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30. 15:15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price of a luxury chair
우리가 ‘명품’이라고 쓰는 단어는 영어 ‘럭셔리(luxury)’를 잘못 번역한 말이다. 우리가 ‘명품’이라고 말하는 대상을 영어를 쓰는 지역에서는 ‘사치품’ 또는 ‘호사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샤넬, 구치, 루이비통, 에르메스, 디오르 같은 브랜드가 떠오른다. ‘명품’이라고 하면 아주 잘 만들어서 명성이 있는 제품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반면에 가구 브랜드에 대해서는 명품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가구 브랜드는 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낯설고 생소한데 어떻게 명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겠는가? 하지만 최근 사람들이 가구에 대해서도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허먼밀러나 비트라 같은 브랜드는 이제 좀 명성을 얻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 브랜드들 역시 럭셔리일까? 다시 말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비쌀까? 이것이 궁금해서 가격을 알아보았다.
내가 알아본 대표적인 브랜드는 미국의 허먼밀러, 스위스의 비트라, 덴마크의 프리츠한센이다. 상품으로는 합판, 또는 플라스틱으로 생산되는 다이닝 체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다이닝 체어는 활용도가 높고, 가장 기본이 되는 의자이기 때문이다. 라운지 체어나 오피스 체어, 소파는 크기도 훨씬 크고 재료도 더 많이 들어가서 필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반면에 크지 않아서 재료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구조도 단순한 다이닝 체어가 비싸다면 그것이야말로 럭셔리, 즉 사치스럽다고 할 수 있다.
의자는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달리 수십 년 전에 디자인되고 출시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명성을 얻게 되면 여전히 생산된다. 첨단 기술로부터 독립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제조업체가 식탁 의자에 인공지능 같은 기술을 탑재하겠는가? 따라서 나는 가능하면 명성이 높은 ‘과거’ 의자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우선 허먼밀러의 DCM(Dining Chair Metal)을 살펴보자.<사진 1>
DCM은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개발한 3차원 성형합판 기술로 생산되었다. 1945년부터 생산된 이 의자는 모더니즘과 굿 디자인 개념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의자이며, 전후 가구 디자인의 변화를 이끈 이정표와도 같은 의자다. 이 의자는 허먼밀러 공식 스토어에서 1,685달러의 가격으로 팔리고 있다. 한화로 약 236만 원 정도다. 이 가격은 우리나라 중소기업 신입사원 평균 월급보다 조금 적은 정도다. 웬만한 한국인들에게 엄청나게 비싸다는 인상을 줄 것이다.
DCM은 3차원 성형합판이라는 혁신적인 대량생산 기술의 산물이다. 이 기술은 2차 세계대전 동안 개발되었고, 전후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덴마크 프리츠한센의 대표 의자 역시 3차원 성형합판 기술로 생산되었다. 1955년부터 생산돼 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의자 가운데 하나인 시리즈 7이 그것이다.<사진 2>
이것은 프리츠한센 한국 공식 매장에서 70만 원대부터 팔린다. 옵션에 따라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기도 한다. DCM의 합판 파트가 좌석과 등받이로 분리되어 있는 것과 달리 시리즈 7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DCM의 금속 프레임이 다리에서 등받이로 확장되지만, 시리즈 7은 다리로만 구성되어 있다. 즉 재료도 더 적고 가공도 더 단순하다. 시리즈 7을 디자인한 아르네 야콥센은 좀 더 효율적인 생산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합판과 금속으로 만든 세계적인 명품 의자로 비트라의 스탠다드 체어를 빼놓을 수 없다.<사진 3>
프랑스의 장 프루베가 디자인한 이 의자는 이름 그대로 매우 평범하고 정직하게 생겼다. 튼튼하고 기능에 충실한 이 의자는 비트라가 자랑하는 가구다. 한국에서 약 130만 원대에 팔린다.
