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바둑과 그레질 2020.4

2023. 1. 12. 09:03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세기적인 대국에서 ‘신의 한 수’로 그간의 관심을 모아왔던 프로바둑기사 이세돌이 지난해 11월 마침내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은퇴를 하는 그 순간까지 역시 그다웠다. 평범한 대국으로 마무리 짓지 않고 이른바 접바둑을 선택한 것이다.
세칭 ‘입신(入神)의 경지’라 불리는 프로9단이 먼저 흑돌을 잡고 ‘치수고치기’ 대국을 벌인 것도 그렇거니와, 최종 3국에서는 이미 승패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는 듯 181수만에 미련 없이 돌을 던진 뒤, 복기(復碁)하는 과정에서 그 특유의 진지한 자세를 견지한 것도 쉽사리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몇 년 전 세간의 기대와는 달리 알파고에게 1승 4패로 완패한 직후,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이세돌이 그렇게 적극 옹호하고자 했던, 우리 인간의 두뇌가 인공지능에게 밀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를 필두로 도처에서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 인공지능의 이 거침없는 행보는, 이번 ‘한돌’과의 대국에서 재차 확인되었다시피 이미 우리인간의 사고능력을 저만치 앞서나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게 어디 바둑뿐이랴?
그 은퇴대국을 지켜보던 나는 인공지능 ‘한돌’에 대한 호기심보다도 이세돌이 선택한 이른바 ‘접바둑’에 더 마음이 쏠렸다. 더구나 세계바둑대회에서 무려 18차례나 우승을 구가하며 조훈현과 이창호의 계보를 이은 당대 최고의 프로기사가 제 스스로 두 점을 먼저 깔고 두는 ‘접바둑’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보통 일반 아마추어들은 상대보다 바둑실력이 좀 부치다 싶으면, 먼저 반상(盤床)에 흑돌을 적당히 깔아놓고 난 뒤 바둑을 두곤 한다. 그렇게 접바둑으로 겨루게 되면 설사 실력차이가 좀 나더라도 마치 쐐기로 틈을 꽉 쪼여놓은 마룻장처럼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뒤뚱거리지 않고 어느 정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게 되어, 적당히 수담(手談)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게 인생의 축소판이라 불리는 바둑의 또 다른 매력이다.
그런데 그 접바둑의 맞은편에 천하의 이세돌이 흑(黑)을 잡고 앉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그 파란만장했던 바둑인생을 정리하는 그의 은퇴대국이었음은 더 말해 무엇하랴? 
설사 상대와 이러저런 차이가 나고 틈이 생겨서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쉽게 내치지 않고 서로 맞춰서 공존하던 전통적인 지혜는, 바둑에서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우리들의 실생활을 담아내던 한옥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세찬 비바람과 모진 북풍한설까지 맞아가며 오로지 꼭 그 한자리 주춧돌에 얹혀있는 기둥하부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흔적은 유난히 더 드러나 보인다. 한옥의 배흘림기둥 최하단 밑 부분마다 웅크리고 있는, 이른바 그레질의 공덕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강하고 튼튼한 구조물로 알려진 철근콘크리트구조나 철골구조의 기둥은, 보통 기초에 단단하게 정착되어 있다. 시쳇말로 기초와 기둥은 흔들려도 같이 흔들리고, 죽어도 같이 죽게 되는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옛날 우리네 한옥은 그렇지 못했다. 기초가 되는 주춧돌은 석재이고 기둥은 목재라고 하는, 서로 아주 다른 이질재로 맞춰지다보니 구조적으로 도저히 일체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세돌 9단은 지난 2016년 9월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국을 펼쳤다. 이 이벤트는 딥마인드 측의 제안을 이세돌 9단이 수락함으로써 성사됐으며, 그의 이름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사진=한국기원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 한옥에 정착된 결구기법(結構技法)이 바로 ‘그레질’이다. 어떻게 보면 그레질은, 제 스스로 존립하고 싶어 하는 기둥이 주춧돌에게 통 크게 접고 들어간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그래도 본래 기둥이 그렇게 염치없고 무례한 존재만은 아니었나 보다. 그냥 청탁만 하는 게 아니었다. 