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건축하기 2019.1

2022. 12. 12. 10:22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Being an architect in the province

 

15년 전 나는 서울 대학로에 있던 설계사무실을 퇴직하고 고향 근처의 시골로 이 사를 했다.

분당으로 감리를 나갈 예정이어서 경기도 수지로 아이들과 함께 이사를 했는데, 감리 나갈 날이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거의 1년이라는 시간을 수지에서 대학로까 지 출퇴근하게 됐다. 수지로부터 대학로까지 출퇴근하는 데에는 편도 2시간이 걸 렸고, 긴 출퇴근시간도 그렇지만 야근이며 철야며 몸이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상황 이었다. 초등학교 다닐때까지 아이들을 시골에서 키우겠다고 한 와이프와의 약속 도 있었고 또 다른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시골행을 선택했다

 

당시는 SNS가 막 확산돼가던 시기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며 자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넷을 통해 공유하기 시작했고, 다운시프트라는 주제가 유행하 여 도시를 떠나 시골의 삶을 영위하며 생업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이 늘기도 했다.

 

그때 난 인터넷만으로 시골에서 건축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홈페이지를 통해 영업을 하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해 사무 실 임대료 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 시골집에서 사무실을 오픈했을 때는 몇몇 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이 있 어, 근근이 사무실을 유지해 갈 수 있었다. 또 시골에 사는 동네분들과도 사귀어 시골 농가주택을 설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가주택 설계 몇 건 가지고 생계를 유 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도시를 디자인하는 국제공모에서 상을 받아 도시와 관련된 일들이 생겼고,학교에서 강의 의뢰가 오면서 생계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었다. 물론 그것으로 도 적절히 생계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십 몇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무 실을 닫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할 정도의 고비가 두세 번은 있었던 것 같다. 귀향 3년 후 나는 대전으로 사무실을 옮겨 시골에서의 재택근무를 마쳤다.

 

창밖에 올해의 첫눈이 내리고 있다. 10여 년전 시골서 재택근무할 때의 겨울이 떠오른다.

 

시골에 내려간 다음해 3월 폭설이 내려 근 10여 일을 집안에 묶여 있은 적이 있 다. 당시 며칠은 불가피하게 그리고 그 다음 며칠은 자발적인 칩거로 집을 떠나지 않았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켓 단추보다도 큰 눈송이들... 허공을 덮은 눈에 의해 찾아온 쓸쓸해 보이는 어둠...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앞산을 오를 때 내가 새긴 깊은 눈발자욱.

 

그리고 나에게 찾아온 고립감... 마치 쟈코메티의 조각과 맞닥뜨린 것과 같은 내 내면의 수축...

 

그 즈음 나에게 지역에서 건축을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

섣부른 희망 그리고 찾아온 고립, 두려움.

그리고 나의 건축이란 그 두려움과 자연스레 이별해 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글. 최현규 Choi, Hyunkyu M.A.C.K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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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규 건축사 · M.A.C.K 건축사사무소

 

최현규 건축사는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 하고 두우건축과 이로재, 김영준도시건축에서 실무를 쌓았다. 2004년 M.A.C.K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해 2005년 행정중심 복합도시 도시개념공모전에 입상한 후 도시와 건축 중간 영역 의 다양한 작업을 해 왔다. 현재 행복도시 상업업무용지 BA, 행 복청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고 목원대학교와 한남대학교 등 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한밭대학교에서 친환경 건축 관련 박사 논문을 진행 중이다. 다수의 주택, 종교, 상업시설을 설계하였 고, 2016년 중앙일보 친환경건설산업대상을 수상한 <안양 마 드리드>를 설계했다.

mack21@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