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의 늦가을 정취와 함께한 대한건축사등산대회 2018.12

2022. 12. 10. 09:0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KOREA INSTITUTE OF REGISTERED ARCHITECTS(KIRA)’s hiking competition to enjoy the late autumn flavor of Moaksan Mountain.

 

모악산 입구 표지석

 

 

11월 10일 모악산에서 거행하는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대회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일찍 집 을 나섰다. 모악산은 여러 종교에서 성지로 삼고 있다.

 

도착 후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길가에 나물과 과일 파는 사람들이 드문 드문 앉아 있어 삶내음을 풍겼다.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창립 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산행에서 많은 회원들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서울 회원들과 교대로 초청 산행을 함께했던 충북 회원들은 지금도 반갑게 만나고 있는데, 그 때 함께 왔던 자녀들이 지금은 성인이 되었다. 걷다보니 선녀다리를 지났다. 외길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부딪치듯 비켜 지나가고 계 곡방향으로는 멀리 정상이 보였다. 대원사 쪽의 완만한 길에는 새로 데크길이 만들어 지고 있었다. 「천일암-황금도장」 표지판에는 단학·국학·뇌교육·지구시민운동의 발원지라고 쓰 여 있었다. 그야말로 여러 종교와 정신수련 단체 등에서 이곳을 모태로 삼고 있는 듯 했다. 조금 가파라진 오름 길을 걷다보니 대원사에 도착했다. 대원사는 백제가 멸망한 660년 개 산조 보덕스님이 제자와 함께 개창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고려시대 1130년과 1374년, 그리 고 정유재란 때 건물이 불타 없어진 것을 진묵스님이 중창했다. 대웅전 앞마당에 이르니 아 득한 경내에서 늦가을 정취가 느껴졌다. 마당 앞쪽의 큰 소나무 뒤로 대웅전이 놓여 있고 대원사 편액이 걸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툇마루에 앉아 마당 쪽을 바라보면서 쉬고 있 었다. 그리고 경내를 돌아보고 나오니 담장 너머로 대운사 경내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대원사의 늦가을 정취                                                          모악산 스케치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진 쉼터

 

대원사를 뒤로 하고 길을 오르다 정상부가 보여 스케치를 했다. 다시 정상부로 향하다 700m 이정표가 보이는 무제봉에 올랐다. 모악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거기서 무우제 (舞雨 祭=祈雨祭)를 올리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잠시 후 모악산 정상에 도착(793.5m)했다. 모악산의 산세는 동쪽 사면을 제외하고는 전체 적으로 완만한 편이다. 동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는 구이 저수지에 흘러든 뒤 삼천천을 이 루어 전주시로 흐르고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두월천·원평천은 동진강으로 흘러들며 김 제 벽골제의 수원이 된다. 이곳에 금이 많이 생산되어 금산이라는 지명이 생겼는데, 지금도 주변에는 사금광산이 몇 군데 있다고 한다.

모악산은 그 이름에서 어머니의 포근한 품이 연상된다. 모악이라는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 면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에서 따왔다는 말과 큰 산이라는 뜻의 엄 뫼를 의역해서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모악산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너른 김제평야에 면해 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전주 동고산성 일대를 도읍으로 정했는데, 모악산은 전주동고산성과 남서쪽을 위용하며 지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풍수지리의 명당으로 꼽히는 모 악산은 용화교 등이 일어난 미륵신앙의 본거지이자 원불교의 태동지로서 각각의 종교에서 성지로 여기고 있는데, 한 때 수십 개의 신흥종교 집단이 성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룡산의 신도안, 풍기의 금계동과 함께 난을 피해 살만한 십승지로 꼽혀왔으며, 빼어난 자연경관과 한국 거찰의 하나인 금산사를 비롯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어 호남 4경의 하나로 꼽히기도 하다. 또한 계룡산과 더불어 가장 기가 센 산으로 꼽혀 여기저기 기도처가 많았다. 정상 전 망대에서 산행을 시작한 주차장 쪽을 바라보니 구이저수지 등이 보였다. 구이저수지 뒤쪽 에 어머니를 모신 묘역을 가늠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곳 지역권인 전주가 고향이지만 고교 졸업 후 바로 서울로 올라갔던 터라 주변을 잘 돌아보지 못했었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하산을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조금 내려서니 한 사람이 소나무 숲 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온전히 자연과 호흡하는 모습이었다. 금 산사로 내려가면서 충남 등 전국 각지서 온 여러 회원들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다 전남의 건축사 일행과도 만났다. 잠시 후 완만한 길에 접어 들어 내려가다 보니 우측에 보물 제 24호 혜덕왕사진응탑비가 나타났다. 그것은 금산사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유서 깊은 유물이어서 반가웠다. 그 주변에서 회원 가족들이 짙게 물든 단풍을 배경 으로 단란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옆에는 맑은 개울물이 시려 보였다.

