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_ 청담동 비원 땅의 결대로 지은 건축 2019.8

2022. 12. 24. 09:1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rchitecture built based on the land’s texture

서울 강남의 도시 구조는 평평하지 않고 굴곡이 많은 땅을 무지막지하게 두부모판 만들듯이 그리드로 반듯 반듯하게 잘라놔서 온전하게 집을 앉히기 정말 어렵다. 무신경하고 성의 없는 도시계획이라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지적도상으로는 네모반듯한 땅이지만 그 땅이 가지고 있는 3차원적인 형상은 네 귀퉁이의 높이가 완전히 다른, 계획하기 정말 까다로운 땅을 만나기 일쑤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주 큰 나라이다. 수평 투영 면적은 남북한 합쳐 22만 평방킬로미터로 그렇게 넓은 면적이 아니라지만, 산지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노년기 지형이므로 주름이 많다. 그 주름을 쫙 펴서 표면적을 계산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입체적인 체적을 가진 땅이다.

주름이 많으니 사연도 많다. 또한 오래된 연륜 만큼이나 우리의 땅은 단순하지 않다. 서울을 비롯해서 우리의 도시들은 굴곡 큰 지형에 도시를 만들고 마을을 조성하였고 그 안에 집들을 앉혔다. 조선 초에 수립된 한양의 도시계획을 보더라도, 정 연한 그리드를 따르지 않고 땅의 결을 이해하고 그 흐름에 거스르지 않는 방법을 따랐다. 교토나 베이징 등 비슷한 문화를 가진 나라의 수도와는 큰 차이가 난다. 서양식 교육을 받은 우리는 우리 도시와 마을에 담긴 그런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측정하는 도구가 다른 것이고 재보는 자의 눈금이 다른 것이다. 아무리 재봐도 딱 떨어지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온다. 그건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자가 근본적으로 우리의 땅을 잴 수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당최 이해가 안 간다며 땅에게 화를 내봐야 소용없다. 아니 우리가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들어와 온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서구의 척도와 사고가 우리의 땅에는 맞지 않는 것일 것이다. 우리의 땅에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로 땅을 측정하고 건물을 지어야 한다.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다. 건축사는 사람과 땅이 꾸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땅에 업을 짓는 직업이다. 자유롭고 평온하게 잘 지내 고 있는 땅에 무거운 건물을 올려놓고 복잡한 인간사를 담기 때문이다.

예전에 TV에서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매를 조련하여 짐승을 잡는 우리나라의 전통 매사냥에 관한 내용이었다. 스승은 제자에게 기본적인 기술을 가르치며 여러 날 훈련을 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준다. 스승이 마지막으로 전수하는 것은 현란한 기법이나 고도의 수법 등의 핵심기술이 아니라 매사냥의 정신이다. “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된다”고 스승은 이야기한 다. 창공을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 매의 자유를 빼앗고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일이기에, 궁극적으로는... 매에게 미안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런 정신이 기본이 되어야 진정한 매사냥꾼이 되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취해야 하는 건축의 자세 혹은 정신 또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아무리 기계가 좋아져도 한두 시간의 비에 마을이 쓸려가고 커다란 건물이 엄청난 재해를 입는다. 자연은 강하다. 건축은 그 자연을 극복하는 엄청난 용기와 기술이 아니라 자연과 공존하는 지혜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주변에서 주먹이 날아 들어온다. 그런 케케묵은 이야기를 21세기 에 아직도 하냐며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딱 좋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사실 건축이라는 것에 정답이 없고 사람의 삶에도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 자기의 삶을 사는 것이고 모두 각자 자기의 건축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잴 수 있는 눈금을 가진 자나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땅에 들어가 느껴보고 답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청담동 ‘비원’이 앉아있는 땅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예전에 한강을 면한 언덕이 었는지 큰 고개의 내리막에 있다. 지금은 무척 많은 집들과 상가가 들어서 그 땅의 속성이 마치 오랫동안 거친 일을 하고 살았던 사람의 손가락 지문처럼 다 지워져 있다. 다만 급한 경사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장비를 앞세우고 들어가 땅을 메우거나 파내고 평평하게 앉힌다고 생각하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 는 일이다. 

