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1. 30. 11:3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intaglio
A Spectacular Feast of Architecture and the Neglected Center
밤
캄캄한 밤 격포를 향해 차를 달렸다. 길은 바닷가 마을을 향해 내려가 얽히고 갈라진 끝에 한적한 마트에 다다랐다. 지쳐서인지 형광등 아래 모든 것이 창백해 보였다. 저녁거리 이것저것을 사서는 그곳으로 향했다. 인탈리오 Intaglio 오늘 자게 될 숙소의 이름이다. 음각이란 뜻의 이태리 말이다. 분명 건축가가 지었을 법한 근사한 이름이다.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깜캄한 언덕 위에 불빛들이 보였다. 가까이 갈 수록 형상이 분명해지며 마치 하얀 박쥐들이 날개를 접고 몸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삐쭉한 계단실과 객실들이 늘어서 있었다. 신기했다. 묘하게 머리 속엔 지나온 격포와 언덕 위의 이 건축물이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잿빛 계곡과 오가는 차를 지켜보던 눈이 그려진 광고판을 떠오르게 했다.
Unit
건축주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숙소를 안내받았다. 계단을 오르니 넓은 마당이 나오고, 그것을 가로질러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통로로 들어섰다. 벽 너머로 프라이빗한 마당이 있고 그 안에 숙소(unit)가 있는 구조였다. 생각보다 넓은 크기에 조금씩 다른 모양을 한 마당은 높은 벽과 곡선으로 뻗은 처마들로 폐쇄적이면서 다소 과장된 인상이었다.
“여기서 바베큐도 하죠.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렇게 벌려놓지 않고 아주 깔끔해요!” “둘이서 말인가요?” “예”
비가 내리는 마당은 조금 쓸쓸했다. 하얀 철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거실이 나오고, 정면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계단이 보였다. 파랗게 빛나는 풀이 마음을 조금 설레게 했다. 실내는 그렇게 크지 않고 천정은 높게 느껴졌다. 싱크대나 가죽, 방석을 빼면 소파를 포함한 모든 것들이 콘크리트와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고개를 들어 공간을 훑어보며 맑은 날 여기저기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들을 상상했다.
부유
inta_GLIO의 4개 철자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 숙소의 이름은 O-Space였다. 1층은 29제곱미터(9평)에, 침실만 있는 2층은 16제곱미터(5평)으로 방 한가운데 침대가 있고 뒷벽 말고는 양쪽으로 테라스와 작은 틈새 마당 그리고 정면 가득 큰 창이 있다. 큰 창 너머 어둠에 잠긴 풍경 속에 멀리 바다가 있었다. 바닥크기가 작아지니 공간은 더 높아보였다. 침대에 누우니 바로 머리 위에 기다란 슬릿 모양의 천창이 보였다. 1층과 달리 바깥 바람과 풍경이 닿을 듯 가깝고 이리저리로 시선이 흩어졌다. 잠을 자는 내내 ‘부유’하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불을 끄고 어스름한 밤빛에 누워 있는 여기가 언덕 위에 빛을 발하던 바로 그 곳임을 알았다. 마치 등대지기의 잠자리 같았다. 창밖으로 겨울 바람이 지나고 있었다.

저마다의 인탈리오
답사를 다녀 온 후 건축가와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려서 살던 신식한옥, 아마도 도시한옥을 그렇게 부르는 듯 했는데, 그 마당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각 숙소를 들어올 때 만나는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하늘로 열린 프라이빗한 공간이 마당이며, 마당을 거쳐 안으로 들어가고 그곳에 머물며 사람들은 사색을 하고 자기를 돌아보는 저마다의 음각, 인탈리오를 새기게 된다고 했다. 물리적으로도 똑같은 unit이지만, 서로 다른 비움의 공간, 마당이 결합하여 G L I O 라는 서로 다른 unit space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숙박영역의 벽과 공간들이 서로 다른 선형과 공백을 이루는 커다란 도장의 전각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주로 체류하는 공간과는 등을 돌린, 들고 나가고 바베큐에 쓰이는 ‘프라이빗 정원‘이라 불리는 이 마당이 설계의 중요한 개념을 드러내는 중심적 실체로 제대로 역할을 하는지 의아했다. 대체로 체류의 공간과 시간의 중심은 pool이 있는 벽 너머 앞쪽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래, 위 거실과 침실에서 바다를 향해 일방향의 디렉션을 강조한 것도 의도와 다르게 ’개념적 중심의 소외’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욕실과 2층에서 프라이빗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나 그 관계는 미미하고 애매해 보였다.
풍부한 조형적 서사
인탈리오에는 건축적 서사가 가득했다. 멀리서도 시선을 끄는 계단탑, 중앙광장 위에 만들어진 노을 전망대, 무덤덤한 벽 위에 올린 병풍처럼 절곡된 concrete wall, 마치 배나 나뭇잎을 연상케 하는 물이 떨어지는 조형물 그리고 건축주와 손님이 만나는 영역 위에 올려진 삼각형 돔 등등. 경험을 축적해온 건축가의 역량이 마음껏 드러나 있었다. 그 중에도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낙석‘이라는 벽 사이에 끼인 정육면체의 조형물이었다. ’어쩌다 여기에?’하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한 편으론 계단실과 콘크리트 벽 사이에 끼인 숙박 유닛을 상징하는 듯도 했다.
교차하는 세 개의 바람
인탈리오에는 3개의 바람이 교차하고 있다. 인생의 제2막을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온 건축주의 바람과 자기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색과 절제의 공간을 꿈꾸는 건축가 그리고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사랑과 추억을 나누려는 손님들의 꿈이 겹치고 있다.
어쩌면 건축이 이 세가지 바람을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들은 ‘느슨하게 결합’되어, 사랑방인 T ground에서 건축주와 손님이 대화를 나누고, 떠 있는 낙석은 건축가의 서사인 동시에 손님들의 인스타그램을 장식한다. 숙소의 마당은 건축적 바람이지만 앞쪽의 풀 테라스는 손님들의 바람이고, 높이 솟은 계단탑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바람일지 모른다. 어쩌면 특이함을 바라는 손님도 합일을 이루는 유일한 것이 이 계단탑일수도 있겠다.
Stay again
“그래서 서로 다른 마당을 붙인 겁니다. 다음에 올 때는 다른 unit에 묵을 수 있도록 말이죠.”
건축가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다시 찾고 싶다면, 사람들은 오히려 처음 마음에 들었던 그 unit을 다시 선택하지 않을까? 마음에 든 공간을 굳이 바꿔가며 머물 필요는 없을테니까.
고향에서의 새로운 만남을 바란 건축주의 바람도, 사색의 장소를 꿈꾼 건축가의 의도도, 과잉된 경험에 지친 손님들의 욕망도 결국은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 다시 머물고 싶은 곳.
인탈리오의 미래도 어쩌면 여기에 달려 있을지 모른다. 사람들이 돌아와, 다시 그 자리에 stay again 하고 싶어지는 것 말이다.
글. 조정구 Cho Junggoo (주)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조정구 건축사·(주)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를 만들어,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도시 답사와 설계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2025년을 기준으로 1,100여 회를 진행한 ‘수요답사’를 통하여 서울의 수많은 동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역조사와 마스터플랜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gugau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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