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으로 보는 한옥의 인문학 8각 기둥의 덕목을 실천한 남원 몽심재(夢心齋) 2026.10

2026. 10. 31. 10:35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Humanities of Hanok Viewed From the I Ching (Book of Changes)
Namwon Mongsimjae: Embodying the Virtues of the Octagonal Pillars

 

연재순서

1. 서론 –역사적 고찰
2. 퇴계, 9자 연못에서 우주를 품다
3. 8각 기둥의 덕목을 실천한 남원 몽심재(夢心齋)
4. 경복궁 아미산 굴뚝은 왕비의 수신서(修身書)
5. 두 개의 섬이 있는 보길도 세연지
6. 도산서원 기숙사의 방문짝 수는 왜 다를까

 

 

조선 시대 가사규제는 기둥의 높이뿐만 아니라 규격과 형태까지 위계별로 정하였다. 원형 기둥은 궁궐의 대문과 정전 등 주요 건물과 대군이나 군의 정침, 사찰의 일주문과 대웅전 등 주불전 그리고 향교나 서원의 주된 건물에 한하였다. 민간 주택은 물론 위에 열거한 곳의 일반건물도 모두 각재를 사용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조치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에 의거한 것인데, 이로 인하여 목재의 손실이 컸다. 즉 방형 기둥은 원형 기둥을 사용할 때 보다 직경이 4분의 1가량 더 큰 목재를 사용해야 같은 하중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합리성에 더하여 소빙하기(小氷河期)로 인한 목재의 품귀현상 그리고 조선 말기 행정의 문란은 민간에도 원형 기둥을 암암리에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현존하는 고택은 방형 기둥이 대다수이고 간혹 원형 기둥이 눈에 띄며, 다각기둥은 경복궁 향원정처럼 문이 달린 정자의 경우에나 볼 수 있다. 그런데 몽심재(夢心齋) 사랑채의 툇마루 기둥은 현존하는 고택 중 유일하게 팔각형이다. 필자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발간한 ‘민가 건축’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해설은 8각 기둥의 셋째 칸과 넷째 칸 사이에 기둥 밖으로 쪽마루를 연장시킨 점만 강조했기에, 이러한 8각 기둥이 다른 고택에도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후 8각 기둥은 몽심재가 유일하다는 것을 알고 답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문서도 없고 구전(口傳)도 채집할 수 없었다.


몽심재는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도입한 고려 충신 정몽주의 친구이자 두문동 72현의 영수인 송암 박문수의 후손인 연당 박동식(1753∼1830)에 의해 18세기 건립됐다. 박문수는 고려 조정에서 정승을 지냈으며 정몽주·길재와 더불어 고려삼절로 불릴 만큼 곧은 사람으로, 두문동에 들어가 불에 타 죽으며 불사이군한 분이다. 이후, 죽산 박씨는 그의 아들부터 출사 하기 시작하여 조선조에서도 명문가가 되었으며, 몽심(夢心)이란 당호도 박문수가 두문동에 은거하면서 지은 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그 칠언절구는 다음과 같다.

 

격동류면원양몽 隔洞柳眼元亮夢
마을을 등진 버드나무는 *원양을 꿈꾸는 듯하고
등산미토백이심 登山薇吐伯夷心’
산에 오르니 고사리는 백이숙제의 마음을 토하는 것 같구나.
*원양은 도연명의 호이다.

 

몽심재 팔각기둥

 

8은 불교의 팔정도와 기독교의 팔복 그리고 유교의 팔덕, 팔조목, 및 주역의 팔괘가 있다. 기독교의 팔복은 주택의 건립 시기와 무관하기 하기에 제외한다면 불교와 유교만 남는다. 그런데 불교라면 아녀자들이 거주하는 안채에 있어야 하는데, 바깥주인이 거처하는 사랑채의 툇마루 기둥이라면 이는 이 가문의 선조가 도입하고 조선의 통치이념인 된 성리학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는 추측일 뿐 명확한 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였다.


필자는 금년 초여름에 다시 몽심재를 찾았고, 사랑채의 주련부터 기둥의 윗부분까지 샅샅이 살폈다. 그 결과 양단 기둥 위 도리에 그려진 태극과 모래시계 그림을 찾을 수 있었다. 이로써 이 기둥이 성리학의 뿌리부터 실천까지 덕목을 표현한 것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 태극 팔괘라는 가장 근원적인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것이다.