 

금산사 스케치                                             금산사 미륵전 전경                                                           금산사 대적광전 내부 불상

 

금산사 경내로 들어서니 국보인 미륵전이 측면으로 보였다. 답사로 여러 차례 와 본 곳으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대찰인데, 어렸을 때 어른들로부터 금산사로 놀러갔다 왔다는 말씀을 가끔 듣기도 했던 지역의 유명 관광지이다. 금산사는 법왕 원년(599년)에 창건됐다. 그 후 신라 혜공왕 2년(766년) 진표율사가 금당에 미륵장육상을 모시고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으 로 삼았던 까닭에, 이곳에서는 미륵전이 주가 된다. 하지만 매표소로부터 정문격인 금강문 을 통해 들어서는 일직선 중심축 선상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 놓여 있고 미륵전은 그 우측에 직각선 축선에 놓여 있어 현재는 대적광전이 주불전처럼 보인다. 미륵전은 외관으 로 보면 3층이지만 내부는 단일 공간으로 되어 있다. 키가 큰 미륵불상을 모시기 위해 그렇 게 한 것이다. 그리고 대적광전에는 삼신불을 비롯하여 노사나불과 약사여래불, 그리고 각각의 협시보살상까지 모두 존치되어 한국의 불전 가운데 가장 많은 불상이 놓여 있다. 그 리고 건물의 규모도 큰 편이다.

경내를 돌아본 다음 입구 다리를 건너다보니 가을 정취가 물씬 풍겨났다. 성문 같은 홍예석 문도 보였다.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쌓은 것이다. 금산사는 견훤이 아 들 신검에 의해  폐위되어 유폐를 당한 곳이기도 하다

 

 

행사장에 모인 회원들                                                                               흥겹게 춤을 추는 제주 회원들

 

금산사 입구를 나와 김제 주차장 쪽에 마련된 행사장에 도착했다. 뜨거운 김이 나는 국밥 을 한 그릇 받아 자리에 앉자 막 행사를 시작했다. 석종구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회장 등 이 인사말을 한 다음 경품을 추첨해서 나눠 주었다. 그리고 경남과 충북 회원 등 낯익은 회 원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산행을 마친 회원님들의 표정이 맑고 밝은 가을 햇살 처럼 명랑해 보였다.

잠시 후 사회자가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제주 회원들이 일정상 먼저 자리를 떠야 하 니 인사를 나누자고 했다. 인사를 하고 나자 제주의 이길형 건축사가 노래를 부르고 가겠 다며 앞에 나와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 흥겨운 분위기가 되었다. 제주 회원들도 함께 덩실 덩실 춤을 추면서 흥을 돋구웠다. 그리고 그 다음 충북건축사회 김일환 회원과 일행 단체 노래, 그리고 사회를 맡은 박태식 사무총장도 자청해서 노래를 불렀다. 잠시 후 서울 지역 회원들이 돌아갈 시간을 고려해 먼저 일어서며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하고 돌아서다보 니 대구 장명환 회원이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면서 지난날 젊은 모습이었는데 이제 나 이 먹은 티가 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지난 세월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주변의 야트 막한 산 너머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늦가을 추적해진 단풍 빛깔에 생기를 더 하고 있 었다.  고향의 추억, 그리고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 행사와 더불어 나눴던 지난 시절이 주 마등처럼 떠오른 날이었다.

 

 

 

 

 

 

 

 

 

 

 

글. 김석환 Kim, Sukhwan · KIRA ┃ 터.울 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