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salon]100년의 기억, 그리고 흔적- 군산근대문화거리 2019.10

2023. 1. 5. 09:0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100 years of memory, and traces - Gunsan Modern Culture Street

 

형태와 기능을 모두 유지한 공간

동국사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조선에는 일본사찰 5백여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동국사는 광복 이후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건물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제시대 사찰건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찰이라는 본래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건축 당시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여 가치가 있다. 동국사를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본식 사찰’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다른 일제시대 사찰들은 건물은 온전히 남았으되 더 이상은 불교사찰이 아니거나, 반대로 계속 사찰로서 기능하되 건물 형태가 많이 바뀌거나 기존 건물들이 사라진 경우가 많다. 때문에 동국사의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기능과 형태를 모두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국사의 형태를 살펴보면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건물로, 정방형 단층팔자지붕 홑처마 형식의 에도시대 양식이다. 외관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색이 차분해서 정갈한 느낌을 준다. 지붕물매가 75도 급경사이기 때문에, 기와는 못질을 해서 고정한다. 급경사의 지붕은 규모에 비하여 규모를 크게 보이게 했다. 

히로쓰 가옥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했다.
히로쓰가옥은 적산가옥이라고 하는데 적산은 ‘적의 재산’, 혹은 ‘적들이 만든’이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적들이 만든 집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근대 및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지은 건축물을 뜻한다. 과거에 일본인 촌을 이루었던 지역엔 아직까지 꽤 많은 수가 남아있고, 사람이 사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거기다가 기와와 지붕만 일본식으로 바꾼 개량한옥을 찾아볼 수 있다.
건축양식이 다른 만큼 외양에서 일반적인 주택과 이질감을 느낄 수 있는데, 대표적인 특징을 들자면 겉으로 튀어나와 있는 목재 구조, 2층이 1층보다 약간 튀어나와 있는 모습, 일본식 기와가 얹힌 지붕, 밖으로 돌출된 비대칭 형태의 창문 구조 등이 있다.
이처럼 과거의 기능과 형태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문화재들의 수가 적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히로쓰 가옥은 가옥의 기능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완전히 기능의 변화를 했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는 다양한 형태로 현재에 남아있다.

형태는 변했지만, 기능은 유지된 공간

구 군산세관과 현 군산세관

 


앞서 설명했듯이 구 군산세관은 한국은행 본점, 서울 구 역사와 더불어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서양식 건축물 중에 단연 손꼽힌다고 할 수 있다. 빨간 적벽돌과 좌우대칭인 건물은 그 당시의 트렌디함을 엿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군산항을 통해 쌀을 수탈해 가던 그 시절 애달픈 역사를 간직한 근대건축유산으로 현재는 근대 문화전시관으로서 기능은 변하였지만 맞은편 나란히 들어서 있는 현 군산세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구 군산세관은 1990년대까지도 공무원들이 실제 세관 업무를 보았고 낮에는 세관 사무실, 밤에는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93년 해당 부지에 현재의 군산세관이 새로이 지어졌으며 그 역할을 이어받아 형태는 변하였지만 기능은 유지되고 있다.
구 군산세관 본관 말고도 많은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본관 건물과 옛 창고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관에서 압수품을 보관하던 창고 또한 최근에는 순수 민간 자본과 지역 대학의 협력이 어우러져 군산 출신 작가들의 책을 중심으로 하는 서가와 커피 볶는 향이 가득한 카페로 리모델링되어 ‘인문학 창고’로서 지역 특색사업을 벌이고 있다.

군산 내항

 


군산 내항 역사문화공간은, 구 군산세관 본관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일본의 경제 수탈과 관련된 역사성과 보존 및 활용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2018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만행은 극에 달해 인근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들을 모두 군산 내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갔다고 하며, 그 때문에 당시 내항 주변에는 쌀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수두룩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남아있는 창고들 외에 대부분 카페로 리모델링되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군산 내항 철도는 근대 항만으로서 군산 내항의 공간 구조를 형성하는데 기반이 되었고, 1920년대 후반 근대도시 군산의 공간 구조 변화에 영향을 준 시설로서 그 역사적 가치가 우수하다. 하지만 현재는 드문드문 끊겨 제 기능을 할지 의문을 가지고 있던 순간 ‘시간여행 꼬마열차’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넓게 펼쳐진 군산 앞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여행이라는 테마 안에 추억 열차로서의 기능은 충분히 수행할 수 있어 보였다   


