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프로세스를 보여준 두 영화 ‘더 와이프’ &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 2020.2

2023. 1. 10. 09:0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wo films showing the process of creation ‘The Wife’ &‘The Architect’ 

 

두 영화 모두 제목이 이상했다. 보통명사에 해당되는 지극히 일상적인 용어라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하나는 작년 가을 비행기에서 보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 인터넷쇼핑몰 아마존에서 단지 제목 때문에 주문해서 본 영화다.
왜 ‘더 와이프’라는 제목에 끌렸을까? 하하. 난 남자니까 ‘남편(The husband)’이라는 영화를 봐야하는 것 아니었을까? 그런 영화가 있는 줄도 몰랐지만……. 그래도 ‘더 와이프’가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라 손이 갔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는 순전히 자료를 조사하다가 원제가 ‘The Architect(건축사)’라는 점 때문에 본 영화다.
이 두 영화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미리 말하면, 우선 차이점은 최고와 최악이라는 점이다. 공통점은 제목을 중심으로 영화의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점이다. ‘월간 건축사’에서 이 영화들을 이야기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은가? 월간 건축사는 건축 설계를 주업으로 하는 특정 직업인의 잡지다 보니, 건축을 중심으로 모든 이슈들이 전개되는 특징이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두 영화는 월간 건축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다. 보는 사람 마음이니까……. 
그럼에도 이 영화들을 굳이 왜 여기 코너에 올렸을까. 그 이유는 원하는 것을 이뤄나가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성공의 욕망과 어리석음, 모순 등이 현실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많은 건축사들이 창업과 경영을 꾸리는 과정에서 선택하곤 하는 동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더 와이프’의 부부 관계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에서는 건축사와 건축사에게 일을 의뢰하는 고객 간의 관계를 통해 건축사에 대한 풍자를 느낄 수 있었다. 고상한척 하지만 실제로는 깊이가 없는 캐릭터를 볼 땐 낮이 뜨거웠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창작 프로세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영화 ‘더 와이프’는 여성을 차별하는 시대 속에서 한 여성이 느끼는 사회적 성취욕과 그 이면에 형성된 복잡한 내적 갈등을 그리고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을 표현한 이 여주인공은 아무나 연기하기는 힘든 역할인데, 뛰어난 연기자 글렌 글로스가 눈빛 하나로 갈등과 욕망, 서러움 등 모든 감정을 표현했다. 놀라운 노년의 연기자 글렌 글로스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손가락 하나, 걸음걸이 하나로도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에 감탄하곤 한다. 그녀의 감동적인 연기 덕분에 촌스러운 영화 제목일 수도 있었던 ‘더 와이프’는 고상하고 지성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됐다.

 


 
영화는 남편이 영광스러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현재의 장면에서 여주인공 조안의 기억을 따라 과거의 시간으로 흘러간다. 과거는 현재 조안이 느끼는 혼란스러움의 이유를 보여준다. 젊은 시절 조안은 뛰어난 자질과 탁월한 관찰력을 소유한 소설가 지망생이다. 동시에 현실에 부딪치기보다는 시대의 제약에 한발 물러서는 성격이었다. 조안은 자기안의 나약함과 소심함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때마침 그녀 앞에 나타난 영악한 소설가 조는 이를 이용한다.
현재 나이든 이들 부부는 마냥 아내와 남편처럼 보인다. 나를 포함한 많은 남편들은 매일 아침 아내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먹어야할 영양제며, 안경이며, 심지어 며칠 전에 입었던 옷이 어디에 있느냐고……. 조 역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그렇게 행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는 자신이 인생에서 거둔 성공에는 아내의 헌신과 희생이 뒤따랐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든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이기적 존재야’라고 아내에게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하지만 사실 현재의 이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앙탈 또는 응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남편의 성공, 남편의 성취는 언뜻 가족을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다행히도 이 영화 속 남편은 노벨상 수상자로 나설 때에도 은근히 아내를 의식한다. 그럼에도 철저하게 아내에게 도움을 받고, 마음 한 구석으로는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함께 건축을 하는 부부들이 생각났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 공감을 해줄 수 있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아내가 남편의 뒤에 서서 후원해주는 경우가 많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동업이나 마찬가지다. 동업 경험이 있는 자로서 ‘더 와이프’의 부부를 동업의 입장으로 보아서 그런지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재능이 우수하지만 성격상 나서지 못하는 캐릭터와 욕심 많고 경쟁심이 강한 캐릭터는 동업하는 사이에서 대체로 볼 수 있는 흔한 조합이다. 문제는 나서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가 언제나 그림자처럼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열정과 재능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내면에 잘 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더 와이프’의 조안처럼 자신의 재능이 표현되면 일단은 만족감을 얻는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정도 성취가 나타났을 때에 벌어진다. 세상은 항상 두 개를 고루 인정하려 하지 않고 우선순위를 매기려든다. 그렇기 때문에 전면에 등장하는 이들은 뒤에서 서포트하는 동업자를 배려하지 않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진리다.
남편의 바람기나 허세에도 불구하고 조안은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신의 노력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동업자나 동업하는 부부들이 겪는 갈등과 유사하다.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동업은 깨지게 되거나 서로 중첩되지 않는 역할들로 역할 재정립을 하게 된다. 
건축은 창조의 영역인 동시에 개인적 표현의 욕망이 드러나는 일이다. 그것이 억제되고 인정받지 못할 때 생기는 갈등은 상당히 큰 편이다. 다행히 ‘더 와이프’의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좋은 성과를 만들어낸 탁월한 팀워크를 가진 경우였다. 우리 건축계도 보면 이런 부부 건축사들이 상당히 많다. 대표적인 기업이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다. 반면 심각한 갈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함께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다양한 경영의 관점과 이해가 적용돼야 가능한 일이다. 

