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30. 10:2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 Visit to Homes of Korean Wealth in the AI Era _ Sotbawi Rock in Uiryeong, Gyeongnam Province, Chairman Lee Byung-chul’s Birthplace, and Seungsan Village in Jinju
건축(사)업계가 IMF때보다 더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다. 이럴 때는 무언가 새로운 변화와 활력소가 필요하다. 그래서 택한 것이 답사 여행이다. 지난해 늦가을 서울 노원지역건축사회에서 1박 2일(2025.11.13.~14.) 일정으로 우리나라 대표 대기업 창업주가 태어난 마을과 학교를 다녀왔다. 이는 흔히 말하길 국내 최고 부자 명당이란 곳이다.
IT시대에서 AI(인공지능) 시대로 바뀌었어도 그 바탕엔 자연이 있다. 자연은 근본이고 뿌리다. 최첨단 빌딩도 땅을 딛고 서 있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서 태어나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물론 본인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태어난 시기와 장소 그리고 부모(조상)로부터 어떤 유전자(DNA)를 물려받았는지가 우선이고 어떠한 공간(환경)에서 살고 있는지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복합적인 영역을 다루는 것이 바로 풍수(지리)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땅에서 곡식이 잘 자라듯이 좋은 땅 위에 건축을 해야 사는 사람이 건강하고 복을 누린다. 건축에 좋은 땅이란 기본적으로 안정되고 형태가 반듯하며 단단하고 배수가 잘되는 땅을 말한다. 이번에 가 본 명당 마을과 주택은 이러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의령 부자솥바위
경남 의령을 ‘부자 1번지’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그 중심에는 남강변에 자리한 ‘솥바위 전설’과 그것이 현실처럼 증명되듯 이 땅에서 태어난 거대한 기업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의령읍 정암리(430-86) 남강 변에는 솥바위라고 불리는 작은 섬이 있는데 마치 발이 세 개인 커다란 가마솥 모양이다.
솥은 곡식, 즉 재물을 뜻하며 솥을 받치는 다리는 삼정승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예전에 이곳을 지나던 어느 도인이 여기서 사방 20리(8km) 안에 정승에 버금가는 세 명의 큰 부자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솥바위를 기점으로 세 갈래 8km 이내에 삼성 이병철(의령), LG구인회(진주), 효성 조홍제(함안)가 태어났다.

정부에서 이 지역 출신 기업인들의 생가와 정암바위(솥바위) 등을 관광 코스로 개발하기로 하고, 현재는 지방자치단체가 기업인들의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광 코스로 개발하기로 한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다.
오래전에는 그저 강가에 있는 작은 바위섬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의령지역 사람들에게 행운과 복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었고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스토리텔링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병철 회장 생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3’이라는 숫자는 완전함을 의미한다. ‘천-지-인’이라는 동양의 삼재(三才) 사상이 그러하고 삼위일체를 얘기하는 성경이 또한 그렇다.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로 회사나 가게 이름에도 이 석 삼자가 들어간 경우는 부지기수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삼성(三星) 그룹이다.
‘삼성’의 삼(三)은 큰 것, 많은 것, 강한 것을 나타내며 ‘성(星)은 밝고 높고 영원히 빛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염원을 담아 풍수에 거의 전문가급 식견이 있었던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이름을 지었다. 서울의 장충동 자택도 남산 자락이 내려온 재물맥(財物脈)에 자리 잡았는데 지금은 장손인 CJ 이재현 회장 아들이 살고 있다. 이 회장은 한강이 돌아 나간다는 것은 돈이 모인다는 것을 알고 한남동에 리움미술관을 건립했고 서초동 삼성사옥도 습지에 세워졌다. 물은 재물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도한 물은 습한 기운으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재다신약(財多身弱)’이라고 하늘에서는 재물과 건강을 다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재산을 지나치게 탐하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장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회장도 “사업을 하는 사람은 일에 쫓겨 자기를 잃기 쉬우니 여행을 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라고 했다.
의령군은 낙동강의 본류와 지류인 남강이 합류하는 지대에 위치, 강을 접한 남쪽은 비옥한 토지를 갖고 있다. 이병철 회장 생가는 정곡면 중교리 장내마을에 있다. 마을 뒤에는 봉무산이, 앞에는 남산이 서로 이어져 담장처럼 둘러쌓고 있어 마을 이름도 담안 즉 장내 마을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득수형 3대 명당에 속한다.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룬 세계 유명도시가 득수형인데 서울, 모스크바, 파리가 대표적이다.
