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스튜디오 파라노이드 오피스 인간적인 브루탈리즘 2026.3

2026. 3. 31. 11:3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Studio Paranoid Office
Human Brutalism

 

 

 

<스튜디오 파라노이드 오피스> © 김용성

 

부동산 사장님의 건축학
언젠가 사무실을 임대하러 다니던 때, 매물을 소개하던 사장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건물 괜찮아. 돌로 된 건물이야.” 우리 도시를 채우는 근생 건물 시장에서 화강석은 신축과 세련됨의 상징이 되었고, 벽돌은 낡은 건물의 표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골목길을 채우던 따뜻한 물성에 대한 향수는 건축사들을 다시 벽돌로 이끌었다.
그래서 스테이 아키텍츠(홍정희+고정석)가 ‘파라노이드’를 설계할 때 먼저 고민한 것도 외장재료가 보낼 신호였다. 최신 유행에 민감한 영상을 만드는 광고 제작사의 사옥을, 오래된 소규모 빌딩이 가득한 강남의 골목길에 지어야 한다. 힘차게 소리를 지르는 재료로 주변과 차별화할 것인가, 아니면 작은 조각을 적층해서 주변과 화음을 낼 것인가.


온화한 텍스쳐와 강인한 스트럭쳐
그들은 두 가지의 혼합을 택했다. 거친 표면의 연한 오렌지색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해서 시간의 흔적을 표현하는 한편, 노출 콘크리트의 구조미를 강조하여 웅장한 목소리를 내게 했다. 뒷골목의 맥락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사옥의 존재감은 드러내는 전략이다.
이 건물의 첫인상은 벽돌 건물이지만, 단순히 주변에 묻어가는 배경으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그 벽돌을 지지하는 구조의 대담함에 있다. 폭이 1.4미터에 달하는 육중한 노출콘크리트 기둥은 건물에 강인한 인상을 준다. 두 다리가 단단히 양 측면을 버티고 그 사이에 벽돌을 쌓았다. 특히 건물의 인상을 결정짓는 코너 부분의 처리는 이 건물의 가장 큰 개성이다. 건축사는 과감하게 코너를 비워내고 그 자리에 노출콘크리트로 된 외부 계단을 배치했다. 수직으로 시원하게 뻗은 이 계단은 건물의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이끈다. 차분한 벽돌 사이로 뻗어 올라간 날렵한 콘크리트 계단의 조형미는 자칫 평범한 주택으로 보일 법한 건물의 인상을 단번에 세련된 사옥으로 바꿔 놓는다.
“나는 힘을 받는 뼈대야”라고 말하는 콘크리트와, “나는 공간을 감싸는 피부야”라고 속삭이는 벽돌이 서로의 역할을 침범하지 않은 채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구조를 숨기지 않고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이러한 태도는 ‘브루탈리즘(Brutalism)’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곳의 브루탈리즘은 차갑지 않다. 거친 뼈대 사이를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재료인 벽돌로 채웠기 때문이다. 온화한 텍스쳐와 강인한 스트럭쳐의 대비, ‘인간적인 브루탈리즘’이라 부를 수 있다.


숨 쉬는 벽, 사람을 위한 배려
함께 건축 일을 하는 부부를 오래 알아온 필자로서, 이들과 대화를 하며 늘 감탄하는 것은 사용자들에 대한 배려를 우선시하는 태도다. 실내 공간은 설계할 때 우선시 한 것은 사용자의 입장이었다. 사옥 건물의 결정은 건축주인 대표가 하지만 결국 가장 오래 이 공간을 사용하는 것은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든 층에 널찍한 발코니를 둔 점이 눈에 띈다. 직원들이 1층까지 오르내리지 않고도 바깥공기를 잠시 쐬도록 하려는 배려다.
소규모 사옥 건물들이 겪는 고질적인 문제는 유쾌하지 않은 근무 환경이다. 여름에는 에어컨과의 거리에 따라 너무 춥거나 덥다. 겨울에는 환기가 부족하고 난방기 때문에 피부가 건조해진다. 대형 오피스처럼 거창한 공조 시스템을 갖출 수 없는 작은 건물에서는 편안한 근무 환경을 위한 건축사의 지혜가 꼭 필요하다.

건축사는 이를 ‘벽돌 영롱 쌓기(Hit-and-miss brickwork)’와 ‘전면 개방형 슬라이딩 창호’의 결합으로 풀었다. 남북으로 긴 대지의 특성을 활용해 창호를 바닥부터 천장까지 완전히 열릴 수 있도록 계획하여 맞통풍이 가능하게 했다. 유리창의 바깥에는 벽돌을 듬성듬성 쌓는 스크린 벽을 만들어 외부의 시선을 차단하면서도, 바람과 빛은 투과시켜 내부 깊숙이 끌어들인다. 건축사의 귀띔에 의하면 덕분에 통화와 회의가 많은 광고 제작사 직원들이 1층까지 내려가지 않고도 발코니에서 쉴 수 있어 좋아한다고 한다.
또한, 자칫 버려지기 쉬운 주차장 필로티 진입부에도 작은 위트를 더했다. 어둡고 삭막한 주차장 입구에 입체적인 페이빙을 적용해 보행자를 배려하고, 벽면에는 LED 디스플레이를 매립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곳은 평범한 빌라가 아니라,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임을 알리는 작지만 명확한 신호다.


강남 슈퍼블록의 미래
파라노이드 사옥의 멋진 옥상에 서서 주변을 바라보니 있자니, 나이가 들어가고 있는 ‘강남 골목의 미래 모습은 어떨까’라는 질문으로 생각이 넓어졌다. 대로변으로는 화려한 랜드마크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고, 한 걸음만 안쪽으로 들어오면 작고 평범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강남 슈퍼블록. 경계부와 내부의 격차가 명확한 이곳의 내부를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장소로 바꿀 수 있을까. 부동산 시장이 규정한 ‘신축과 구축’의 경계를 허물고, 주변에 순응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는 흥미로운 건물로 하나둘 바뀌어 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강남 블록의 성숙한 미래상이 아닐까.




글. 조성익 Cho Sungik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조성익 홍익대학교 건축도시대학 교수 | TRU 건축사사무소 대표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이자 TRU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서울대와 예일대에서 수학 후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맹그로브 숭인’으로 대한민국 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디자인하는 설계를 지향한다. ‘매력도시 연구소’를 통해 건축적 통찰을 도시로 확장 중이며, 저서로 『건축가의 공간일기』 등이 있다.
sungik.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