고조차 변형하는 것을 허용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아이덴티티 컬러는 붉은색이지만, 시티 커넥트 유니폼의 컬러는 노란색과 연한 파란색의 조합이다.<사진 8> 게다가 저지 로고는 기존의 투스칸 스타일과 달리 산세리프 스텐실이다.

<사진 8> 보스턴 레드삭스의 시티 커넥트 유니폼은 기존 전통과 결별했다.


왜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변형을 시도했을까? 미국에서 야구는 지역 스포츠로서 전국 스포츠인 미식축구와 농구의 인기에 밀려났다. 이에 따라 유니폼을 야구장에 가는 날만이 아니라 스트리트웨어로, 즉 평상복처럼 입도록 하여 야구팀을 홍보하고자 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인기 있는 팀은 별로 없지만 지역 내 기반을 더욱 다지겠다는 의도다. 특히 장년 세대보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러려면 유니폼이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한다. 이에 따라 유명 브랜드의 빅 로고 티셔츠처럼 팀의 도시 이름 약자를 거대하게 부각하거나 꽃 장식을 넣거나<사진 9>

<사진 9> 워싱턴 내셔널스의 시티 커넥트 유니폼은 빅 로고와 꽃 장식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 색을 요란스럽게 장식적으로 디자인한 것이다.<사진 10> 이런 야단스러운 유니폼들은 기존 메이저리그의 엄격하고 보수적인 유니폼과 너무나 다른 문화지만 그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판매량이 폭발적이었던 것이다.

<사진 10>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시티 커넥트 유니폼은 요란한 컬러로 유명하다.


사실 도시 정체성을 표현한 화려한 유니폼은 농구 리그인 NBA에서 시작되었다. 유니폼이 늘어나자 정체성이 약화되었다는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판매량에서 이익을 본 것은 분명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 축구 리그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아니 유럽 축구 리그가 더 빨리 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의 축구 리그는 미국 4대 스포츠 리그보다 더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에서 구입하는 유니폼의 판매량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21세기에 들어와 유럽 축구 리그는 마케팅적으로 더욱 공격적으로 유니폼의 다변화를 꾀했다. 유럽 축구 리그들은 한 시즌에 3개의 유니폼을 입어왔다. 홈, 어웨이, 서드 키트(third kit)다. 서드 키트는 실제 경기에서 자주 입는 것이 아니라 상대팀의 유니폼과 우연히 디자인이 비슷할 경우에 예비해 둔 유니폼이다. 홈 유니폼은 거의 변화하지 않고, 어웨이는 약간의 변화를 허용한다. 그리고 서드 키트는 매년 바꾼다.<사진 11> 즉 서드 키트는 패션성을 가미하고 스트리트 패션으로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글로벌한 인기를 끄는 유럽의 축구 명문팀들은 유니폼 판매량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지고 있다.

<사진 1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서드 키트 유니폼. 왼쪽부터 23/24, 24/25, 25/26 시즌


최근 스포츠 관련 정체성 디자인이 흔들리고 있다. 이것이 진짜 동기가 무엇일까? 3개 국가가 공동 개최하는 월드컵이라고 해서 하나의 공식 포스터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때에도 공식 포스터가 하나였다. LA 올림픽 로고의 경우 LA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표현할 수 없어서 가변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따지만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도시가 어디 있겠는가? 서울도 마찬가지 아닐까? 나는 이것이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동기는 기념품 판매 증진과 수익 창출에 있다. 20세기 중반 이후 모든 스포츠는 상업주의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올림픽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 로고가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올림픽 로고에서 국가주의가 사라지고 상업주의가 전면에 부각된 첫 번째 로고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도 이러할 진데 사기업인 리그와 구단들이라면 오죽하겠는가. 요즘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어떤 유니폼이 그 팀의 대표 유니폼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유니폼이 늘어난 것을 볼 수 있다. 그 덕에 유니폼의 판매량은 분명 늘어났을 것이다. 기술 발전만큼 아이덴티티 디자인의 변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