호암의 생가에 당도하면 솟을대문을 지나 이 회장이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내며 16세에 결혼하여 분가하기 전까지 자랐던 집안으로 들어선다. 이 집은 호암의 조부께서 1851년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건축하고 그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서 단아하고 멋스러움이 풍기는 현재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 남서향의 평지에 안채와 사랑채, 광과 출입문인 대문채가 있고 정겨운 토담으로 외부와 구분되어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이 집은 곡식을 쌓아 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의 주변 산자락 끝이 이곳에 혈(穴)이 맺어 지세가 융성하고,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안채 뒤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대나무 숲과 함께 고택을 감싸고 있는 떡바위가 예사롭지 않다. 돈바위라 부르기도 하는 암벽에는 만(卍) 자, 전(田) 자와 거북이 또는 두꺼비 형상 같은 무늬가 있다고 하는데,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바위 면을 살펴보며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는 차곡차곡 쌓인 바위가 나락섬을 쌓아 놓은 것으로 보였다. 재물을 상징하는 바위다.

이밖에 특이한 것은 우물이 두 군데 있고 오동나무 3그루가 심어져 있는데, 오동나무는 이 회장이 좋아하는 나무로 새 중의 왕인 봉황은 오동나무에만 앉는다고 한다. 석류나무도 3그루 있는데, 석류는 알알이 씨가 박혀 다산을 의미하고 자손이 번창하길 염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곳이 명당 터라 이 회장 같은 인물이 태어났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역설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게 되니 명당이 맞다고 입증해 주는 것 같다.
진주 승산마을과 지수초등학교
진주에서 남해 고속도로를 타고 지수 IC로 나오면 우리나라 최고의 부자마을로 알려진 지수면 승산리가 나온다. 김해허씨와 능성구씨 집성촌인 이곳에 가면 최소한 세 번은 놀라게 된다. 첫째, 이 마을에서 천석꾼 이상의 부자 열여섯 명이 매년 3만 6000석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둘째, 이 마을 지수초등학교는 우리나라 최대 재벌 그룹인 삼성 이병철, LG구인회, 효성 조홍제, GS 허만정 등 ‘솥바위 전설’ 주인공들이 다녔다. 셋째는 80년대 국내 100대 재벌 중 30명이 이 학교 출신이고, 전경련 회장 두 분(구자경, 허창수)이 배출됐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몇 년 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 이 학교 총 동창회장을 만났는데 허경영씨도 같은 반에서 공부를 했다고 알려주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부자 기운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생각을 구현하는 시대에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마을을 구석구석 안내해 주시던 주민 해설사분께서는 “마을과 학교가 풍수 명당에 위치했기 때문”이란다. 그러고 보면 ‘국부(國富) 3인 탄생의 솥바위 전설’과 승산마을을 설명하려면 풍수 이론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승산마을은 600여 년 전 김해허씨(金海許氏)가 이곳에 자리 잡으면서 허씨 집성촌을 만들었다. 300년 뒤에는 허씨 가문에서 능성구씨(綾城具氏)를 사위로 맞으면서 허 씨와 구 씨가 조화를 이루며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허씨 집안은 근면과 절약으로 재산을 증식하고 인근의 고성, 의령, 함안, 산청 등에 많은 농토를 확보해 허준(GS 창업자 허만정 부친), 허만진 등 만석꾼 2명과 5천석꾼 부자 12명이 살았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농지개혁으로 소작농에 농지가 불하되는 바람에 만석꾼, 천석꾼 신화는 막을 내렸다. 그 후 70년대 산업화 시대가 열리자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진출하면서 지금은 100여 채만 남아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풍수지리 명당 터라서 많은 부자가 태어났음을 자랑하고 있다. 풍수가들은 “승산마을은 산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어 물이 바로 빠지지 않고 지리산 영봉에서 남강, 낙동강 남쪽으로 이어지는 방어산과 삼방산으로 맥이 연결돼 있고, 두 산 사이로 흐르는 지수천의 물이 마을 안쪽으로 흘러들었기 때문에 부자 마을이 됐다”고 전한다. 지수(智水) 면지(面紙)에도 “지수면 승산리는 산세가 부자 터의 조건을 갖추었다. 방어산(防禦山)으로 내려온 맥이 마을 뒷산이 되는 회룡고조형(回龍高祖形)이다. 동네에서 바로 앞에 보이는 안산은 평평하게 밥상처럼 생겼다. 동네 앞에 하늘에서 차려준 밥상이 있는 셈이다. 마을 앞에 흐르는 냇물도 2겹이나 된다. 밖에서 동네를 감싸며 흐르는 물은 바로 못 빠져나가게 玉峯(마을의 청룡 격)이라 불리는 떡 바위가 수구를 막아주어 동네에 재물이 모인다고 본다”고 기술돼 있다.
