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정치에서 독립하지 못한다 2026.2

2026. 2. 27. 10:1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Culture is Not Independent from Politics

 

 

 

보수적인 미국은 어떻게 진보적인 모더니즘의 가치를 수용하게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예술, 건축과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 어떠한 진보적인 성취도 없었다. 1913년, 미국에서 유럽의 모더니즘 예술을 처음으로 소개한 전시회 <아모리 쇼 The Armory Show>가 개최되었다. 이때 미국인들의 반응은 충격과 황당함이었다. 특히 마르셀 뒤샹의 유명한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는 그림도 아니라는 비난을 받았다. 아모리 쇼에 대한 반응은 20세기에도 여전히 낡은 아카데미즘에 젖어 있던 미국 예술계의 보수성을 잘 보여주었다.


건축계의 경우 19세기말 시카고학파의 모던한 마천루 양식이 등장했지만, 20세기가 되자 곧바로 보수적인 건축으로 후퇴했다. 20세기에 들어서 미국의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대재벌들이 등장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고전적인 마천루를 원했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졸부의 양식이라고 평가받는 아르데코가 뉴욕 마천루들의 외피를 뒤덮었다.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대표적이다. 아르데코는 모더니즘을 대중적으로 번역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보수적인 예술가들도 최첨단 양식 모더니즘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너무 혁신적인 모던 양식을 대중이 받아들이기 쉽게 적당히 절충하고 타협을 본 것이 바로 아르데코다.<사진 1>

<사진 1> 아메리칸 라디에이터 빌딩 © 레이몬드 후드 & 앙드레 푸이유, 뉴욕, 1924년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는 미국식 모더니즘이 탄생했다. 그것은 바로 유선형 스타일이다. 유선형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1930년대 급속도로 발전한 여객기의 모양에서 비롯했다. 항공기 공학은 1920년대를 거쳐 1930년대에 커다란 성취를 이룬다. 1933년부터 생산된 더글라스 DC 시리즈 여객기는 진보와 낙관적인 기술사회의 미래를 상징했다. DC 여객기의 외관은 저항을 최소화하고자 공기역학적인 형태를 취했다. 돌고래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그 형태는 시카고학파를 대표하는 루이스 설리번의 유명한 명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을 실현한 것처럼 보였다. 여객산업의 발전과 함께 더글라스 DC 시리즈의 유선형은 진보를 상징했고, 기차와 자동차 같은 다른 운송수단의 디자인에도 영향을 미쳤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동과 관련 없는 제품들인 가구, 조명, 라디오, 냉장고, 선풍기, 다리미, 연필깎이 같은 생활용품에까지 적용되었다.<사진 2> 그 디자인은 기능과는 무관한 결과였다. ‘진보’라는 긍정적 의미를 획득하고자 유행하는 스타일을 장식적으로 모방한 것에 불과했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 판매의 약진이다. 유럽의 모더니즘은 더 좋은 제품을 더 많은 이들에게 보급하겠다는 기능주의와 민주주의에 매달렸다. 미국식 모더니즘은 판매 증대와 기업의 성장에 매달렸다. 그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혹독했다. ‘판매의 전당에 받쳐진 속물적인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사진 2> 연필깎이 © 레이몬드 로위,1933년


그런 미국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돌변한다. 추상표현주의가 대표적이다.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윌렘 드 쿠닝 같은 화가들은 <아모리 쇼>가 선보였던 20세기 초의 모던 예술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고 난폭한 회화를 선보였다.<사진 3> 그것은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 비구상 회화다. 추상표현주의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에서 전시될 뿐만 아니라 정부의 후원으로 전 세계로 순회 전시되기까지 한다. 모더니즘을 힘들어했던 나라가 갑자기 20세기 초의 모더니즘보다 더욱 혁신적인 모던 회화를 수용한 것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사진 3> 원: 넘버 31 © 잭슨 폴록, 1950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자본주의 체제를 대표하는 서유럽과 미국은 파시즘을 대체한 새로운 적을 만난다. 바로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이다. 전쟁이 끝난 뒤 두 체제는 치열하게 경쟁했다. 실질적인 전투가 없는 전쟁, 즉 냉전(The Cold War)이 시작된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경제체제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것은 군비경쟁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주개발, 과학과 기술, 학문, 스포츠, 문화 역시도 정치와 경제체제의 산물이니 치열하게 경쟁한다. 바로 이 기회를 잡은 것이 추상표현주의다. 미국은 1950년대까지도 사실주의 화풍이 회화는 물론 광고, 잡지의 표지와 삽화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사진 4> 그런 문화적 배경에서 추상표현주의 득세는 너무나 뜻밖이다. 이 전시회를 후원한 정부 기관은 CIA였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왜 문화, 그것도 이해하기 힘든 추상표현주의를 후원하는 처지가 되었을까?

