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선데이브런치 HQ대로와 골목 사이, 낯선 건물의 균형 2025.10

2025. 10. 31. 11:5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sundaybrunch HQ
A Balance of an Unfamiliar Building, between a Main Street and an Alley

 

 

 

<선데이브런치 HQ> 2층 테라스 © studio texture on texture

 

도시의 대로와 골목 사이
강남 테헤란로는 서울을 상징하는 거리 중 하나다. 낮에도 밤에도 대형 오피스 빌딩과 IT 벤처기업의 사옥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으며, 이어지는 차량의 흐름이 도시의 에너지를 집약한다. 이와 다르게 대로에서 불과 300미터만 안쪽으로 들어서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화려한 상업 건물이 사라지고, 대신 붉은 벽돌 다세대주택이 줄지어 있는 조용한 주거지가 나타난다.
이 주거지에 들어선 건축물 ‘선데이 브런치’는 도시의 이중적 풍경 속에서 흥미로운 균열을 만들어낸다. 채도가 낮은 회색 벽돌로 마감된 이 건물은 주거지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도, 동시에 기하학적 입면과 최소화된 창으로 독자적인 표정을 짓는다. 주변과 닮아 있지만, 동시에 낯선 기운을 풍기는 건축이다. 이 건물은 이 동네에서 어떤 균형을 이룰까?

 

전학생 같은 건물
이 건물의 첫인상은 마치 낯선 동네에 갓 들어온 전학생 같다. 같은 교복을 입고 서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면서도, 결국에는 자신만의 존재감을 감추지 못한다.
벽돌을 주된 재료로 선택한 것은 주거지 맥락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붉은 벽돌을 사용하는 주변과는 달리 채도를 낮추고, 반사 재료나 강렬한 색채를 피하면서 동네와 조율했다. 동시에 반으로 절단된 벽돌이 만드는 단면의 그림자, 입면 곳곳에 삽입된 원형과 직선의 기하학적 도형, 그리고 모서리에서 보이는 곡면 외피는 본인의 개성을 나타내듯 단조로운 풍경 속에서 작은 변화와 긴장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선데이 브런치’는 숨으면서도 드러나고, 기존 동네와 조율하면서도 개성을 포기하지 않는 전학생 같은 태도를 보여준다.

 

형태와 공간 경험
건물의 형태는 단순하면서도 상징적이다. 네모난 의자 위에 네모 블록과 원형 블록이 얹혀 있는 듯한 형태이다. 매스 상하부의 얇은 금속 마감은 각 매스의 경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또한 도로 전면에 보이는 원형 매스는 2층 매스와 분리되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같은 벽돌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쌓은 부분, 또 다르게 생긴 매스들로 인해 이곳에 생기는 그림자 역시 다양한 모양을 보여주는데, 이 그림자와 매스들과 균형이 조화를 이룬다.
이 건물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2층 외부 테라스다. 키보다 살짝 높은 원형 벽체의 오프닝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은은하게 공간을 밝히고, 원형 벽과 직선 벽이 함께 만들어내는 반원형의 하늘은 시선을 위로 끌어올린다. 외부의 시선은 차단되고, 지나다니는 사람의 소리, 자동차의 소리만 들린다. 차분한 벽과 열린 하늘 사이에서 사용자는 사색에 잠기고, 도시의 번잡함은 일시적으로 차단된다.
서가건축의 여러 프로젝트에서 직선과 곡선의 조화가 눈에 들어오며 재료를 최소화하고 같은 재료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여 모습이 보인다. 재료를 최소화하니 면, 기하학적인 선, 그리고 뚜렷한 명암이 있는 매스가 눈에 가장 먼저 인식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시각적으로 눈에 띄지 않고 차분하고 묵직한 느낌을 주는데, 건축행위에 있어서 겸손하고 조용하게 자리를 잡고 싶어 하는 듯 이들의 건축은 대부분 차분하고 묵직하게 서있다.

