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6. 30. 10:4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Project Review:
The Beginning of Proper Deliberation
고립은둔청년 : 도시의 가려진 존재들
일전에 성북구의 청년지원센터를 설계한 것을 인연으로, 서울시 고립은둔청년들을 위한 지원시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적절한 공간은 임대되었지만, 인테리어를 위한 예산과 기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효과적인 해결책에 대한 자문을 겸한 인테리어 설계의뢰였다. 부족한 예산과 촉박한 일정은 으레 발생하는 상황이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공간의 성격이 오히려 적지 않은 고민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수행해 왔던 프로젝트들이 주로 사람들의 흐름과 활력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이동할지, 어떻게 하면 더 활기차게 이용할지를 고민하는 성격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부끄럽게도) 이 프로젝트를 맡기 전까지 고립은둔 청년문제가 이토록 깊고 커다란 사회적 병리 현상인지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고립은둔문제를 다룬 관련 자료와 다큐멘터리 영상들을 찾아보고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나의 시선은 도시의 가려진 존재들, 타인들과의 관계를 끊은 채 자신만의 섬에 갇힌 청년들의 문제에 조금씩 닿게 되었다.
(우리나라 고립은둔청년의 규모가 약 54만 명에 달하며,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의지 부족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현대사회의 사회·경제 구조의 병폐적 산물로 인식되어야 하며, 국가 차원의 다각적인 집중관리가 필요한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통계 속 숫자로만 보이던 그들의 삶을 설계 프로세스의 중심에 놓고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건축과 공간이 과연 이 고립과 은둔의 벽에 어떻게 균열을 낼 수 있을 것인가.
마트료시카 : 집 속의 집, 방 속의 방
고립된 이들에게 외부 세계는 ‘개방된 광장’이 아니라 ‘폭력적인 노출’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한다. 마음의 문을 닫은 청년들이 큰 용기를 내어 센터를 찾아왔을 때, 갑자기 마주하게 되는 탁 트인 오픈 공간은 오히려 그들을 다시금 움츠러들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개념이 바로 ‘집 속의 집, 방 속의 방’이었다. 마치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사용자가 자신의 심리적 불안 정도에 따라 조금씩 밖으로 나올 수도,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심리적 완충 지대를 제공하면 어떨까 생각하였다. 그래서 센터 내부에 또 다른 작은 집과 작은 방들을 심기로 하였다. 이는 물리적 공간 구획인 동시에 그들에겐 심리적 안전장치가 되며,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어렵게 도움을 구하러 나온 청년들이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머물 수 있는 곳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또한 ‘완전한 단절’이 아닌 ‘느슨한 연결’을 생각하였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타인들과 당장의 소통과 대화가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어쩌면 가장 기본적인 ‘존재의 확인’ 일 것이다. 그래서 공간을 벽으로 완전히 밀폐하지 않고 상부를 개방하고 틈새를 두어, 자신만의 공간에 숨어있더라도 옆방에서 들려오는 낮은 대화 소리, 책장 넘기는 소리, 커피머신 돌아가는 소리 같은 자잘하고 미세한 인기척이 스며들어 느슨한 연결이 되도록 하였다. 보이지 않는 소리와 공기의 흐름을 통해 사회적 유대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낮은 단계의 환대라고 생각했다.

녹록지 않은 현실 : 치열한 줄다리기
결국은 현실이었다. 고립은둔 문제에 대한 충분한 스터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계획하는 공간에 대한 검증이나 확신이 충분하지 않은 채, 촉박한 일정을 핑계로 기본구상과 실시설계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었다. (발주처 보고에서의 열렬한 호응은 필시 부족한 일정 때문이었을 것으로 지금도 생각한다.) 부족한 예산으로 거의 직영공사에 가까운 현장 감리를 수행하게 되었음에도, 그 힘듦과 수고로움보다 설계와 공간에 대한 확신 부족이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오는 현장이었다.
마감재의 질감과 조명의 색온도 하나하나 고립은둔청년들을 생각하면서 발주처 담당자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였다. 차가운 금속 대신 따뜻한 분위기 연출을 위해 라왕합판과 무늬시트를 적절히 매칭하고, 부드러운 곡선 형태를 자연스럽게 넣기 위해 샌딩과 도장작업을 재차 요청하는 등 현장 작업자와의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내가 그린 도면 위의 선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공사가 완료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갔고, 우여곡절 끝에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다행히 기간 내에 공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노고를 아끼지 않고 따라와 준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문현답 : 건축은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개관식을 앞두고 ‘서울청년 기지개센터’라는 근사한 이름이 지어졌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처한 현재 상황이 어둡고 절망적이고 힘들기만 한 멈춤이거나 끝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고 도약하기 위해 힘을 비축하는, 그래서 마침내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는 의미에서 여러모로 큰 공감이 되었다.
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게 되는 담론이 있었다. “건축이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당시의 나에게 이 질문은 거대하고 추상적인, 어쩌면 실현 불가능한 이상론에 가까운 우문(愚問)이었다. 복잡한 사회 구조와 불평등, 심리적 병리 현상을 한낱 콘크리트 덩어리가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하지만 서울청년 기지개센터가 개관한 이후, 많은 고립은둔 청년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위해 방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건축이 비록 직접적으로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뜯어고치지는 못하지만, 그 방법을 찾고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담아내는 역할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 단순한 포트폴리오 이상의 큰 의미를 남겼다. 프로젝트의 규모는 비록 작았지만, 앞으로 내가 건축을 하면서 채우고 갖춰야 할 것이 멋지고 화려한 건축언어가 아니라, 실제 공간을 이용하게 될 사람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려는 태도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 프로젝트가 그 고민의 제대로 된 시작이었음에 감사한다.
글. 권웅규 Kwon Woong-kyu
건축사사무소 도시건축집단

권웅규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도시건축집단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건축역사와 이론에 대해 수학했다. 조성룡도시건축에서 실무경험을 쌓고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리모델링, 선유도공원 재개관 등 다양한 공공프로젝트들을 수행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5년부터 도시건축집단 성북동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2019년부터 광운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연남동 근린생활시설, 김중업 건축문화의 집, 성북예술가압장과 성북도원, 구례예술인마을 주택+음악당, 가회동 O씨 주택, 아임웹사옥, 골든시스사옥 등이 있다.
ubac.s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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