유타건축의 김창균 건축사는 그 지점에서 고민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네 변의 고 도가 다른 땅이며 중심을 놓을 위치가 애매한 땅, 그리고 시시각각 주변의 환경이 변하는 땅에 근린생활시설이 들어갈 저층부와 주택이 들어갈 상층부의 건물을 놓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건물을 보기 위해 청담동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리고 벽돌의 덩어리가 정연하게 쌓여있는 건물을 밖에서 한참 봤다. 두 개의 도로가 교차하며 두 개의 도로는 각 자 아래로 경사진 도로였다. 대지의 효용이 극대화 되어야 하는 지가가 높은 땅인지라 계속 땅에서 건물들이 더 큰 면적으로 새롭게 올라오는 곳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풍경이고 지형이고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는 아주 난처한 땅이다. 외관으로 볼 때는 짐짓 무덤덤하게 도시의 풍경에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경우 대지에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을지, 내부가 궁금했다. 그 흐름을 내부에서 받아들 이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건물의 용도상 그런 해결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건물의 모서리에 길게 뻗어있는 계단을 통해 위로 오르며 건물의 내부로 들어갔 다. 김창균 건축사의 선택과 공간의 구성은 아주 적절했다. 마치 아귀가 잘 맞는 사개맞춤처럼 자연스럽고 견고하게 땅에 붙여놓았다. 경사에 맞게 중간 중간 판을 뿌려놓고 다양한 길들을 연결시켜 주었다. 길이 연결되는 지점에 어김없이 바깥이 반쯤 보이고 하늘이 뚫려있는 정원이 나타난다. 외부를 향해 창이 있는 임대층과, 외부로는 창이 없고 하늘을 향해 열어놓은 비밀 정원으로 부르는 테라스 공간이 삽입된 크지 않은 주택이 수직으로 붙어있다.

주재료인 연한색의 고벽돌로 쌓은 여러 개의 덩어리가 엇갈려 물려있고 그 사이로 계단이 끼어든다. 도로에서 각층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한 군데의 코어에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택 가능한 여러 개의 계단이 있다. 그리고 각 층에 작지 않은 크기의 테라스 공간이 있으며 그 테라스는 주변의 여러 경관을 취한다. 마치 예전의 전통건축에서 각자의 안대(案帶)를 가질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놓는 것과 유사하다. 이로써 각 층은 일률적인 수직 적층이 아닌 각자 다른 면을 향해 열리게 된다. 그런 의도는 각자 다른 창을 가진 입면에서도 나타난다. 전면으로 나타난 창은 높이가 다른 수평으로 긴 창이고, 후면에는 수직으로 길게 찢어놓은 창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건물의 외피는 벽돌 영롱쌓기와 통줄눈쌓기, 그리고 가장 보편적인 치장쌓기가 번갈아 나타난다. 변화가 심한 건물의 덩어리 구성과는 대조적으로 최대한 표현을 억제한 입면은, 약간은 무덤덤하며 커다란 바위처럼 견고해 보인다.

투명과 반투명이 교차되며 건물은 그 무게감을 덜고, 경사와 정원이 반복되며 대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무겁지만 무겁지 않고 외부 의 경사가 내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된, 땅의 결을 살린 건축이 완성되었다

 

 

글. 임형남 Lim, Hyoungnam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사무소 가온건축 · 건축사

임형남 건축사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둘 사 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사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1998년부터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 이란 순우리말(순한국어)로 가운데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 (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 간답고, 자연과 공존하는 집을 만들고자 한다. 금산주택, 루 치아의 뜰, 신진말 빌딩, 존경과 행복의 집, 언포게터블, 미 장아빔 등을 설계했다. 적십자 시리어스 리퀘스트, 유니세 프 관련 청소년 시설, 북촌길·계동길 탐방로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했다. 조선일보, 세계일보 등에 건축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 을까』, 『사람을 살리는 집』, 『나무처럼 자라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풍경화첩』등 11 권의 저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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