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의 눈물 : 익산 미륵사지 2025.11

2025. 11. 28. 10:3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ears of the Pagoda: Mireuksa Temple Site, Iksan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야경

익산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의 강력한 염원이 담긴 거대한 가람이자, 7세기 백제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당시 백제는 미륵사를 통해 국력을 과시하고 민심을 결집하려 했으며, 3금당 3탑의 웅장한 가람 배치는 미륵삼존 신앙을 건축적으로 구현하려는 치열한 고민의 결과였다. 이는 건축물이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한 국가와 공동체의 정신적 구심점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이 웅장한 백제의 꿈은 순탄하게 이어지지 못했다. 1915년 일제에 의해 서석탑에 가해진 '해체와 보수'라는 이름의 행위는 국가유산 훼손을 넘어, 식민 지배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된다. 시멘트로 덧발라진 백제 석탑은 백제의 숨결과 문화가 억압받는 아픈 역사를 상징하며, 광복 이후에도 훼손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처럼 미륵사지 서석탑은 백제인의 염원, 일제의 훼손, 그리고 광복 후의 회한을 모두 간직한 채, 시간과 역사의 증인으로 서 있다.

미륵사지 해체보고서 중 일부

1999년부터 20여 년간 이어진 서석탑의 해체 보수 작업은 현대 건축사와 국가유산 전문가들에게 주어진 중대한 역사적 과제였다. 230억 원이라는 막대한 예산과 장구한 시간이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무너진 돌을 다시 쌓는 행위를 넘어, 백제인의 건축적 지혜와 염원을 21세기 대한민국에 되살리려는 숭고한 노력이었다. 2009년 '사리봉안기'의 발견은 복원 작업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혀내는 고고학적 탐험이기도 했음을 보여주며, 건축사가 형태의 재건을 넘어 시대의 비밀을 읽어내는 인문학적 소양 또한 갖춰야 함을 상기시킨 사례라 하겠다.
마침내 2019년, 서석탑은 일제의 시멘트를 벗겨내고 본연의 백제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 공개되었다. 현재 미륵사지는 백제 시대 가람의 웅장한 모습을 되찾았으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은 출토 유물과 역사를 품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장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빛나는 복원 옆에는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바로 동탑이다. 1993년 서탑의 모형을 바탕으로 건립된 동탑은 '나란히' 서 있지만, 그 복원 과정에서 미묘한 '이질감'과 함께 건축적 한계를 노출했다. 역사적인 고증과 원형 형태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없이 9층으로 추정되던 탑을 6층으로 단순 복제한 결정은 여러 역사적 가능성(세 탑의 형태가 달랐을 가능성, 중앙 탑이 목탑이었을 가능성 등)을 배제한 채 섣부른 추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단순한 형태 모방에 그쳤을 뿐, 본질을 놓친 결과이며, 건축적 맥락에 대한 이해와 창조적 해석의 부재를 보여준다.

서연지에서 바라본 동서탑 전경

동탑 표면에 흐르는 '검은 자국', 즉 '탑의 눈물'은 이러한 복원의 한계와 더불어 건축적 디테일의 실패가 남긴 명확한 증거이다. 이 눈물 자국은 단순히 미적인 결함을 넘어, 건축의 근본적인 요소와 재료의 물성(物性)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되었을 때 발생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시사한다.
2003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보고서 I』의 기록은 '옥개석 바닥면 일부를 10mm 정도의 높이로 깎아 낸 것', 즉 '물 끊기'가 백제 석탑에 존재했음을 명시한다. 이는 통념을 깨는 동시에, 당시 백제 건축사들이 낙수로부터 구조물을 보호하려는 치밀한 기능적 고려와 함께 자연의 순리를 건축 디자인에 담아냈던 지혜를 보여준다. 하지만 동탑에는 이러한 섬세한 디테일이 충실히 재현되지 않았거나 그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옛 건축의 치밀함을 현대에 모사하는 데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서탑과 동탑 모두에서 옥개석 맞닿는 부분에 빗물 오염 흔적이 있는 것은, 목탑의 곡선미를 석탑에 적용하여 물의 흐름을 유도하려던 초기 백제 건축가들의 노력이 세월 앞에 흐트러졌음을 보여준다.
'탑의 눈물'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두 탑을 이루는 돌의 질감, 즉 '마티에르'의 차이에 있다. 복원된 서탑의 돌은 백제 시대 장인이 정(釘)으로 일일이 쪼아 만든 거친 표면을 가졌다. 이 무수한 요철은 물과 먼지를 머금고 있다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길을 분산시킴으로써 '눈물 자국'을 방지하는 자연스러운 기능성을 지녔다. 이는 재료 본연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기능과 미학을 동시에 만족시킨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반면, 동탑의 돌은 공장에서 기계로 매끈하게 다듬은 '물갈기' 마감이다. 이러한 매끈한 표면은 집진 효과가 생겨 많은 먼지를 머금고 있다가, 비가 오면 빗물과 먼지가 한두 군데로 모여 일정한 경로를 따라 흘러내리게 된다. 그 결과, 물이 표면에 길게 축적되어 '눈물 자국'을 남기게 된 것이다. 이는 기술적 효율성만을 좇다 재료의 본질적 특성과 자연과의 상호작용을 간과한 현대 건축의 오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동탑의 복원은 서탑을 모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고증과 건축적 디테일 구현 모두에서 실패했으며, 이는 일제강점기 시멘트 보수와 다른 바 없는, 국가유산에 대한 깊이 없는 접근의 결과로 이어졌다.
미륵사지 동석탑의 '눈물'은 우리에게 단순한 형태 모방을 넘어선 문화유산 복원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처럼, 옛 형태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현대의 축적된 기술을 사려 깊게 접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국가유산은 세월의 흐름 속에 마모되고 변형되며, 도면만으로는 전달될 수 없는 '문자화되지 못하는 노하우'나 '미묘한 디테일'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수많은 실무 경험을 통해 체득되는 건축사의 지혜와 일맥상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대 건축사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건축사는 단순히 도면을 그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시간을 읽고 자연을 이해하며 미래를 예측하는 비저너리(visionary)여야 한다. 시간이라는 변수 속에서 자연환경이 건물에 미치는 영향을 예측하고, 돌의 마감재가 표면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는 것은 건축사의 전문성 영역이다. 나아가, '연잎 효과'를 모방한 '초발수성(superhydrophobic)' 코팅 기술과 같은 현대 기술을 접목해 '눈물'을 방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재료 과학, 환경 공학, 미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통합해 문제를 해결하는 건축사의 통섭적 역량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륵사지 동석탑의 '눈물'은 과거의 건축유산을 현대의 기술로 복원할 때, 단순히 '똑같이 만드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의미와 미학까지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재현해야 한다는 뼈아픈 교훈이다. 앞으로도 옛것을 현대화하는 작업에는 사려 깊은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며, 건축사협회와 같은 전문가 집단이 이러한 과제를 주도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제도적 마련 역시 우리 시대의 중요한 건축적, 문화적 역할이 될 것이다. 우리 건축사들은 '탑의 눈물'을 기억하며, 과거의 지혜를 존중하고 현재의 기술로 미래를 열어가는, 진정한 '온고이지신'의 건축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글·사진. 신민철 Shin MinChoul
(주)위 종합건축사사무소

 

 

신민철 건축사·(주)위 종합건축사사무소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금천구 도시 건축 심의위원을 역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는 위 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이다. 주요 작업으로는 상선원, 오유당, 계룡 미니멀하우스, 크림슨빌딩, 코리아오일실텍 사옥 등이 있다.

archi21c@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