성형합판보다 더 효율적인 대량생산 기술은 플라스틱이다.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는 플라스틱 의자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플라스틱 의자 시리즈는 1948년에 프로토타입이 개발되었고, 1950년부터 허먼밀러에서 대량생산되었다. 당시 플라스틱은 섬유유리로 강화된 FRP(fiberglass-reinforced plastic)였다. 임스 부부는 평범한 노동자들도 쉽게 살 수 있도록 저렴한 플라스틱 의자를 개발했다. 당시 출시 가격이 6달러였는데, 오늘날의 가치로 환산하면 75-80달러 정도라고 한다. 한화로 약 10만 원에서 11만 원 정도다. 현재 이 가구의 가격은 얼마일까? 임스의 FRP 시리즈는 모델이 상당히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에펠탑 모양의 다리를 가진 DSR(Dining Side Rod)인데, 이 의자는 80만 원대부터 옵션에 따라 100만 원대까지 치솟는다.<사진 4>
합판 의자인 시리즈 7보다 비싼 셈이다. FRP는 환경에 좋지 않아 20세기 후반부터 폴리프로필렌으로 재료가 바뀌었다. 폴리프로필렌은 섬유유리 플라스틱보다 생산효율성이 더 높다. 하지만 가격은 10배가 더 높아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생산효율이 높은 플라스틱 모노블록(monobloc) 의자 가격에 대해 알아보자. 세계 최초의 모노블록 의자로 유명한 비트라의 팬톤 체어는 싸지 않을까?<사진 5> 왜냐하면 모노블록이기 때문이다. 모노블록이란 단 한 번에 의자 전체가 사출성형되는 형태를 말한다.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모노블록 의자로는 편의점 의자를 들 수 있다. 사람의 손이 전혀 가지 않은 채 생산되기 때문에 효율성이 대단히 높다. 편의점 의자는 개당 1만 원 안팎에 팔린다. 그러니 팬톤 체어도 비쌀 이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비트라에서 독점 생산되는 팬톤 체어는 50만 원대에서 100만 원대에 팔린다.
명품 의자들의 가격이 서민들에게는 대단히 비싼 것임에 틀림없다. 이 유명한 의자들은 유명한 만큼 저렴한 ‘짝퉁’ 버전들이 널려 있다. 주로 중국에서 생산되는 이런 의자들은 대개 10만 원대에서 20만 원대에 팔린다. 이 가격도 비싸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쿠팡에 들어가 보니 가짜 시리즈 7 체어가 불과 6만 원대에 거래된다. 진품은 이보다 10배 이상이다. 하지만 의자는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가격과 비교하면 덜 비싼 편이다. 샤넬의 유명한 2.55백은 미니가 5,200달러, 미디엄이 1만 달러, 라지가 1만 1,700달러다. 우리 돈으로 700만 원대에서 1,600만 원에 이른다. 재료가 더 비싸고 기술력이 더 집요해서 그런 걸까?
나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과 집에 있는 물건의 차이에서 사치성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옷이나 백, 가방, 신발, 장신구 따위는 매일 자랑할 수 있다. 반면에 자랑하려면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야만 하는 가구는 과시하기 쉽지 않은 물건이다. 그런 초대는 가까운 사람들만 할 수 있고, 그것도 날마다 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가구는 과시보다는 좀 더 자기만족적인 성향의 물건에 가깝지 않을까? 물건의 생존 기간으로 따져봐도 의류나 가방보다 더 오래 갈 것 같다. 일의 강도는 어떨까? 식탁 의자는 매일 쓴다. 반면에 옷이나 백은 같은 것을 날마다 쓰진 않는다. 100만 원짜리 식탁 의자를 한 20년 쓴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명품 의자는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정도로 내구성이 우수하다. 아무튼 20년 이상 쓴다고 가정하면 100만 원이라는 가격이 그리 높은 것만은 아니다. 20여 년 전에 저렴한 것으로 유명한 한 브랜드의 플라스틱 의자를 산 적이 있다. 그 의자는 5년도 쓰지 못하고 버렸다. 그러니 튼튼하고 질리지 않는 명품 의자들은 그만한 값을 한다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찰스와 레이 임스가 6달러에 판매하려고 했던 FRP 의자가 오늘날 10배 넘게 가격이 높아졌다는 사실은 생산 비용을 훨씬 상회하는 명성의 가치가 더해졌음을 증명한다. 이것은 바로 사치의 영역이다. 사람이 가진 본성, 즉 과시욕은 필연적으로 사치품을 낳는다. 사치품은 재료비, 생산비, 인건비, 광고홍보비, 물류비와 같은 비용을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가격을 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과시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합리적인 가격보다 무조건 비싼 가격에 끌리기 때문이다. 그런 면을 고려하더라도 이번에 탐색해 본 이른바 명품 의자들의 가격은 왠지 합리적으로 보인다. 비싼 옷이나 백, 시계와 견줘봐도 지나치게 비싼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더 많은 사람들이 진품보다는 짝퉁을 구매할 것이다. 사치를 경계하는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허먼밀러나 프리츠한센, 비트라 같은 브랜드는 럭셔리라는 단어보다는 명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린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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