승산마을에 대한 풍수지리적 판단은 마을로 한정하지 말고 지수면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남강과 마을을 지켜주는 진산(鎭山=主山)인 방어산을 살펴보아야 한다. 풍수에서는 사신사(四神砂) 중 주작, 즉 봉황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듯한 형상을 최고의 용신(用神 : 나를 좋게 도와주는 신)으로 보는데, 이 마을 앞의 방어산이 그러한 형상이다. 끌어안고 받아들여야 사랑이 싹트고 생명이 탄생한다. 이것이 풍수의 원리다.
기업의 산실(産室) 지수초등학교
승산마을에서 길 하나를 건너면 옛 지수초등학교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1년 들어선 이 학교에는 신식 교육을 받으려는 인근 지역 학생이 몰려들었다. 삼성 이병철 회장 역시 의령에서 태어나 이곳으로 유학을 와서 누님댁에서 학교를 다녔다. 현재 학교는 폐교되고 지금은 학교 건물에 기업가 정신을 체험하고 홍보하는 ‘K-기업가정신센터’가 들어서 있다. 지난해 6월까지 누적 방문객이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지수초등학교 출신 기업가들이 어떻게 부를 모으고 출세를 했는가? 역시 정통풍수지리에서 답을 찾는다. 방어산자락에 떨어진 빗물이 이 쪽으로 모이는 창판수(倉板水: 재물)이고 주변을 감싼 형태의 보양산이 안산으로 수(水)와 명당 기운을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도 관련이 있으며 학교 교정을 내려다보는 개지산(開地山: 방어산 끝자락의 토형산)의 응기(應氣: 天氣)를 듬뿍 받고 자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흥제 회장이 지수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함께 교정에 심었다는 ‘부자소나무’는 이들의 어린 시절 꿈과 희망, 포부가 깃들어 진주 K-기업가 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건축사라는 한배를 탄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서 회원들 간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성공한 부자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명당의 기운과 기업가 정신을 본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날씨가 그런 것처럼 안 좋은 날보다는 좋은 날이 더 많다.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기운을 충전해서 심기일전하고 호암 생가의 떡바위처럼 오랜 시간의 퇴적층을 밑거름 삼아 다시 도약할 것이다.
잎을 떨군 나무들이 가지마다 통통한 겨울눈을 달고 다가올 봄에 새싹 틔울 준비를 하듯 우리도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가져 본다.
글·사진.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이종호 건축사 · 시원 건축사사무소
연세대 공학대학원을 졸업(공학석사)했다. 현재 시원건축사사무소 대표이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풍수지리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서울특별시건축사회·대한건축사협회 등산동호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1회 간향건축문학상 수상 및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특별자치시) 수필 공모전에서 당선(국무총리상)했고, 노원문화정보센터 등의 설계공모에 당선된 바 있다.
eewoonpa@hanmail.net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건축비평] 인탈리오 건축의 화려한 향연과 소외된 중심 2026.1 (0) | 2026.01.30 |
|---|---|
| 선을 지키는 건축사들 건축을 하며 나에게 던지는 질문들 2026.1 (0) | 2026.01.30 |
| 건축저작물과 저작자의 성명표시권 미디어 속 건축사의 이름을 되찾기 위한 여정 2025.12 (0) | 2025.12.31 |
| [건축비평] 모노섬경계의 땅에서 피라네시의 계단을 오르다 2025.11 (0) | 2025.11.28 |
| 탑의 눈물 : 익산 미륵사지 2025.11 (0) | 2025.1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