성리학 프로세스의 첫 단계는 태극 팔괘 변화의 법칙과 대립 속의 조화 그리고 순응과 절제의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한다. 둘째 팔덕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효제충신(孝弟忠信), 즉 인간이 마땅히 갖춰야 할 여덟 가지 도덕적 품성으로 덕목을 기르고 가치관을 확립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단계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로 나의 인격과 행동을 올바르게 처신하고, 분란 없고 화평한 가정을 이루며 이후 나라와 세계를 잘 다스리는 실천의 단계로 완성된다. 결론적으로 몽심재의 태극과 8각 기둥은 ‘태극 팔괘의 철학적 사유에서 출발하여 팔덕으로 덕목을 기르고 가치관을 확립한 후, 대학의 팔조목으로 개인의 수양에서 세상의 완성까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잊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건축주와 그 후손들은 이를 얼마나 실천하였을까?

 

사랑채 마루에서 본 요요정과 연못. 연못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 우측의 처음부터 있었던 큰 바위 존심대(存心臺)가 보인다. 존심대는 ‘자기의 본심을 간직하고, 자기의 본성을 기르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것’이다란 의미로 맹자의 존심양성(存心養性) 수심연성(修心養性)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간채 대문 오른쪽은 행랑아범의 거처인 온돌방이 있고, 그 우측에는 요요정이란 마루방이 있다. 그리고 그 우측에는 연당이 있다. 이 연당은 사랑채에서 보이지 않지만, 집주인이 연당이라 이름하고 사랑하였다. 따라서 주인이 연꽃을 감상하려면 요요정에 들렀을 것이다. 그런데 행랑아범 방에도 요요정으로 문이 나 있다. 이는 주인이 사용하지 않을 때는 너희도 즐기라는 주인의 배려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업체 대표가 자신의 전용 헬스클럽을 너희도 나 없을 때 사용하라는 정도의 복지혜택을 사원들에게 베푼 셈이니, 일거양득의 건축을 한 셈입니다.
안채에는 좌측 헛간 쪽으로 마루가 있고, 그 위쪽 부엌에는 방이 딸려 있었다고 한다. 이 마루와 방은 여종들이 작업하다가도 주인 눈치 안 보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인데, 그 마루도 이들을 위하여 더 크게 달아내주었다고 한다. 황희정승이 ‘종도 하늘이 낸 사람’이라면서 종의 아이를 돌본 것과 같이 몽심재의 주인도 종들을 아끼고 존중해 주었다.

 

정문과 행랑채. 우측 끝 빈 공간이 요요정
존심대 바위

 

조선사회의 종가는 봉제사 접빈객을 가장 큰 일로 여겼다. 몽심재도 건축 시기부터 손님 접대에 방점을 두었다. 고택의 사랑채 방은 대체로 3개이고 많아야 5개인데, 이 집은 한 칸 방이 7개, 골방까지 나뉜 방은 무려 10개이다. 그만큼 접대를 잘하기에 묵어가는 손님들이 많았다는 증거이다. 몽심재는 대를 이어 흉년이 들면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받지 않고 구휼미를 내주었다고 한다.


몽심재에는 정원 안의 큰 바위와 그곳에 새긴 글씨, 후원의 조성 기법, 여성을 위한 낮은 계단 등 건축적 특성도 많지만, 본문에서는 8각 기둥만 논하였다. 팔각기둥 주련에는 주자의 경제잠에서 따온 글귀가 있다. ‘고요한 마음으로 거하며(潛心以居) 몸으로써 바르게 행하며(正行以躬) 겉과 속을 바르게 하며(表裏交正) 움직일 때나 머무를 때나 어긋남이 없게 하라(動靜無違)’이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기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몽심재는 팔각기둥을 세우며 결심한 태극팔괘를 생각하며 팔덕을 익히고, 아래로는 종과 하인에서부터 낯 모르는 과객과 소작인에 이르기까지 대학의 팔조목을 실천함으로써 팔각기둥의 뜻을 대를 이어 실천하였다.




글. 장양순 Chang, Yangsoon
前 본협회 이사 및 감사·본지 및 대한건축사신문 편집국장·건축사사무소 창건축

 

 

 

장양순 건축사, Columnist · 건축사사무소 창건축


홍익대 및 동 대학원에서 한국건축사를 전공하고, 대한건축사협회의 임원으로 본지 편찬위원장, 건축사신문 초대 편집국장과 건축문화대상 시행위원장을 역임하면서, 홍익대, 강원대, 명지대 및 한서대에서 40년 간 제자를 육성했다. 저서로 『한옥 건축학개론과 시로 지은 집』, 『툇마루 한담』 등이 있고, ‘본 협회 50년사’ 건축사지 500호 별책 등을 편찬했다. 가곡 ‘논개’, 동요 ‘무지개 떴다’, ‘건축사 찬가’ 등 작곡 활동과 더불어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cyss111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