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30. 11:3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_ Remodeling of neighborhood facilities in Seongsu-dong 2-ga
Rebuilding on Spatial Heritage

리모델링, 도시의 숨통을 틔우는 영리한 생존법
신축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선언이라면, 리모델링은 기존 맥락 위에 새로운 질서를 덧입히는 정교한 편집이다. 최근 리모델링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효율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현재의 요구를 수용하려는 건축적 지혜가 발현된 결과이다. 특히 80~90년대 노후 벽돌 건물들이 밀집한 성수동에서 리모델링은 지역 특유의 헤리티지를 이어가는 유효한 선택지가 되고 있다. 과거의 법규를 지렛대 삼아 현재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이 실용적인 수단은, 성수동이 가진 붉은 벽돌의 질감과 골목의 정취를 지워내지 않은 채 현대적 감각을 덧입힌다. 법규의 변천사 속에 고립된 작은 필지들에게 이는 가장 합리적인 생존 전략이자, 강화된 현재의 건축법을 적용하면 오히려 규모가 줄어드는 역설을 극복하는 건축적 해법이기도 하다. ‘성수동2가 근린생활시설’ 프로젝트는 이러한 제약을 기회로 치환하며, 낙후된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는 리모델링의 전형을 보여준다.
땅의 모양을 닮은 입체적 조우
이 건물은 코너 필지라는 이점을 십분 활용한다. 대지의 모양을 정직하게 반영한 다각형의 평면은 단순한 사각형 매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긴장감과 입체감을 선사한다. 김선동 건축사는 기존 건물이 가졌던 사선의 형태를 감춰야 할 단점이 아닌, 강조해야 할 디자인 모티브로 삼았다. 골목을 돌 때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건물의 표정은 보행자에게 시각적 유희를 제공하며, 정체된 동네 풍경에 세련된 균열을 낸다. 이 건물의 실루엣을 완성하는 외부계단은 이러한 다각형의 매스를 유연하게 감아 올라가며 건물의 사선 형태를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2층에 캔틸레버 구조로 매달린 듯 돌출된 화장실 매스의 모서리를 사선으로 다듬어낸 결정은 건물의 전반적인 조형 언어에 일관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사선의 흐름을 다시 한번 환기하며 조형적 완성도를 부드럽게 뒷받침한다.
하나로 기워낸 동선의 편집술
리모델링의 핵심 과제는 용도 변경에 따른 동선의 재구성일 것이다. 과거 주택으로 쓰이던 당시, 각 세대 접근을 위해 파편화되어 있던 외부 계단들은 건물을 답답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내부가 은폐되어 보이는 이러한 폐쇄성은 상업 임대 공간으로 전용하기에 치명적인 약점으로 보였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흩어진 계단들을 하나의 명쾌한 흐름으로 통합한 것은 건축사가 선보인 이 건물의 가장 큰 수확이다. 1층에서 시작해 코너의 사선을 감아 올라가는 날렵한 백색 철제 계단과 유리 난간은 접근의 편의를 넘어 건물에 역동적인 리듬을 부여하는 오브제가 된다. 육중한 계단 뭉치가 사라진 자리에는 투명한 개방감이 채워졌다. 외피를 타고 흐르는 간결한 동선 덕분에 내부 공간은 바깥으로 드러나고, 행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상층부로 유도된다. 흩어진 길을 하나로 묶어낸 건축사의 결단은, 정적인 노후 주택을 활기찬 상업 시설로 탈바꿈시킨 결정적인 기제가 되었다.
다층적 레이어가 만든 공간의 부피감
리모델링을 통한 물리적 확장은 단순히 면적을 늘리는 작업을 넘어, 건물의 인상을 재편하는 일이다. 건축사는 기존 건물이 가진 다채로운 건축 언어들을 영리하게 활용하여 건물에 풍성한 레이어를 부여했다. 외부 담장은 과감히 들어내어 기피되던 반지하 공간을 매력적인 가로의 풍경으로 끌어올렸다. 노후 골조의 한계로 수직 증축은 3층에 그쳤지만, 가벽이라는 장치를 통해 건물의 볼륨감을 수직적으로 확장하며 루프탑 공간을 단순한 옥상이 아닌 독립된 하나의 층으로서 존재감을 갖게 했다. 과거 건물을 보호하던 처마는 증축된 상부층의 발코니로 치환되었고, 외부 진입 복도로 쓰이던 바닥은 일부 존치시켜 1층의 전용 발코니로 변모시켰다. 건축사는 기존 건물의 유전자를 바탕으로 새로운 레이어들을 겹겹이 덧입힘으로써 건물의 입체적인 부피감을 완성했다.
붉은 기억을 품은 하얀 캔버스
김선동 건축사가 건물의 주 외장재로 백색의 스타코 마감을 선택한 것은 탁월한 전략적 선택으로 읽힌다. 기능적인 측면에서 단열 성능이 취약한 노후 주택의 고질적인 문제를 외단열 시스템을 통해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시각적으로는 다소 복잡한 주변 경관 속에서 건물을 하나의 깨끗한 바탕으로 기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 건물을 흥미롭게 만드는 결정적인 지점은 코너부에 적용된 붉은색 와이드 벽돌의 변주에 있다. 이는 단순히 단조로운 입면에 변화를 주기 위한 장식적 장치를 넘어선다. 이 붉은 면은 기존 건물이 수십 년간 지켜온 붉은 벽돌집이라는 정체성을 선택적으로 계승하는 은유이자 오마주이며, 주변 건물들과의 시각적 유대감을 이어가는 매개체이다. 건축사는 백색의 캔버스 위에 과거의 파편 하나를 상징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신축 같은 세련됨과 리모델링 특유의 서사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건물의 잠재력을 포착하는 건축사의 시선
대지 주변에 김선동 건축사가 작업한 또 다른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을 함께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성수동 골목 한편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들은 언뜻 보면 신축 건물이라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이 매끈한 외형은 결코 과거를 지워낸 결과가 아니다. 건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축사의 예리한 시선이 포착해 낸 기존 건물의 어휘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마감재료, 외부계단, 발코니, 처마 등 이전 건물이 품어온 고유의 특색을 새로운 건축 언어로 치환하여 건물의 새로운 정체성을 세우는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 성수동2가 리모델링 프로젝트 역시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건축사가 기존 건물이 가진 잠재력을 포착해 내는 감각을 지녔음을 증명하며, 그의 작업들이 성수동이라는 지역 안에서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읽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이번 기회에 이 프로젝트를 보며 리모델링의 매력을 새삼 느꼈다. 불경기 속에서도 리모델링이 가진 이 마법 같은 활력이 계속해서 도시의 골목을 비추길 기대해 본다.
글. 전종우 Jun Jongwoo 바우엠 건축사사무소

전종우 건축사 | 바우엠 건축사사무소
연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희림건축에서 실무를 거쳤다. 2015년에 강제용 건축사와 함께 이데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고, 2017년에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였다. 이후 독일 뮌헨공대에서 석사과정을 통해 현대 목조건축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2025년부터 바우엠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여 고층 목구조, 설계 단순화를 통한 친환경건축, 프리패브 및 모듈러시공 등 목구조의 다양한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junjongwoo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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