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집안일? 이름 없는 집안일! 2026.9

2026. 9. 30. 10:15ㆍ아티클 | Article/정카피의 광고이야기 | AD Story - Copywriter Jeong

Great Housework?
Nameless Housework!

 

퇴근 후, 집에 도착해서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이들의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가방만 겨우 던져 놓았을 뿐,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국이 끓는 동안 어질러진 빨랫감을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동시에 숙제는 했는지 학원은 잘 다녀왔는지 아이들의 하루를 묻는다. 건성으로 대답하는 막내의 가방에서 알림장을 꺼내 본다. 피리를 가지고 오라고 쓰여있다. 피리 어디 있어? 몰라요. 지난번에 쓰고 어디 뒀어? 몰라요. 찾는 물건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막내는 내일 아침에 아마도 4 개째의 피리를 사게 될 것이다. 미친 중2, 큰 녀석은 모니터에서 눈도 떼지 않고 엄마의 잔소리를 허공으로 날린다. 밥 먹으라는 소리를 열 번쯤 들은 후에야 겨우 식탁에 와 앉는다. 밥을 먹다 말고 무슨 아이템이 나올 시간이라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다. 마른 빨래를 개어 옷장에 넣는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다. 휴지 심을 꺼내고 새 화장지를 끼워 넣는다. 청소기를 돌리려다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할 것 같아 밀대에 먼지포를 끼워 바닥을 닦는다. 저녁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기억에도 없다, 허기가 밀려온다. 어느새 자정이 가까운 시간, 서둘러 아이들을 침대로 보내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는다. 아이들이 어릴 때,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지 않는 날이면 반복되던 내 가사노동의 풍경이다.

 

자막)
미루고픈 집안일
나만 하는 집안일
몰아하는 집안일
하기 싫은 집안일
평생 하는 집안일
끝이 없는 집안일
귀찮은 집안일
위대한 집안일


욕실 수건은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딸기에는 원래 꼭지란 게 달려있다
피부가 깨끗해진 게 아니라 거울이 깨끗해진 거다
물에 불려야 하는 건 사람만이 아니다
줄눈은 반려 곰팡이를 키우는 곳이 아니다

 

당신의 아침을 위해 누군가의 아침은 더 일찍 시작된다
그릇에 물 담아 놓는 건 최소한의 사랑
로봇청소기도 창틀은 못 닦는다
전구를 갈면 깨닫게 된다 삶이 얼마나 어두웠는지
쌀이 자라서 밥이 되는 게 아니다
대충 먹을 수 있다고 대충 만든 건 아니다
그 많던 음식물 쓰레기는 누가 치웠을까?
화장지를 다 쓰면 휴지 심이라는 게 나온다
뒤집어 벗은 양말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건 회귀본능이 아니다
스스로 몸을 털고 말리는 우산은 없다
여름이라고 선풍기가 제 발로 걸어 나왔을까
흰옷이 여전히 하얀 건 이유가 있는 법
그릇을 제자리에 놓는 것까지가 설거지
계절이 많은 나라에 사는 건 수고가 많은 일
“우리 집 고양이 털 안 빠져”는 돌돌이 안 돌려 본 사람의 말
여태 식물이 살아있는 건 누군가의 부지런 때문
당신의 자신감을 누군가 매일 펴주고 있다
저절로 돌아가는 일상은 없습니다

 

KCC건설 스위첸_TVCF:위대한 집안일_2026

 

‘위대한 집안일’이라는 제목이 붙은 KCC건설 스위첸의 2026년 브랜드 캠페인을 보다가 오래전 가사와 돌봄과 밥벌이에 허덕이던 때가 생각났다. 광고는 욕실 수납장에 빨아서 개킨 수건을 넣고 먹기 좋게 딸기 꼭지를 따고 거울을 닦는 일처럼 사소한 집안일을 차례로 보여준다. 밥을 짓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 뒤집힌 양말을 바로잡고 젖은 우산을 말리는 일, 계절마다 선풍기와 침구를 꺼내고 넣는 일도 이어진다. 평상시에는 누가 했는지 의식도 못하고 지나치는 작은 집안일이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당장 불편하고 불쾌해지는 일들이다. 영상은 로봇청소기가 있어도 창틀은 사람이 닦아야 하고, 설거지는 그릇을 씻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씻은 그릇을 제자리에 놓아야 끝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KCC건설 관계자는 “집이 단순히 머무는 공간이 아닌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배려가 쌓여 완성되는 공간이라는 점을 전하고자 했다”며 “당연하게 여겨졌던 집안일의 가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스위첸보다 앞서 집 안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주목한 주택회사가 있다. 오사카에 본사를 둔 주택건설기업 다이와하우스공업(大和ハウス工業, 이하 다이와하우스)은 2017년 맞벌이 부부를 조사하다 흥미로운 차이를 발견했다. 남편들은 집안일을 자신과 아내가 3 대 7 정도로 나눈다고 생각했지만, 아내들이 느끼는 비율은 1 대 9에 가까웠다. 문제는 요리나 빨래처럼 분명한 집안일만이 아니었다. 떨어진 화장지를 사다 놓고, 세면대 수건을 갈고, 현관의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우편물을 확인하는 자잘한 일들은 누군가 계속하고 있지만 정작 ‘집안일’로조차 잘 인식되지 않았다. 다이와하우스는 이런 일들을 ‘이름 없는 집안일(名もなき家事)’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이 조사를 바탕으로 ‘SHARE HEART’라는 제목을 붙인 웹무비를 만들어 공개했고, 유튜브 공개 두 달 만에 조회수 160만 회를 넘겼다.
영상은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한 여성에게 “지금 행복하세요?”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내는 행복한 편이라고 답하면서도 일이 바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털어놓는다. 남편은 자신도 쓰레기를 버리고 욕실을 청소하며 집안일을 나눠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주면 완벽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기는 해요. 그래도 해주고 있으니까요.”
딸이 일과 가사에 지쳐 보인다고 걱정하던 친정 부모는 얼마 뒤 딸 부부와 손녀를 집으로 초대한다. 그런데 이전과 달리 아버지가 빨래를 정리하고 차를 준비하며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함께한다. 달라진 부모의 모습을 알아챈 딸에게 어머니가 말한다.
“우리말이야, 집안일을 같이 해보자고 서로 이야기를 했어. 둘이 힘을 합쳐서 하는 게 정말 좋더라고.”
그리고 ‘분담’과 ‘셰어’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보통은 각자 자기 할 일을 하느라 따로 움직이잖아. 둘이 함께 뭔가를 하는 시간은 별로 없고. 결국 집안일도 각자 맡은 일을 하는 데 그치게 되지. 그런데 그걸 ‘셰어 한다’고 생각하면 말이야,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좀 더 만들 수 있잖아.”
부모의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자신이 그동안 맞벌이라는 이유로 당장 해야 할 일만 어떻게든 해내며 살아왔음을 돌아본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린 딸은 다과상을 들고일어나 자신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다.