 

요즘 시대의 창문
‘선데이 브런치’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창의 모습이다. 외부에서 보면 창문은 유난히 작고 드물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적 선택이 아니라, 오늘날 주거지역 안에서의 건축이 마주한 현실을 반영한다.
도시의 주거지는 점점 밀집해 가고, 건물과 건물 사이는 불과 수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창은 곧 사생활 침해의 통로가 된다. 과거 유명인이 프라이버시를 위해 창 없는 집을 설계하여 주목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제는 유명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버시에 대해 예민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은 바깥을 바라보고 싶어 하면서도, 동시에 바깥에서 자신이 보이는 것은 꺼린다. 이중적인 요구 속에서 건축사는 창을 줄이고, 심지어 창을 계획하더라도 차면 시설을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선데이 브런치’ 역시 이런 맥락 속에서 창을 최소화했다. 외부에서 보면 닫힌 표정의 벽돌 덩어리처럼 보일 수 있으나 반대로 내부에서는 차분하고 아늑한 보호감을 제공한다. 도로와 맞닿은 2층 테라스조차도 원형 벽체 덕분에 오직 하늘만 바라볼 수 있으며, 코어 역시 도로 측으로 배치되어 거실은 한쪽 도로와 분리되어 있다. 이로써 건물은 사생활 침해라는 현실적 갈등을 피해 가면서도, 동시에 하늘을 향한 시선을 통해 새로운 건축적 경험을 제안한다.

 

평면과 기능의 균형
근린생활시설은 대부분 사용자가 특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어느 세입자가 들어와도 무리 없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선데이 브런치’는 그 점에서 합리적인 구성을 갖췄다. 1층은 주차라는 현실적 요구를 효율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상부는 코어를 중심으로 계단·승강기·화장실을 분리되어 있다. 작은 창들은 오히려 내부 벽의 활용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선데이브런치‘의 평면은 기능 중심적 구성인 모더니즘의 합리성을 따르지만, 입면에서 보이는 원형 벽체와 절단된 벽돌은 포스트모더니즘적 개별성과 자율성을 보여준다

 

필로티
코르뷔지에의 필로티는 관통, 녹지의 흐름, 보행자의 동선 등을 위한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인접대지가 모두 타인의 땅으로 빽빽하게 모인 서울 도시에서는 그 목적이 오로지 주차공간 확보로 밖에 불가능하기에 그 본질이 많이 바뀐 듯하다.
인접대지가 모두 막혀있는 서울 속 소규모 대지에서, 특히 특정되지 않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지어진 근린생활시설에서는 수익을 위해 용적률을 최대로 채우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1층은 사실상 막혀있는 주차공간으로밖에 활용할 수밖에 없다.
용적률을 최대화한 주차계획으로 코어의 위치, 주차계획 등이 어느 정도 정해져 건축사의 상상력이 제한되는 상황에 조금이라도 보행자를 위한 열린 공간을 제공해주고 싶었던 서가건축의 고민을 이해한다.

 

동네의 얼굴이 되는 건축
‘선데이 브런치’는 주거지라는 맥락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을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회색 벽돌은 주변과의 균형을 배려하고, 입면 곳곳의 기하학적 장치는 단조로운 풍경 속 긴장과 리듬을 만든다. 작은 창은 민원과 갈등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고려한 합리적 대응이지만, 동시에 하늘을 향한 테라스와 단순한 형태의 건물로써 새로운 개성을 드러낸다.
획일적인 박스형 근린생활시설이 흔한 시대에, 이 건물은 ‘지역성과 차별성을 동시에 품은 작은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맺음말
서가건축사사무소의 작업은 단순히 건물을 세우는 것을 넘어 도시와 커뮤니티 속에서 건축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묻는다. ‘선데이 브런치’는 그 질문에 대한 실험적 답변이다. 닫힌 듯 열려 있고, 숨은 듯 드러나는 태도 속에서, 선데이 브런치는 동네와 조율하며 자리를 지킬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이 동네에 자리 잡은 선데이 브런치를 지나갈 때면 서가건축에서 말하고자 했던 “커뮤니티와 네트워크의 건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글. 이건희 Lee, Keon Hee 건축사· 오월 건축사사무소

 

 

이건희 오월 건축사사무소·건축사


경기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실무 경험을 쌓고 2022년 오월 건축사사무소를 오픈했으며, 주택, 숙박시설, 상가 설계를 주요 작업으로 하고 있다. 대지의 맥락 및 사용자의 행위를 파악하는 것을 설계의 시작점으로 잡으며, 각각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공간에 녹여내 사용자로부터 어색함이 없고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설계를 추구한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설계자가 아닌 사용자임을 인지하고, 그들의 삶을 공간에 채울 수 있도록 기본 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설계자의 역할이라 생각하며 작업한다. 대표적으로 망원 에고빌딩, 안성 담운재, 대곶주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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