창작의 도덕성, 의뢰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더 와이프’가 부부간의 미묘한 긴장과 갈등을 소설가라는 영역에서 설명했다면 창작자와 이를 소비하는 의뢰인 간 관계를 설명한 영화도 있다.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가 바로 그렇다. 사실 이 코너에 소개하기엔 어설픈 영화지만 영화가 그리는 건축사를 그냥 웃어넘길 순 없었다. 확대해서 해석을 하자면, 작품을 하는 건축사를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해야 할지 난감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건축사에게 일을 의뢰하는 부류는 대개 세 가지가 있다. 평생 꿈이었던 주택이나 자신이 사용할 공간을 원해서, 수익을 내기 위한 영업용 건축이 필요해서, 그리고 공공을 위해서. ‘마일스와 함께 집 짓기’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주인공이 평생 소원이었던 자신의 집을 짓기 위해 조망이 매력적인 낡은 집을 구입했다가 그 집이 파괴되자 새로운 집을 짓기로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주인공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켜줄 건축사를 찾았다. 그러나 건축사는 의뢰인이 아니라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집을 지었다.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공감을 했다. 코미디답게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외관으로 집을 뒤덮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내용이나 전개되는 과정을 보면 이 영화는 B급 영화에 가깝다. 그러나 영화가 풍자하는 건축사의 모습이 사실적이라 마냥 웃고 넘길 수는 없었다. 순전히 건축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작품이 존중받지 못하고 훼손돼 이에 분노하는 경우를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본다. 이글을 쓰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 작품 하자고 의뢰인들에게 희생을 요구한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도 해본다. 물론 나 자신은 항상 의뢰인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많은 건축사들의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건축이나 일반건축의 경우 의뢰인의 요구가 반드시 사용자의 요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간간이 건축사들로부터 듣는다. 이런 이유로 건축사들 중에는 자신의 요구가 곧 사용자의 요구라고 믿는 의뢰인들과 충돌하기도 한다. 사실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전문가다. 전문 건축사라면 공공건축이든 일반건축이든 사용자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그가 원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가장 첨예한 갈등은 사적 건축, 특히 주택 부분에서 나타난다. 과연 건축사들은 의뢰인의 꿈의 건축을 누구를 위해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있나? 섣불리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다. 누군가는 아름다운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꿈이고, 다른 누군가는 아름다운 집 자체가 꿈일 테니 말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건축사와 의뢰인들은 동상이몽의 관계가 많다. 아무도 보지 않을 그저 그런 영화에 이토록 페이지를 할애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영화에서 바로 이런 직업적 고뇌와 갈등을 보았기 때문이다. 
서로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두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보면서 각기 다른 영역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지만 두 경험 모두를 기억하고 있는 입장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생각을 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