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31. 10: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AI-generated Images of Barber Shop

인터넷에서 무슨 이미지를 찾다가 우연히 세피아 톤의 그럴 듯한 사진을 발견했다.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오고 있는 런던의 거리 같은 느낌이다.<사진 1> 이 사진은 잠깐 나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뇌의 기계적인 반응이었다. 내 뇌는 이해가 쉬운 이미지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은 선명한 대비로서 모든 것이 분명하고 명징하게 파악되도록 찍혔다. 이렇게 사진을 찍기도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이란 우연의 산물이므로 사진 속의 사물들을 겹치기 마련이고 뭔가 불안정하고 무질서하게 찍히는 것이 더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진은 사진 속 요소들의 관계가 마치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처럼, 아니면 촬영자의 철저한 연출 아래 모델과 자동차가 연기하고 있는 것을 찍은 것처럼 보인다.
우선 배경과 대상이 대단히 분명히 나뉘어져 있다. 여기서 배경은 오른쪽의 건물, 왼쪽의 나무, 중앙의 안개 낀 공기, 그리고 비에 젖은 바닥이다. 안개와 비가 배경을 깨끗하게 해주었으므로 배경으로부터 대상은 마치 ‘누끼’ 딴 것처럼 또렷하게 구분된 것이다. 이 사진의 주제는, 즉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우산을 쓴 여인과 그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이다. 그들 사이에서 경계를 만드는 가로등까지, 이 세 요소는 완벽하게 다른 것과 겹치지 않고, 이 또한 누끼 딴 것처럼 독립되어 있다. 물론 남성과 그 뒷부분의 자동차가 살짝 겹쳤고, 여성이 쓴 우산과 가로등도 약간 겹쳐 있지만 이 정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런 독립된 대상들을 만들려고 남자는 위험하게 인도가 아니라 굳이 차도에서 걷고 있다. 이제 배경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건물과 나무, 안개 깬 하늘, 비에 젖은 바닥, 그리고 도로를 걷는 행인이 있다. 움직이는 배경인 자동차와 행인은 주제의 부각을 위해 적당히 초점도 흐리고 안개의 영향으로 선명도도 낮추어 스스로 조연임을 은근히 전달하고 있다. 건물과 나무도 평이하다. 무엇보다 안개가 짙으므로 원경에 배치될 만한 도시의 건물이나 가로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보였다면 주제인 여성과 남성, 가로등이 누끼 딴 듯이 선명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토록 대비가 분명한 사진은 찍기 힘들다.
또 하나 내 뇌가 이 사진에 잠시 긍정적으로 반응한 건 질서 때문이다. 배경을 포함해 이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사물은 너무 깨끗하다. 사람들, 건물, 나무, 자동차, 가로등, 바닥까지 정말 지나칠 정도로 잡티 하나 없다. 이런 세상이 가능할까? 여성 몸의 선을 보라. 너무 꼿꼿하고 등과 엉덩이, 다리와 장딴지라인이 완벽한 곡선을 이룬다. 이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을 꾸며낸 것이다. 실제 세상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린’ 것이다. 이 사진은 북한 프로파간다 포스터보다 더 선명하다. 이것은 인공지능의 이미지일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은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미학을 아주 쉽게 구현한다. 이것은 통속적인 싸구려 미감이다. 나는 이것을 ‘인공지능적 키치’, 또는 ‘인공지능적 이발소 그림’이라고 부르고 싶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다.

내가 이 인공지능 이미지를 이발소 그림이라고 단정하는 이유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태도가 실제 이발소 그림과 똑같기 때문이다. 어느 식당 입구에서 발견한 이발소 그림을 보자.<사진 2> 이 그림도 인공지능 이미지처럼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선명함이다. 눈이 내린 높은 산, 그 아래의 푸른 산, 호수가의 나무들, 그 앞의 건물들, 그리고 호수까지 통속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이것은 편안함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림을 감상하는 데 어떤 불편함도 없다는 뜻이다. 불편함을 제거하는 첫 번째 조건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 그것도 역사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순간 그림은 역사성이 부여되는데, 바로 그로부터 편안함이 제거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역사적인 인물은 어쨌든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 인물이 범죄자거나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거나 사회의 암적 존재이거나 하면 화가 날 것이고,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어도 힘들 순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훌륭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자연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정서적 불안을 유발하지 않는다. 물론 산업에 의해 훼손된 자연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림 속의 자연은 훼손되지 않은 자연인데, 웬지 모르게 그것은 유럽의 어떤 시골을 대상으로 한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늘과 산, 호수가 모두 깨끗하다. 매끈한 피부의 얼굴처럼 불편함이 없다. 매끈한 피부에서는 그의 역사를 느낄 수 없다. 역사란 늘 상처의 흔적에서 유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발소 그림은 필연적으로 역사를 지운다. 자연의 역사 역시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런 고통의 흔적을 자연의 풍경에서도 애써 제거하는 것이다. 이발소 그림에서 인물화가 적은 이유는 역사성, 그로부터 유발되는 불편함을 피하기 위해서다. 풍경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구체적인 풍경이 아닌 이국적인 풍경, 궁극적으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풍경만을 다루는 이유도 그와 같다.
두 번째 태도는 비현실성이다. 물론 먼저 역사성의 제거로 현실성을 잃었지만, 이발소 그림의 비현실성을 더욱 강화하는 건 바로 조화가 없다는 점이다. 그림은 원경에 유럽의 알프스 산맥에나 있을 것 같은 눈 덮인 산이 있고, 그 밑에 푸른 산, 그 밑에 나무와 집들, 그리고 근경에 호수가 펼쳐져 있다. 이 요소들은 전혀 조화롭지 않다. 서로 다른 그림에서 근사한 것들을 모아 놓은 포토몽타주 같다. 그림이므로 포토몽타주처럼 불연속적이지 않도록 안개를 이용해 적당히 얼버무렸다. 하지만 각 요소들의 비례관계가 어색하다는 건 조금만 눈여겨봐도 알 수 있다.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비례를 맞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전혀 없다. 어차피 판타지라고 여기는 듯하다. 아픔이 없는 자연, 사람의 부재, 비현실성, 회화적 포토몽타주는 이발소 그림의 본질적인 태도다. 실제 존재하는 대상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므로 이발소 그림에는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왜 구체적인 대상을 회피할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면 고통이 따르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고통은 그림을 그릴 때 찾아온다. 사실과 대조해서 틀렸다는 판단이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그림을 사실과 가깝게 하려는 그 노력이 바로 고통이다. 하지만 이발소 그림은 그런 고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판타지는 아무렇게나 그려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이다. 그 안일함이 그림을 통해 느껴진다. 너무 쉽게 그리는 그림, 한 시간 만에 뚝딱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이다. 두 번째 고통은 감상에서 온다. 구체적인 대상은 특정한 역사성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 그림 속의 자연은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이 이발소 그림을 보는 사람은 어떤 고통도 없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이발소 그림을 만들어내는 태도는 인공지능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태도와 유사하다. 인공지능 이미지에 배치한 사람들과 건물, 나무, 자동차도 구체적인 것이 하나도 없다. 그 각각의 대상들은 사실상 포토몽타주처럼 어딘가에서 가져와 구성한 것이다.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연상작용도 최소화된다. 아무런 불편함 없이 대비와 선명함이라는 통속적인 미감을 감상할 뿐이다. AI는 실제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미지 데이터 가운데 사용자가 요구한 프롬프트에 따라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이미지들로 구성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구체성이 사라진다. 그러니 AI는 이발소 그림을 만드는 데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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