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31. 12:10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An Architect
Awaiting the House of Medici
건축은 어떻게 시작되고 완성되는가. 물론 건축사로서 충분한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는 것에서부터 좋은 건축이 만들어지기 위한 토대가 된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실제는 땅을 사용할 수 있는 건축주가 적절한 예산을 가지고 건축물을 의뢰하면서 시작되며, 설계와 시공단계를 거쳐 사용자가 이를 사용할 때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홀로 지어지지 않을 건축물을 디자인해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종이 위의 건축에 그치는 것이며 실제로 구현된 경우에 비하면 그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있다. 건축사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건축주에 의해 맡겨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예술과 역사, 그리고 도시의 형성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이 있다. 금융업을 통해 거대한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이 가문은 부와 권력 그 자체로 유명한 것이 아니다. 소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후원하였으며, 도나텔로,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건축을 비롯한 회화, 조각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였다. 시각예술 분야를 넘어서 음악 분야에도 적극적인 후원을 통해 많은 의미 깊은 성과를 남겼으며, 오페라 장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우리 건축사들은 오랜 교육기간이나 실무 경험을 통해 건축주가 원하는 건축물을 설계해 낼 수 있는 전문가이다. 더욱 기능에 충실하고, 더욱 안전하면서도, 더욱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역량을 쌓고 있다. 최근 들어서 설계 업무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계절에 농기구를 수선하듯, 건축주에 의해 업무가 맡겨지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도록 차분하게 정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사람들이 역량은 있지만 유명하지 않은 디자이너의 제품보다 이미 유명한 명품 브랜드를 구매하기를 즐겨하듯, 기업들은 국내의 건축사에게 기회를 부여하기보다 해외의 유명 건축사들을 지명하고 업무를 의뢰한다. 또한 여러 지자체에서도 건축 기획단계부터 해외의 유명 건축사의 작품을 유치하는 것을 희망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심지어 해외 건축사와 국내 건축사가 협업하는 경우, 아이디어를 제시한 해외 건축사가 큰 비용을 가져가고, 실제 업무량이 많은 국내 건축사는 적은 금액만 받는 경우도 많다. 국내 건축사에게 동일한 신뢰를 가지고 기회를 주며, 동일한 대가를 지급한다면, 해외 건축사들만큼 멋진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업이 바뀌고 공공이 바뀌어야 한다. 이미 유명한 것에 기대는 것보다, 국내 건축사에게 기회를 주고 후원하고 양성하여 이들이 기댈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훨씬 가치 있지 않은가.
우리 건축사들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세계로 뻗어나가게 하는 시작은, 이들이 먼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기업과 공공건축의 발주처가 다시 한 번 숙고해주기를 바란다. 유명세를 소비하는 것보다. 가능성을 가진 이들을 찾아내 발굴하고 후원하는 제도를 갖추고 실행하는 것이 매우 큰 가치를 가진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훗날 한국의 메디치家 역할을 했다고 기억될 것이다. 많은 건축사들이 역량을 펼칠 기회를 더 많이 만나고, 그 결과가 이 책에 소개되다보면 우리 건축이 세계 속으로 걸음을 내딛고 있을 것이다.
글. 박정연 Bahk, Joung Yeon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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