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Rear Window)... 건축의 심리학을 이용한 알프레드 히치콕 2019.11

2023. 1. 6. 09:0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이창(Rear Window)... 건축의 심리학을 이용한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은 5,60년대 새로운 장르의 영화를 개척했다. 당시에는 조금 색다른 장르영화로 취급되었지만, 그가 보여준 영화적 표현 방법은 매우 독특했다. 대부분 그의 영화들은 공포 영화 같지만, 좀 더 묘한 이미지와 심리를 이용해서 몰입하게 했다. 이야기 중심의 영화가 큰 흐름을 차지하던 5,60년대 이런 표현을 구사한 영화감독은 매우 드물었다.
아마도 공포라는 개념은 사람들로 하여금 가장 몰입하기에 쉬운 것인 듯하다. 그렇다고 아주 심각하게 적나라한 공포의 현장을 보여주거나 잔인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미행당하고, 의심의 대상이 되고, 쫓기고 다투는 방식으로 영화를 이끌고 나간다. 그 방식 역시 매우 건축적이고, 동선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한다. 덕분에 그의 영화는 이미지의 상징성과 관객의 몰입, 그리고 감정이입을 통해 극대화된 감정을 만들어 낸다. 
1998년 영화책을 쓸 때 자연스럽게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주목하게 되었다. 그의 영화는 귀신이나 악령 같은 샤머니즘적 공포가 아니라, 인간의 기본 감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런 공포감이나 두려움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도심 한복판의 이웃집에 대한 시선, 누구나 갈 수 있는 여행지의 모텔, 도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동불들... 너무나 일상적인 환경에서 겪게 되는 이런 평범한 공포감은 귀신같은 샤머니즘적 공포 영화와 다르다.
그중에도 <이창 Rear Window>은 너무나 일상적인 생활에서 만들어내는 심리적 공포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웃집 관찰을 통해서 겪게 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으로 위축되게 만든다.
밀집된 도시 생활에서 만들어내는 이런 두려움, 공포는 인간의 기본적 속성이라는 점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섬세한 관찰과 해석에 감탄하게 된다.

 

사진 ksamaarchvis.wordpress.com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서로 간의 관계를 형성하면서 사회를 구축하고 이끌어 나간다. 우리만 하더라도 전통적 농촌사회는 씨족을 근간으로 마을을 형성했다. 대개 이웃 친척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마을에 새로 들어오는 이들은 결혼을 통하거나, 경제적 이유로 구성되었다. 
규모가 커질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중에서 정치 행정상의 지역 중심과 경제적 이유가 배경이 된다. 친족 관계가 조금 희석되면서 확장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이 형성될 것 같은 건축도 영향을 받으면서 변형된다.
친족으로 형성된 마을의 건축 – 즉, 집들은 개방적이고 공유된 공간 개념으로 구성된다. 개별적인 완성도가 높은 독립된 형태보다는 서로 연계되는 특징을 가진다. 당장 ‘대문을 열어놓고 사는 마을’을 가보면 대체로 친족이나 이웃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친밀도가 높은 지역이 많다.
이런 친밀도는 상호 간의 인정 범위 안에서 개입을 허용할 때 나타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Privacy)은 이런 사회에서는 지켜지기도 어렵지만, 사람들도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신에 보이지 않는 불문율로 서로간의 규범과 틀을 깨지 않으려 조심하게 된다.
왜냐면 작은 사회적 불문율에 어긋나는 행위는 바로 드러나서, 지적되고 심지어는 응징의 대상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주홍글씨> 같은 소설은 종교를 매개로 연대된 사회에서 집단이 개인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묘사되었다. 이 소설에서 배경이 되는 연대된 사회는 바로 사생활이 거의 보장 받지 못하는 친밀한 사회적 관계로 형성된 경우다. 이런 사회에서 문을 닫고 외부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공간의 폐쇄성은 문제가 된다.
하지만 산업화라는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도시로 모여들게 했다. 불특정한 사람들과 이웃이 되어야 하는 사회는 미처 서로 간의 친밀도를 형성하기 어렵다. 농촌사회나 친족사회처럼 상호 간의 개방성은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낮선 이들의 생활 공간 침범은 곧장 범죄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방어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생활은 중요한 사회의 주제가 되었고, 건축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엉성했던 경계는 치밀해지고, 높아지기 시작했다. 외부에 대해서 닫히기 시작했고,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공간 구조로 변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계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인간의 특성은 선택적 관계 맺기를 통해 해결한다. 종교적, 경제 계급적, 정치적, 지역 연고적 등등의 다양한 자신과의 특성과 연대 맺기를 만들게 된다.

