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7. 09:03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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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가족공동체 해체의 전조증상이라도 되는 양, 우리 청년들이 집을 뛰쳐나가 ‘혼밥’, ‘혼술’, ‘혼놀’에 탐닉하는 붐(boom)이 일더니, 어느 날부턴가 ‘셰어하우스(share house)’라는 독특한 주거형태가 우리 곁에 슬며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주거발전과정에서는 다들 쌓고 늘리는 데만 급급했는데, 이제는 그 행태를 일단 멈추고 잉여공간을 ‘나눠서 함께 살자’라는 취지란다. 어쨌든 이 역시 주거공동체의 또 다른 변태(變態)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그동안 이 지구상에 출현했던 수많은 주거공동체들의 시원은 우리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깊고 오래됐다.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다른 동물과 본격적으로 차별화되기 시작한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인류 최초의 피난처이자 공동주거공간인 동굴에서 뛰쳐나와, 지상에 처음 ‘집’을 지을 줄 알았던 선사시대로부터 근대 농업생산시대에 이르기까지, 무리를 지어 ‘함께 모여 살아야만’ 비로소 생존해나갈 수 있었다.
그 흔적은, 그저 맹수와 비바람을 막고 가리는데 급급했던 구석기시대의 ‘막집’에서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공간의 분화가 시작된 신석기시대의 ‘움집’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그저 서너 명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살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원형의 평면형태에서 점차 타원형이나 장방형의 평면형태로 공간이 확대되고 또 주거공간과 저장공간이 분화되는 등 갖은 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어떻게 더 함께’ 모여 살 것인가에 대한 절실한 노력과 탐구가 우리 건축역사의 출발이었던 셈이다.
우리 조상들은 거친 자연환경으로부터 단지 생존하기 위해서 공동의 주거공간을 형성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계급이 본격적으로 분화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 이후부터는 더 큰 권력을 움켜쥐거나 그 권력을 좀 더 넓은 지역에 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크고 작은 마을(취락)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그 오랜 생존법칙에서 터득한 경험과 지혜가 축적되어 어느새 집단무의식으로 자리 잡게 된 탓인지, 주거공동체에 대한 현재 우리들의 갈망 역시 아직까지 퇴화되지 않은 하나의 본능처럼 번뜩일 때가 많다. 근대 이전의 내로라하는 곳마다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던 집성촌(集性村)이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열기가 식을 줄 모른 채 도시개발이라는 실팍한 명목으로 여기저기에서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는 아파트가 그렇다.
어쨌든 그렇게 숙명적으로 형성되어 온 ‘마을’이라는 우리 조상들의 오래된 발명품 하나가 우리를 이렇게 강력한 공동체로 묶어두게 되었고, 우리 개개인도 부지불식중에 그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자연스레 지니며 살게 됐다. 그게 때로는 가정이나 이웃이라는 소규모 단위공동체로 그치기도 했지만, 또 때로는 혈족이나 민족, 국가 등 더욱 더 곤고한 대규모 운명공동체로까지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직간접적으로 옥죄어 놓는 ‘우리’라는 역할을 독특히 지탱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작금의 ‘모듬살이’ 행태는, 날이 갈수록 더 빠르고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무한질주를 거듭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의 ‘세어하우스(share house)’ 열풍만 봐도 그렇다. 이 돌발적인 주거형태가 주거공동체에 대한 지금까지의 우리의 상식을 적잖이 흔들어 놓고 말았다. 공간을 하나로 집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공간을 나누어서 공동생활을 영위해나가자는 발상부터가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동안 익숙해진 덧셈을 뺄셈으로 치환해놓은 것 같기도 하고, 흡사 음과 양을 뒤집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요즈음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내려온 ‘산 사람은 모여 살게 하고(陽宅), 죽은 사람은 흩어놓는다(陰宅)’라는 경구(警句)마저 무색하게 되고 말았다. 상하수도와 전기 등 과학기술의 혜택으로 말미암아 이제 산 사람은 전원주택이란 명목으로 여기저기 흩어져 살게 되었고, 죽은 사람(陰宅)은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치러지는 이 맘 때의 벌초(伐草)와 성묘(省墓)라는 고충을 핑계 삼아 납골당이나 가족묘지로 신속히 옮겨졌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우리는 공동체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혼족’의 출현까지 목도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에스엔에스(SNS)로 자리를 옮겨 다들 재빠르게 또 다른 관계망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요즈음, 지금까지의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라는 ‘공동’의 주거공간은 그저 ‘SNS’에서 펼쳐지는 가상공간에 마음과 영혼까지 빼앗겨버린 채 우리 현대인들이 밤에 겨우 몸만 뉘였다 떠나게 되는, 허울 좋은 ‘주거공동체’로 전락해버린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우리가 발을 딛고 사는 이 땅을 직시하면서부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사실을 슬금슬금 깨닫게 됐다. 주역의 64괘중에서 우연히 ‘지뢰(地雷) 복(復)’ 괘 하나를 꺼내든 격이었다. 저 땅( ) 속 깊은 곳에서 우레( )가 뇌성(雷聲)을 치며 지나다니고 있는 아우성 소리를 듣게 된 것이다. 최근의 이 질풍노도와 같이 전개되는 우리 주거공동체의 급변(急變)도, 그 오랜 세월동안 우리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온 공동체가 마침내 멸종되어 나가는, 그런 쇠락의 과정만은 아니었던가 보다.
사실, 아침저녁마다 우연스레 스쳐 지나듯 마주치고 있는 우리 이웃들과의 인연도 그리 간단치만은 아니라고 한다. 우리 주거공동체의 범위를, 눈에 보이는 지상에서 저 땅속 깊은 세계까지 넓혀보니 그건 더 분명해보였다. 오늘아침까지도 상하좌우로 벽과 천정을 ‘쉐어(shear)’ 해서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우리 이웃과는 진즉부터 불가분의 물리적 관계망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제저녁 내가 샤워한 뒤 버린 생활하수와 오늘아침 시원스레 배설한 나의 대소변이 저 땅 속 깊은 곳에서 이웃집 오물과 마구 뒤섞여진 채, 오수배관을 따라 머나먼 순환여행을 함께 떠났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想起)됐다. 결국 과거에는 지상에서 함께 버젓이 드러내놓고 의도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던 공동체에서, 이제는 서로의 대소변만이 지하에서 함께 처리되는 ‘은폐된 관계’로 변모된 것만 다를 뿐이었다. 아니 우리 공동체 구성원 간의 유대관계가 훨씬 더 은밀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 저희들끼리는 아예 하나로 뒤섞여서 각 지자체마다 번듯하게 마련해 놓은 ‘하수종말처리장’으로 직행하고 있었는데, 원인제공자이자 위탁자인 우리들만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오늘 아침 부지불식간에 마주쳤던 수많은 이웃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더 정겹게 다가왔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얼굴을 맞대고 있는 우리들은 그저 한낮 눈짓만 주고받는 정도의 사이가 아니라, 아예 똥오줌까지 섞어가며 모여 사는 진정한 공동체(community)의 일원이었는데,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 오호, 이를 어쩌랴!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 건축사
이 글을 쓴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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