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1. 10: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Designing the Breath of Humanity, Beyond Merely Optimizing Space
Architecture in the AI Era Viewed Through the Philosophy of Ergonomics
찰리 채플린의 1936년 영화 '모던타임즈'는 2차 산업혁명을 배경으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속에서 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한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을 풍자한 영화다.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할 기술과 기계가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도구화하는 참담한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비정한 생산성보다 인간의 안녕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 영화가 던진 질문은 90년이 지난 지금, AI라는 새로운 기계 앞에 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을 가르치던 시절, 나는 항상 이 영화의 초반 부분을 학생들과 같이 감상하며 ‘기술과 도구는 인간에게 맞춰져야 하고, 그 반대의 지향성에 대해서는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의자나 책상의 높이 하나, 문손잡이의 각도 하나에 인간의 신체적 한계에 대한 이해와 심리적 편안함을 담아야 한다는 이 학문의 중요성은 지금까지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마주치는 수많은 문제 속에서 늘 나의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그 시절 강의실에서 필자는 종종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버스 손잡이 높이는 누구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걸까요?” 학생 대부분은 ‘평균 키의 성인 남성’이라고 답했다. 그러면 나는 되물었다. “그러면 키가 작은 여성이나 어린아이, 휠체어를 탄 어르신은 그 공간에서 어떤 기분일까요?” 가장 많은 사람을 위한 최적의 값이 아니라, 소외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경험까지 배려하는 학문, 인간공학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지금은 AI가 많은 것을 처리하는 시대다. AI는 그 어떤 불평불만 없이 구조시스템, 일조와 에너지 시뮬레이션 등을 분석하고 그에 걸맞은 수많은 대안 도면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며, 법규검토와 비용 효율을 따진 ‘최적의 정답’을 뽑아낸다. 예전에는 몇 주, 몇 달이 걸리던 일들이 클릭 몇 번에 끝난다. 그런데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나는 오히려 인간공학의 본질을 다시 묻게 된다. AI가 계산해 낸 오차 없는 공간이, 과연 우리 삶의 다양한 표정들을 모두 담아낼 수 있을까?
이는 현시대의 경이로운 기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AI가 '무엇을' 만들지를 빠르게 제시하는 시대에, 우리는 '왜 그렇게 느끼는가'를 읽어내야 한다. 단순히 결과물을 뽑아내는 설계 기술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삶을 이해하고 가치를 제안하는 사람으로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통적인 인간공학은 신체 치수를 표준화하는 데 집중했다. 다양한 인체 측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제품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교과서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AI 시대의 우리는 그 데이터로는 잡히지 않는 개인의 특수한 필요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AI는 통계적 ‘평균 사용자’를 위한 공간을 정밀하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통계가 닿지 않는 곳에서 AI는 멈춘다. 예를 들어 청각 장애인을 위한 시각적 알림 체계를 동선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것은 AI 알고리즘이 스스로 해내기 어렵다. 그것은 사용자의 일상을 직접 보고, 그 경험에 공감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이다. 법적 기준만 겨우 맞춘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같은 공간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문턱을 낮추는 포용적인 설계 방식, 즉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을 공간으로 풀어내는 일은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우리만의 영역이 될 것이다.

AI가 공사비와 면적 효율을 최대로 끌어올릴 때, 우리는 때로 ‘비효율적인 선택’의 편을 들어야 할 때가 있다. 인간이기에 사용자의 취향이 효율 계산 밖에 놓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캠핑을 가서 딱딱한 바닥에서 자고, 직접 불 피워 밥을 짓고, 한참을 걸어 화장실에 간다. 최적화된 주거 경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기꺼이 그 불편함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며, 지친 나를 쉬게 하고 일상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다. 좋은 공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기꺼이 머물고 싶게 만드는 것은 최적화된 수치가 아니라, 그 안에서 느끼는 어떤 감각과 여유다. 건축사는 이 역설을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발과 맞닿는 마루의 탄성, 문 손잡이의 질감 등, 이 모든 감각을 사용자의 생활 방식과 엮어 제안하는 과정이 공간을 단순한 장소가 아닌 그 사람의 삶이 담긴 배경으로 만든다. AI가 '평균적 선호도'를 계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아침마다 동쪽 창으로 햇살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에 맞게 창의 위치와 크기를 조정하는 것은 직접 사람을 만나고 관찰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을 세우는 일이 아니다. 지구에서 살아갈 후세에게 빌려온 수많은 재료 위에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작업이다. 한 번 세워진 건물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삶과 함께한다. 탄소를 내뿜고 자원을 써서 지은 건물이 오랜 시간 거기에 살고 일하고 쉬는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가에 대한 답을 AI 알고리즘에게 맡길 수는 없다. 우리가 선택하는 최선의 가치는 기술적 정답을 넘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균형을 가져야 한다. 의뢰인의 요구, 사용자의 편의, 지역 사회의 맥락, 환경의 지속 가능성 등이 복잡한 요소들 사이에서 인간적인 균형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다. 더 많은 가능성을 살펴보고,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오류를 잡아내고, 더 효율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최종 판단은 언제나 사람의 보폭과 눈높이에 맞춰져야 한다. 그 믿음이 이 혼돈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지켜가야 할 마지막 자리이지 않을까? 공간은 데이터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사람이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완성된다.
글·사진. 김성일 Kim, Seongil
건축사사무소 그루

김성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그루
울산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 제주에 정착, ‘건축사사무소 그루’를 개소해 운영하고 있다.
과거 홍익대학교와 숭실대학교에서 인간공학을 강의하며 정립한 인간 중심의 설계 철학을 바탕으로 데이터화된 수치 넘어 사용자의 삶이 개입할 여백이 있는 열려있는 건축을 지향한다.
groogrou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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