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10. 09:06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Immortal architecture 01
Campanile di San Marco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30,000,000명. 연간 베니스를 찾은 방문객이 2018년 기준 3,0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하루에 10만 명씩 찾아갔으니, 가장 많이 사랑받은 도시라 할 수 있겠다. 베니스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은 어디일까? 나폴레옹이 ‘유럽의 응접실’이라며 극찬한 산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일 것이다. 이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을 비롯해서 베니스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있다. 광장의 중심에 98미터 높이로 솟은 베니스의 랜드마크, 산 마르코 종탑(Campanile di San Marco)이다.
종탑의 몸체는 사각기둥 형태의 붉은 벽돌 구조로 되어 있고 상부는 아치로 마무리되었다. 아치 위는 경사가 급한 사각뿔 형태의 첨탑을 올리고 꼭대기에는 황금빛의 대천사 가브리엘 동상이 있다. 우아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 때문인지 이 종탑을 흉내 낸 유사 종탑도 많다. 베니스와 가까운 슬로베니아의 도시 피란(Piran)의 종탑(17세기)부터 시작해서 시애틀의 킹 스트리트 역 시계탑, 호주의 브리즈번 시청사 타워, 덴버의 다니엘스 앤 피셔 타워, 남아프리카 공화국 포트 엘리자베스 타워, 시애틀 타워, 캘리포니아주의 버클리 대학 타워, 뉴욕 월스트리트 14 타워, 펜실베이니아 존스타운의 성당 종탑 등 이 종탑의 영향을 받은 타워가 한두 개가 아니다.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거나 똑같이 재현한 것까지 전 세계에 산재해 있다. 베니스와 이탈리아를 넘어서 인류의 건축역사에서 전형적인 종탑 유형인 셈이다. 이 정도면 베니스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자부심을 갖게 해주는 명실상부 베니스의 상징 건물일 것이다.
그런데 참담한 비극이 1902년 7월 14일 오전 10시경 일어났다.
산마르코 광장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400년간 우뚝 솟아 있던 종탑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베니스의 상징적이자 이탈리아 그리고 유럽을 대표하는 종탑인 이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이 무너지는데 필요한 시간은 불과 몇 초였다. 굉음을 듣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모인 시민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을 것만 같았던 종탑이 무너진 벽돌더미로 변한 모습을 보고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화재로 쓰러지는 숭례문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며 느꼈던 우리들의 그 상실감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종탑의 안전점검을 매일 하고 있었고, 붕괴 당일 오전, 의심스러운 소리를 듣고 위험을 느낀 토목기술자와 담당 경찰관 그리고 경찰 부국장의 빠른 판단으로 붕괴 30분 전 광장의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고 한다. 붕괴를 막을 수는 없었지만, 정기적으로 진행한 안전점검으로 인명피해는 막은 셈이다.
그렇다면 지금 산마르코 광장에 서 있는 종탑은 무엇인가?
우선 깨진 벽돌 잔해를 치우고, 다시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재료를 골라냈다. 그리고 1903년 4월부터 1912년 4월까지 9년간의 복구공사를 통해, 지금의 종탑을 다시 세웠다. 겉모습은 고증을 통해 기존 모습을 재현했지만, 속은 완전히 달라졌다. 보다 안정적인 종탑을 만들기 위해 구조 보강이 더해졌고, 무엇보다도 내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게 된 것이 큰 변화였다. 덕분에 지금의 우리가 베니스를 방문한다면, 종탑에 오르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 붕괴 전의 산마르코 종탑의 모습은 1831년 Quadri-Morett가 남긴 도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각형의 나선 계단으로 오르고 중심은 비워져 있다. 비워져 있던 중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서 벽체의 두께가 기존보다 얇아질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100년.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종탑 중 하나면서 동시에 베니스의 상징인 이 아름다운 종탑은 물리적으로 100년이 조금 넘었다. 위치, 형태, 규모는 붕괴 전 종탑과 같지만, 구조와 내부 공간은 새롭게 계획된 건축물이다. 우리의 건축법에서는 재축(再築)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건물의 재축은 1912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1902년 붕괴된 종탑도 그 이전에 있던 종탑이 파손되어 재축한 것이었다.
산 마르코 종탑의 재축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시작은 9세기 초반에 세워진 타워였다. 아마 목조였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초기에는 급수를 위한 물탱크 또는 등대의 기능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타워가 보수와 변형을 거쳐 12세기에 어느 정도 기능과 모습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를 첫 번째 종탑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첫 종탑은 번개로 인한 화재 피해가 잦았다. 1388년 심하게 파손되었고, 1417년과 1489년에도 각각 화재로 큰 피해가 있었다. 바다 위에 홀로 떠 있는 도시 베니스에서 가장 높은 타워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이렇게 크고 작은 파손과 보수 과정을 거치면서 16세기 초반까지 유지되었다.
첫 타워가 1511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사들의 디자인이 반영된다. 이때 기본계획을 한 건축사는 Giorgio Spavento였고, 이어서 Batolomeo Bon이 계획을 보완하여 1514년에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 시기에 완성된 종탑을 두 번째 종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종탑의 모습은 르네상스 양식의 이 두 번째 종탑이다. 하지만 우아함과 아름다움으로도 번개를 피할 수는 없었다.
1548년, 1565년, 1658년, 1745년, 1761년, 1762년에 번개로 인한 화재가 있었고 화재가 심한 경우에는 벽돌이 깨지고 건물이 파손되면서 인명 피해도 있었다고 한다. 산마르코 종탑의 파손 정도와 보수공사의 모습은 Giovanni_Antonio가 남긴 펜화(18세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쪽 벽면이 심하게 파손되어 있고, 보수를 위해 작업대를 매달아 공사 중인 산 마르코 종탑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1776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피뢰침이 설치되었다. 아마도 이 그림에 그려진 공사를 마친 후였을 것이다. 이때부터 번개로 인한 화재는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피뢰침 설치 이전의 화재 때문에 벽돌과 구조가 약해져서 일까? 두 번째 타워는 1902년 아침에 그렇게 무너졌다.
재축을 신축과 구분하여 지칭하는 이유는 새 건축물이라고 하더라도 이전 건축물이 갖는 도시적 맥락과 건축적 의미를 계속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축은 신축보다 의미가 더 클 수도 있겠다.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이 다 하더라도 기능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수명이 계속된다면 그 건축물은 세워지고 또 세워질 것이다. 베니스 시민들이 산 마르코 종탑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세운 것처럼 말이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t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 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 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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