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그리고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수도원 2019.12

2023. 1. 7. 09:06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Mission San Juan Capistrano

 

12월은 한 해의 마지막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의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예수의 탄생을 추정하면서 기독교 국가들 중심의 대대적 종교 행사가 열린다. 로만 가톨릭이나 개신교가 국교화되었던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예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는 가장 중요한 축제다. 우리나라 또한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 말 유입된 선교사가 아닌 자발적 종교유입이 진행된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로, 일본 식민지 시대에 저항하는 상당수의 독립군들이 개신교를 비롯한 가톨릭 등 범(汎)크리스찬이 많았다. 일본 해방 이후에도 근현대사의 상당한 족적에 이들 개신교와 가톨릭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기득권과 개혁세력의 양편에 항상 중심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체로 독립과 개혁 진영에서 활동한 이들 덕분에 사회 전체적인 이미지는 2019년 현재 그다지 나쁘진 않다. 물론 지나친 세속에 몸이 담겨 아픈 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도 여전히 존재하고, 선동꾼들도 상당하지만 이런 종교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해석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비단 종교개혁의 대상이었던 가톨릭만 해당되지 않는다. 부패와 권위에 대한 도전과 신학적 논쟁과 해석을 통해 등장한 프로테스탄트들(Protestant)의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다. 규모가 커지고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면 권력이 되고, 정치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은 고스란히 공간을 만들면서 세속을 지휘하게 된다.
종교는 어느 문화를 막론하고 고스란히 건축과 도시, 일상의 생활에 침투하고 흔적을 남긴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게 된 로마는 탄압과 순교 대상인 기독교를 국가 종교로 개종하게 된다. 그러면서 순교하던 기독교인들은 국가의 권력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정치가들이 종교인화 된다. 로마의 황제가 가톨릭의 최고 성직자가 됐다. 세속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고, 종교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많은 로마시대의 건축들은 교회와 수도원 등 종교 건축으로 전환됐다. 건축 스타일이나 형식이 바뀌기보다 기능과 용도가 바뀐 것이다. 일반 대중의 신앙심은 종교 건축의 밑거름을 만들기 시작했다. 종교 공동체 사회가 되었고, 귀족과 평민, 노예의 구조는 동일한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신앙인으로 재구성됐다. 예수의 기독교사상은 불완전한 사회적 평등구조를 로마시대에 비해서 확산시켰다. 왜냐면 모두가 신 앞에 착한 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권력에 의한 계급피라미드가 사라질 리 만무지만, 적어도 로마에 비해선 완화됐다. 대신 교회가 모든 사회 체제의 중심이 됐다. 정치와 종교가 적절한 권력의 배분과 균형을 유지하고, 타협한 국가 권력들은 선교를 매개로 해외 식민지를 점령해 갔다. 금과 은, 그리고 향신료에서 촉발된 경제적 동인은 교회와 국가의 부를 축적하게 되었고, 유럽 국가들은 경쟁하게 된다. 그들의 선택지로 새롭게 찾아낸 아메리카 대륙은 한마디로 노다지다.
영화 ‘미션’은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탄생됐다. 화려하고 정교한 세공이 장식된 교회는 궁전과 같다. 이들의 중요한 관심사는 더 많은 황금과 힘이었고, 종교국가들인 유럽의 패권 국가들은 신대륙을 점령해 가면서 종교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 미션의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히 식민지를 점령하고, 각자의 이익과 목표를 향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가 말한 것들은 모든 사람들의 선린과 평등, 그리고 사랑이 이들의 삶에 일체화 되지 않는다. 인간의 욕망과 정치는 교회 뒤에 숨어 있을 뿐이다.

 