목수의 날렵한 손놀림에 따라 제 몸에 섬뜩한 먹줄(線)이 아로새겨지고, 그 그려진 표시대로 ‘기둥 밑 아랫부분’의 살점이 툭툭 떨어져나가는 아픔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태생부터 다른 주춧돌의 윗면과 기둥하부는 서로의 굴곡진 형태 그대로 맞춰져서 마침내 일체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 자라온 환경이나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뤄나가야만 하는 우리네 인생살이 과정과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내가 먼저 “한 수 접는다”라고 하는 것이나, “내 몸의 일부를 도려내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남모르는 아픔과 상처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로 인하여 이 땅에 마침내 한옥 한 채가 우뚝 설 수 있었으며, 사람 사는 세상에서 흔히 벌어지곤 하는 갈등과 단절도 어느 정도 치유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날로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 성취감에 함몰된 탓인지 과거 기꺼이 “먼저 한수 접을 줄 알았고”, 또 “먼저 도려낼 줄 알았던”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 어느새 소진되어 버린 것 같다. 그간 낮추고, 맞추고, 도려낼 줄 알았던 뿌리 깊은 지혜가 도처에서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지금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감염확산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그 증상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저 한옥의 기둥과는 달리 그동안 우리 인간들은 정말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까지는 헌신하지 않았다. 또 과감하게 제 몸을 도려낼 줄도 몰랐다. 되레 주춧돌이 반듯하게 다듬어지지 않았다고 탓하며 책망하기 일쑤였다. 겉으로는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면서도 진정으로 “먼저 접고 먼저 덜어낼” 자세는 겸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자고로 세상만물이란, 상대의 존재가 나의 실재(實在)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성립되는 음양의 이치작용으로 알았는데, 이번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상생(相生)하자며 두 손을 맞잡은 상대가 의도치 않게 상극(相剋)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체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들 경쟁하듯 치열하게 구입한 마스크로 서로의 얼굴을 가린 채, 서로 차단하고 이격을 하느라 온 지역사회가 아우성들이다.
그런데 가만 짚어보자. 스스로를 먼저 접지 않고 맞바둑만 고집하다보면, 당초부터 수담(手談)은 나눌 수 없게 된다. 또 울퉁불퉁한 자연석 주춧돌인 줄 알면서도 기둥 하부에 먼저 그레칼을 댈 용기를 내지 않으면, 결국 기둥은 주춧돌에 세워지지도 못하고 맨땅에 묻힌 채 쉽게 썩어 사그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자초하게 된다.
우리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서로 잇고 맞추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한옥에서만 그렇고, 바둑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온 세상이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현대 이 네트워크 사회에서 더욱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인지도 모른다. 
이번 ‘코로나19’로 더 벌어진 세대나 지역, 그리고 계층 간의 갈등과 단절로 인하여 다들 내면으로 점점 ‘섬’처럼 고립되어만 가는 이 절박한 시대에, 이세돌이 모든 걸 과감히 털고 보여준 ‘접바둑’의 자세와, 또 오랜 세월에 걸쳐 한옥기둥의 밑뿌리에 아로새겨진 그 ‘그레질’의 흔적에서, 우리 공동체를 다시 하나로 공고하게 묶어나갈 수 있는 결구기법(結構技法)의 단초라도 찾았으면 좋겠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 건축사

 

이 글을 쓴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 정을 마치고, 현재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대표건축사로 활동 하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 작업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 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 의 ‘온새미 사상’과 문화재 실측설계 현장에서 마주친 수많은 과거와의 대화를 통하여 우리의 살터를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 난 사랑’, ‘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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