 


문제는 이런 연대는 상호 간의 연결성이 희박한 낯선 이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발생한다.
도시는 어떤 구조보다 조밀한 밀도 안에서 사람들을 살게 만든다. 그런 만큼 친밀해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문 앞을 마주 보고 사는 공동주택 거주자 역시 몇십 년을 살아도 마주치지 않고, 소통하지 않을 수 있다. 조금의 공통분모가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도시인의 특성은 바로 건축 형식에 반영된다. 문을 닫으면 절대 그 집의 구조와 내부를 상호 간에 볼 수 없고, 예측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자, 바로 이 점에서 의도치 않은 상황이 나타난다. 문을 닫으면 상대에게 보이지 않는 집 구조? 사생활이 절대적으로 보호받는 구조? 과연 그럴까?
복병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 바로 마주 보고 있는 건물에서 관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마주 보고 관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의 욕망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많은 영화는 이런 인간의 욕망을 도시에서 삶과 연결해 이야기를 이끌고 간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고전 영화 <이창>은 바로 이점에 주목해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 그의 많은 영화가 도시와 건축의 공간에 반응하는 심리적 흐름을 가공하고 있는 것처럼 <이창> 역시 관찰, 호기심, 관음증을 매개로 연결했다.
재미있는 점은 인간의 잠재된 욕망에는 노출증도 동시에 존재한다. 훔쳐보기와 노출증. 이를 성적으로 비윤리적인 이상 취향으로 바라볼 수 있지만, 엄연히 인간의 기본 욕망에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이런 노출증과 관음증의 공간이 존재한다. 독일 베를린의 <비키니 호텔>이나 뉴욕 맨해튼 하이라인 한복판에 있는 호텔은 이런 인간의 이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화장실, 욕실이 통유리를 가리지 않은 채 배치되어 있고, 투숙객이나 구경꾼들이 이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윤리적 논란이 될 만한 이런 공간이 버젓이 도시에 존재하는 것도 황당하긴 하지만, 건축의 기준에서 바라 볼 때 정답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새삼 우리 도시에서 밀집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사생활 Privacy'의 강조가 얼마나 가능한지 의심하게 된다. 고층으로 밀집된 아파트 단지를 가보면 아무 의미 없는 사생활을 강조하는 광고 문안을 보게 된다. 대부분 고층 아파트 단지를 가보면 착시 현상으로 마주 보는 아파트 세대가 유난히 잘 보인다. 이런 이유로 일 년 내내 아파트 발코니에는 블라인드가 쳐져 있다.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그러면서 사람들은 고층을 선호하고, 밀집된 아파트 단지를 선호한다. 결국 적당한 노출과 이웃집 구경은 현대 도시 생활에서 필연적인 셈이다.

 


이런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처럼 아름다운 낭만의 코미디가 되어 영화로 만들어지고,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군상들이 겪는 삶의 이야기를 담는 <구름 저편에> 같은 영화가 된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새삼 주목한 일상 공간의 공포는 이후 수많은 영화에서 인용되고, 모티베이션이 되어서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밀집된 도시의 삶이 낭만이 될 수도, 공포가 될 수도 있다. 피할 수 없는 것이 도시의 삶이라고 한다면 보다 낭만적이고,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를 이끌어내는 도시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건축하는 사람의 책임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더 중요하고, 노력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