<사진 4>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표지 © 로만 록웰, 1956년


CIA의 임무 중 하나는 공산주의 체제를 억제하는 것이다. 공산주의가 서유럽이나 아시아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이 임무를 실천하려면 적국의 정보를 캐내는 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가 소련의 공산주의보다 우수하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 이때 그들이 발견한 것이 추상표현주의다. 추상표현주의는 이해하기 힘들다. CIA의 직원 누구도 이 예술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바로 우월성을 입증할 만한 요소였다. 공산 진영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예술가들에게 강요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사실적으로 대상을 재현한다. 일단 그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그런 다음 공산주의 사회의 우수성을 그림에 담는다. 마을의 풍요로움, 힘찬 노동, 영웅적인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묘사한<사진 5> 그것은 노골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 즉 선전이다. 사실주의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상주의다. 프로파간다는 그 메시지가 즉각 전달되어야 한다. 어려워서는 안 된다. 바로 그런 점에서 공산 진영의 대표적인 예술 양식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예술가들의 부자유와 억압을 상징하며 체제가 열등하다는 증거다. 반면에 추상표현주의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예술가들이 누구의 압력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창작 행위에 몰두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사진 5> 협동농장의 휴일 © 알렉산드로비치 플라스토프, 1937년


비슷한 방식으로 국제주의 양식도 미국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미국의 다국적 기업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미국의 브랜드를 민족주의적인 기업이 아니라 국제적인 기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기업의 로고와 서체, 광고와 같은 의사소통 이미지들도 미국적인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양식이 되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미국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서체는 스크립트, 슬랩세리프 웨스턴 스타일, 투스칸, 아르데코 같은 지역적인 활자들이었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부터는 스위스의 디자이너들이 개발한 대표적인 국제주의 타이포그래피 글꼴인 헬베티카가 수많은 미국 기업의 로고, 그리고 광고 카피에 쓰였다.<사진 6> 헬베티카는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확장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신호였다.

<사진 6> 아메리칸 에어라인 로고 © 마시모 비넬리, 1967년


건축 분야에서도 냉전이 보수적인 미국 기업인들로 하여금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련은 프로파간다적인 기념비 건축을 많이 했다. 크고 화려한, 그리고 권위적인 건축을 지향했다. 권위적인 건축에는 고전 양식, 그리고 석재 마감이 필요하다. 북한 건축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다. 이른바 ‘스탈리니스트 건축(Stalinist architecture)’이다.<사진 7> 미국의 기업들은 이런 소련의 건축과 대비되는 모더니즘 양식을 채택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리 커튼월 마천루가 대표적이다. 스탈리니스트 건축은 건축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 대중이 알기 쉬운 건축 언어여야 하고, 이에 따라 고전적인 장식성을 추구하며 석재로 마감되어야 한다.<사진 8> 그것은 국민보다는 국가의 권력을 상징해야 한다. 국제주의 양식은 철골과 투명한 유리의 건축 언어로 과거의 고전주의와 같은 역사 양식과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다. 철골과 유리는 기능주의와 합리성을 상징하며 이것은 국가의 권위가 아닌 민간 기업의 성취를 대변한다. 하지만 미국은 194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아르데코 양식 또는 고전, 고딕 양식의 장식들로 건물을 뒤덮는 걸 좋아했다. 이 변화의 동기에는 분명 공산주의 체제에 대한 거부, 그리고 자본의 확장과 성취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다.

<사진 7>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본관 © 레프 루드네프, 1949년


이렇게 지역주의를 거부하고 모더니즘의 보편성을 수용하게 된 배경에는 냉전이라는 정치적 환경이 있었다. 추상표현주의는 정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른바 순수 예술 양식이다.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는다는 그 태도에는 사회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예술 형식이 사회주의 리얼리즘만큼이나 정치적으로 적극 이용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현실 사회에서는 어떠한 문화적 창작 행위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사진 8> 시그램 빌딩 © 미스 반 데어 로에, 1958년

 

21세기 미국은 냉전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정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미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경찰국가였다. 하지만 지금은 제국주의를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정치 성향이 미국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트럼프가 새로 짓는 백악관 국빈 연회장은 고전주의 양식이다.<사진 9> 백악관 자체가 고전주의 양식이므로 이와 양식적 통일성을 이룬다는 점이 그 채택의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트럼프가 고전양식을 무척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는 부동산 재벌로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고, 그걸 노골적으로 자랑했다. 거기에 적합한 양식이 바로 고전 양식이다. 왜냐하면 모더니즘은 겉으로 보면 절제되어 있으며, 개성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장식이 없이 추상성을 띠는 형태이므로 과시적이지 않다. 이런 디자인을 속물적이고 과시적인 사람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고대 로마가 그렇듯이 제국주의적인 속성은 일단 크고, 그리고 화려한 장식으로 시각화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반드시 권력을 물리적으로 구체화해서 사람들을 위압하려는 태도를 갖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국빈 연회장은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 궁이나 히틀러가 그의 건축 조수인 알베르트 슈페어에게 명령하여 짓게 한 총통관저와 그 의도가 같다. 그 둘은 모두 고전주의의 변형 양식으로 디자인되었다. 그 목적은 분명하다.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시하고 압도해서 겁주려는 것이다. 21세기 미국은 다시 과시적이고 장식적인 디자인을 유행시킬까? 정치가 바뀌면 문화도 바뀌기 마련이지만, 이런 퇴행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진 9> 백악관 국빈 연회장의 렌더링, 2025년 © 백악관, 2025년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