San Juan Capistrano Mission


노예 상인이었던 로드리고는 사건에 휘말리면서 자신이 납치해서 팔았던 원주민 마을로 들어간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납치했던 로드리고를 알아보고 죽이려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기독교인화 된 그들은 용서하게 된다. 신부들과 함께 선교에 나서면서 서서히 원주민들과 동화되어 간다. 이 장면에서 원주민의 짐을 끊어내어 폭포 밑으로 버리는 장면은 세상의 무거운 짐과 고통을 벗어버리는 종교적 은유이기도 했다. 서서히 신앙심이 깊어지는 로드리고는 예수회에 함께 하기로 하면서 그들과 운명 공동체적 정서를 공유하게 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의 영적 평등함을 체험하는 과정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평화스러운 상황은 오래가지 않는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제적 패권 경쟁은 원주민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내려 한다. 정치와 교회의 긴장과 협력은 매우 정치적인 것이었고, 로드리고와 원주민 선교에 함께하는 가브리엘 등의 신부들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결국 그들은 원주민들과 함께 하기로 하고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에 대항한다.
단순화하기 어려운 이 영화의 배경은 쉽게 누가 나쁘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종교의 순수함과 본질적인 인간 사랑에 대한 욕망에 근거한 권력과 세속의 폭력은 명확하다. 이는 세월이 흘러 지금 이순간도 마찬가지다.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동등한 하나님 앞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선민의식의 신부와 맞서는 가브리엘과 예수회 신부들은 종교에서 무엇이 본질인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종교는 갈등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갈등을 봉합하고, 타협하고, 희생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며 그래야 한다. 이 영화 ‘미션’은 이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화려한 성당과 원주민들이 만든 투박한 성당은 어느 것이 더 훌륭하고, 멋진 것이라 할 수 없다. 왜냐면 하나님 보기엔 모두가 같은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신과 닮은 사랑과 희생을 한 존재이며, 신앙심이 깊은 가다.
결국 욕망과 권력은 이들 신부들을 순교하게 만든다. 선교를 위해 오지로 가서 목숨을 건 포교와 동화에 앞장선 신부들은, 오히려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생활한다. 입으로 언제나 포교와 선교를 떠들고 신앙심을 앞세운 유럽의 점령자들은 오히려 살육과 약탈을 일삼으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숨긴다. 살인을 하고 회개하는 종교적 이중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여긴다. 비단 수백 년 전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선교 시대만 그럴까?
지금 이 순간 21세기 대한민국의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일상의 죄악과 욕망의 행동들을 그들의 교회와 절에 가서 회개하고, 참회하고 다시 돌아 나온다. 그리고 다시 이전의 행동을 반복하며 스스로 용서를 받았다고 자위한다. 갈등을 부추기고 재물과 권력에 취한 ‘미션’의 고위직 성직자들과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비난을 받는 종교인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정교한 유럽의 교회 건축들과 장식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고, 황제의 복장처럼 복잡하고 거대한 사제들의 모습은 공작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과장이었다. 웅장하고 화려한 고전 양식의 공간은 교회의 진솔함과 검소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 사랑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밀림으로 들어가 원주민들에 대한 인간적 공감과 동질감, 그리고 예수의 선린과 사랑을 공유하며 인간 본연의 순수함에 호소하는 신부의 모습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읽게 된다. 선교를 내세우지만, 폭력적 선교는 참된 것이 되기 어렵다. 공감하고 공유하고, 진심으로 같은 인간으로 봉사하고 노력하는 신부들에서 기독교의 본질을 본다. 비록 영화 ‘미션’에서 건축이 중요한 장치는 아니지만, 영화 전반에서 말하는 종교적 본질은 화려하게 지어진 교회보다는 밀림의 원주민 거주지에서 웃고 떠들고,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내려는 원주민 마을이 교회의 성스러움을 만들어낸다. 결국 건축에서 시작된 공간은 본질이 아닌 보조수단인 것이다.

 

San Juan Capistrano Mission
San Juan Capistrano Mission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 공공 도서관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 중 하나는 원주민들이 마을에 성당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이다. 유럽의 어떤 교회 건축이나 상징물보다 완성도가 높거나 건축적 가치가 좋은 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성과도 아니지만, 순수한 신앙심 하나로 엮어져서 만들어져 가는 성당과 십자가는 종교에 대한 경외감과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왜냐면 원주민들은 예수회 신부들의 순수함과 예수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영혼의 구원을 바라며 함께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북미의 서부지역, 멕시코부터 미국 해안가를 따라 가보면 가톨릭 성자들의 이름이 도시 이름으로 된 경우가 많다. 샌디에이고 (San Diego), 산후안 카피스트라노(San Juan Capistrano), 샌프란시스코(San Francisco) 등이 그렇다. 이들 지역을 가보면 원주민들과 성직자들이 함께 건축한 소박한 성당과 수도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 지역들에서 만나게 되는 종교 건축들은 결코 미학적 구성이 세련되거나 아카데믹 하지 않다. 오히려 투박하고 거칠다. 건축 평면의 형식은 전형적 유럽 교회 건축의 신부들 수도원이나 성당의 형식을 가진다. 성당의 구성도 전형적 가톨릭 성당과 같다. 하지만 부족한 재료와 장인들 대신에 이들은 투박한 그림으로 장식을 대신하고, 세련되고 화려한 대리석 대신에 벽돌과 페인팅으로 그들의 신앙심을 드러낸다.
그중 한 곳인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미션에서 느껴진 건축의 진솔함과 순박함은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지진으로 허물어진 일부의 모습과 두꺼운 벽돌벽의 거친 구성. 벽면에 새겨진 부조와 페인트의 흔적들은 화려한 프랑스 파리의 노틀담 성당이나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과 비견해 결코 감동이 부족하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당시 이 거친 미션과 성당을 신앙심으로 표현한 것을 공감하게 된다.

PS_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의 미션(Mission San Juan Capistrano)은 1770년대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가에 세라 신부가 세운 9개의 수도원 중 하나다. 지진으로 몇 번 재건축된 이 미션과 성당은 이 지역의 건축 기준이 되어, 신축된 학교나 공공건축, 민간 건축의 디자인 기준이 됐다. 장소의 컨텍스트 기준이 된 것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성당 옆에 지어진 마이클 그레이브즈 설계의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 공공도서관(미국 건축상 수상작)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