 

자막)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아내)     지금까지는 둘 다 일하니까, 당장 해야 할 일들만 어떻게든 해내면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바빠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엄마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일은 계속하고 싶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도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아요.
             열심히 집안일을 해치우고, 지쳐서 자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 직장에 가고,
             평일은 그렇게 끝나버려요. ‘이래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 싶은 거죠.
             맞벌이 부부니까 원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까 ‘셰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우리도 가족과 함께할 시간을 조금 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막)     집안일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고마워」라는 말을, 더 많이

 

다이와하우스공업_웹무비:SHARE HEART_2017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이와하우스는 그 회사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원 1,019명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회사는 여성의 활약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과도한 가사 부담을 떠안고 있는 현실이 드러났다. 다이와하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안일 전체를 가족 모두가 함께 셰어 한다’는 새로운 주거 개념을 고안했고 이를 ‘가사셰어하우스’라는 실제 주택으로 구현했다. 다이와하우스 홈페이지에는 맞벌이 여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지은 ‘가사셰어하우스’가 소개돼 있다. 2016년 10월 준공된 연면적 122.80㎡(37.15평)의 2층 철골주택인 이 집은 현관에서 세면실과 ‘패밀리 유틸리티’를 일직선으로 연결해 귀가하면 손을 씻고 옷을 갈아입어 바로 세탁 바구니에 넣을 수 있게 설계해, 세탁•건조•개기까지 한 공간에서 해결하도록 했다. 현관에는 가족 네 명이 각자의 외투와 신발, 열쇠, 가방 등을 스스로 정리하는 ‘개인 전용 정리 로커’를 두었고, 식탁 주변에는 학교 알림장이나 우편물 등을 보관하는 전용 수납공간을 마련했다. 2층으로 가져갈 빨래나 물건은 계단의 ‘포켓’에 잠시 모아둘 수 있게 했다. 누군가가 가족의 뒤를 따라다니며 물건을 치우고 챙겨야 하는 ‘이름 없는 집안일’을 줄이기 위해, 가족 각자가 자기 일을 자연스럽게 하도록 집의 동선과 수납 자체를 설계한 것이다. 

 

도야마현에 2016년 10월 실제로 지어진 ‘가사셰어하우스’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파에 털썩 주저앉던 나의 숱한 밤에는 이름이 없었다. 스위첸은 “저절로 돌아가는 일상은 없습니다”라고 말했고, 다이와하우스는 그 ‘저절로’의 뒤에 숨어 있던 일들에 ‘이름 없는 집안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광고가 한 일은 결국 같다. 늘 곁에 있어서 보이지 않던 노동을 보이게 만든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분리 배출하면서 엄마나 아내를 ‘도와준다’고 말한다면, 집안일은 여전히 한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집안일은 누군가의 일을 거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다. 완벽하게 할수록 일한 표시가 나지 않는 가사노동에 이름을 붙인 일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주 작은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의 두 광고를 보면서 울컥하기도 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나간 그리고 죽는 날까지 끝없이 계속될 나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오래, 상념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UHLhLBRMS8
KCC건설 스위첸_TVCF:위대한 집안일_2026_유튜브 링크
https://www.facebook.com/watch/?v=1377507858999304
다이와하우스공업_홍보영상:SHARE HEART_2017_페이스북 링크
https://www.daiwahouse.co.jp/jutaku/visit/vol155/
다이와하우스의 ‘가사셰어하우스’ 사례_홈페이지 링크



 

글. 정이숙 Jeong, Yisuk 카피라이터

 

 

정이숙 카피라이터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카피라이터로 광고와 인연을 맺었다. 롯데그룹의 대홍기획을 시작으로 한화그룹의 한컴, 종근당의 벨컴과 독립 광고대행사인 샴페인과 프랜티브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일했다. 지금은 디지털 마케팅 에이전시의 CD로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응답하라 독수리 다방(2015)』, 『광고, 다시 봄(2019)』, 『똑똑, 성교육동화(2019)』 시리즈 12권, 『김민준의 이너스페이스(2020)』가 있다.

 

abacab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