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8. 11:3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Monosome
Going up Piranesi’s Staircase (The Staircase with Trophies) in a Land of Boundaries

제주에서 강원 고성으로
부산과 제주 지역의 중견 건축사로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지내던 차에 오신욱 건축사의 작품에 비평의 기회를 얻었다. 제주에서 강원도 고성까지의 여정은 부담이었지만, 오 건축사의 건축을 가까이 살펴볼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기대가 컸다. 더불어 ‘부산 토박이 건축사가 부산을 벗어난 곳에서는 어떠한 건축을 할까?’ 이런 호기심이 작동했다. ‘부산성’이라는 특수성에 기대었던 그의 건축이, 영토를 확장하여 보편적 건축으로 어떻게 변이하는지 살펴보고자 했다.
부산 갈매기의 꿈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이 지역 건축의 정체성을 모색하려는 노력은 인간으로서 자아를 찾는 것과 유사한 태생적 책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건축계에는 이러한 목적으로 ‘도시건축포럼 B’가 활동하고 있었고, 10여 년 전 워크숍 때문에 제주를 방문한 오 건축사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후 건축의 지역성, 지방 건축사들의 처우 그리고 지역의 다음을 위한 건축 등의 이슈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부산과 제주의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오 건축사가 그 중심에 서 있다.
건축사로서 오신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년 전 발간된 ‘자존감 건축’이 유의미한 레퍼런스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지방 건축의 현실을 토로하면서도 ‘지방성’을 자존감 건축으로 승화하자는 거대담론을 제안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지역성’의 의미는 지역 간의 동등함을 내포하고 있음에 비해, ‘지방성’은 중앙의 상대적 공간개념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결핍과 한계성을 전제한다. 오히려 지방의 약점을 인정하고, 결핍을 채우고 한계를 극복하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건축사 자신은 물론 건축주, 나아가서는 도시 부산의 자존감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자유와 자아실현을 위해 날아오르는 조나단의 꿈처럼, 자존감 건축의 실천은 오신욱 개인은 물론 부산 건축의 꿈을 위한 비상임을 천명하고 있다.
부산다움에서 ‘부산성’으로
우리네 동시대의 건축사 대부분은 자신이 서 있는 ‘땅’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실존주의적 건축’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사들은 더욱 그러하다. 대지에 건축을 어떻게 일체화(Being in the world) 시킬 것인가의 수법으로 오 건축사는 ‘들 띄우기’를 즐겨 사용한다. 초기 작품인 ‘월내 반쪽집’부터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건축이 주변계와 관계 맺음(오 건축사의 언어로는 다이얼로그)의 과정 중에 인문적·자연적 환경요소와 프로그램 등이 작용하면 들 띄우기가 생성된다. 관계성에 의해 만들어진 실존적 건축인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건축방식에 더하여 부산 건축의 정체성은 그의 원도심 연구에서부터 비롯된다. 부산의 원도심인 초량 지역의 프로젝트, 복합문화공간 ‘비꼴로’와 외국인 전용 스테이 ‘모닝듀’의 작업을 위하여, 산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풍광, 지형 그리고 근대사가 녹아있는 산복 도로변의 도시 구조를 리서치했다. 원도심 연구에서 얻어낸 부산다움의 주요 요소들은 경사지형에 대응한 골목 계단의 리좀(Rhizome)적 공간구조, 타자성의 개방적 태도에서 비롯된 내·외부공간의 조직 그리고 사성과 공성 공간이 상호 침투해 경계를 흐리는 발터 벤야민의 다공성(porosity) 등이다. 더불어 해양 문화권의 건축적 특징인 백색의 외장재료와 파동성의 은유로서 백색 루버 등의 의장 요소는 건축에서 통합되어, 오신욱 건축의 ‘부산성’으로 전이된다. 이어서 오 건축사의 건축론으로서 ‘부산성’이 강원 고성의 ‘모노섬’에서는 어떻게 보편성을 획득해 건축의 원리로서 작동하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경계의 땅에서 피라네시의 계단을 오르다
양양공항에서 국도를 따라 1시간 북상하고 1km쯤 해안으로 마을길을 따라가니 고즈넉한 해변의 백사장을 마주하고 백색의 ‘모노섬’이 앉아 있다. 사이트는 하나의 마을이 남·북으로 분단된 이데올로기의 경계, 산과 바다가 만나는 물리적 자연환경의 경계, 지역 주민과 이주민의 타자성에 의한 공동체의 경계 등 고요함의 이면에는 다양한 경계가 중첩된 땅이다.
건축주의 말에 의하면 기존 마을은 함 씨 집성촌으로 배타성이 강해서 이주민으로서 마을에 동화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마을의 산업 생태계와 이질적인 숙박이라는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프라이버시를 위해 폐쇄적 건축으로 계획되지만, 모노섬은 담장이나 버퍼 공간이 없이 당황스러울 만큼 마을이나 자연환경에 즉각적으로 접촉한다. 개방성으로 타자성의 경계를 소거한 것이다. 이는 내외부, 사성·공성 공간의 전이가 없는 부산성의 특징이 보편성으로 작용한 것이다.
배산임수의 경계에서 바다에 떠 있는 백도는 주요한 조망점으로, 해안선은 공간의 열림 정도를 결정하는 인자로 모노섬과 관계를 맺는다. 백도를 향한 1층의 객실 유닛에 새로운 축성을 부여하고, 해안선은 2층, 3층의 객실 유니트를 테라스형으로 셋백해 ‘들 띄우기’가 완성된다. 또한 마을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물리적 환경의 단절을 피하기 위해 카페 부분의 필로티 처리는 유효한 전략이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실려 온 모래가 필로티를 통과해 해안선의 모래 언덕을 바꾼다는 건축주의 증언은 교훈적이다. 그런데 모노섬의 아쉬움은 ‘바다바라기’ 건축이라는 점이다. 카페의 옥상에 올라서 경이로운 자연을 보았다. 가까이는 운봉산에서 멀리 설악산과 울산바위에 이르는 첩첩산중의 실루엣이다. 옥상뿐만 아니라 들 띄우기에 이 자연환경이 작동했다면 모노섬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모노섬은 4개의 객실과 카페로 구성된 스테이 건축이다. 스테이 건축의 기본적인 속성은 ‘일상의 탈주’를 이루는 공간이어야 한다. 도면을 받아보고 처음 든 관심은 모노섬의 수직 동선체계였다. 흡사 피라네시(Giovanni Battista Piranesi, 1720∼1778)의 판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문객은 어떠한 공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기대와 상상으로 일상을 탈주하는 예식 행위로써 계단을 오른다. 계단에 연계된 수평의 열린 객실에 이르면 일상에서 벗어난 새로운 차원에 들어서는 것이다. 카페에도 또 한 줄기의 계단이 있다. 이 역시 최상층의 루프까지 이동 중에 현상학적 체험을 의도한 계단이다. 백색 루버에 둘러쳐진 모노섬 계단의 출처는 다시 부산의 원도심 초량을 소환한다. 부산다움으로 체득된 어휘가 오신욱의 보편적 건축으로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산 건축사로서 새로운 도약을 기대하며
모노섬을 둘러보는 시간 내내, 오 건축사의 건축 태도가 부산에서의 작업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것은 부산의 지방성에서 비롯된 오 건축사의 건축 방법론이 보편적 지위를 획득했음을 의미한다. 더하여 중앙의 상대개념인 지방의 건축사를 넘어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최근 부산 건축계가 인도네시아 건축계와 교류가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고개를 돌려 중앙을 뒤로하고, 부산 건축사로서 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새로운 도약을 기대한다.
글. 양건 Yang, Gun 건축사 · 가우 건축사사무소·건축학 박사

양건 건축사·가우 건축사사무소·건축학 박사
연세대학교에서 ‘지역자산을 활용하는 수복형 도시재생 방안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8년 고향 제주에 ‘가우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고, 동시대적 건축이론으로 제주건축의 해체와 재구축 과정을 통한 제주건축의 정체성 모색에 주력해왔다.
2025년 (사)제주미래건축공간연구원을 설립하여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며, 주요 작품으로는 제주아트센터, 제주명품전시관, 넥슨 컴퓨터박물관, NXC센터 등이 있다.
gaugun@gaugu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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