형태는 유지하고, 기능은 변한 공간

첫 번째, 구 군산세관 , 현 호남관세 전시관 (사진 3135, 3119)

 



1908년에 서양식 건물로 지어진 구 군산세관은 적벽돌조와 동판지붕으로 된 석조건물이다. 연면적 228.09제곱미터, 지상1층으로 되어 있는 이 건물은 1993년까지 85년간 군산세관 본관으로 운영되었는데, 이후 현재의 군산세관이 생기면서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근대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는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에서 쌀 등을 빼앗아가던 일본 제국주의의 수탈의 아픈 역사를 증언해 주는 근대문화 유산과 더불어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건물은 현존하는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 중 하나로, 벨기에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지어졌고, 외벽은 화강암 기초위에 붉은 벽돌과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내부는 나무와 회벽을 이용한 유럽 양식으로 건축됐다.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창문은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진 개항 초기 우리나라에 도입된 서양식건축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는 세관으로 사용되었던 이 곳이 현재는 호남 관세 전시관으로 사용됨으로써, 본 건물의 기능적 역사뿐만 아니라 군산을 포함한 호남지역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박물관 한편에는 군산을 알 수 있는 전시관과, 동영상 상영실, 체험실 등 다양하게 구획되어 있다.

 


두 번째, 구 일본 제18은행 , 현 군산 근대미술관 (사진 3176)

 


1907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출발한 일본의 지방은행으로 지어진 구 일본 제18은행은 일제강점기의 은행건축의 양식에 따라 폐쇄적인 외관으로 계획되었고, 인조석을 사용하여 장식했다. 1936년 조선식산은행이 매입하기 전까지 일본은행으로 사용되다가 1938년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가 매입을 하면서 광복 후 대한통운주식회사 지점으로 사용되다가, 2008년 등록문화재로 지정, 2013년 근대미술관으로 개관했다.
이전에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 현재는 근대미술관으로 사용됨으로써,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동에서는 일제 강점기 때의 모습과, 건물의 역사 및 보수과정, 기증 작가들의 작품전이 열리고, 금고동에는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및 독립운동의 모습을 전시하며, 마지막 관리동에서는 근대기 군산의 근대건축 부재들을 볼 수 있다.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여 철거위기에 놓였던 건물들을, 건물에 담긴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중요시 여김으로써, 건물은 그대로 유지하고 기능을 변화시켜 건물을 다시 활성화 시킨 공간들. 건축뿐 아니라 그 시대의 선조들의 삶과 의지를 느껴보자.  

새로운 형태와 기능의 공간

이성당

 


한국의 단팥빵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지역이 바로 군산이다. 군산에는 우리나라 최고의 빵집인 이성당이 여전히 인기리에 영업을 하고 있다. 이성당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령 빵집이다. 상호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지어졌다. 그래서 군산 이성당에는 ‘since 1945’라고 적혀 있으며 가게의 모든 빵 포장지에서도 1945라는 의미 있는 숫자를 볼 수 있다. 원래 이성당은 지금 자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1948년 적산가옥으로 등록된 일본 과자점 이즈모야를 이석우 씨가 불하 받으면서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이즈모야 제과점에서 이성당이 된 후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96년 군산시청이 이전한 후로 중앙로 주변이 급속도로 상권을 잃어 가면서 이성당은 약 10년간 경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게다가 1997년에 찾아온 IMF 금융 위기로 매출을 이어 나가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2010년 복고 열풍으로 군산의 옛 모습과 거리가 대중들의 향수를 자극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 온 빵 맛에 대한 노력의 대가일까. 이성당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짧은 시간 내에 과거의 영광을 되찾아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빵집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말에는 본관 옆에 카페와 베이커리로 이뤄진 신관을 새로 만들었다. 이곳 화이트톤의 벽면에 걸린 흑백 사진들이 이성당의 70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은 1998년 1월에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촬영 장소이다. 영화는 불치병을 앓는 30대 중반의 사진사 정원(한석규)이 주차단속원 다림(심은하)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사랑에 대한 기억을 엮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8월의 크리스마스 제작진은 세트 촬영을 배제하기로 하고 전국의 사진관을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잠시 쉬러 들어간 카페 창밖으로 여름날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진 차고를 발견하고 주인에게 어렵사리 허락을 받아 사진관으로 개조했다.
‘초원사진관’이라는 이름은 주연배우인 한석규가 지은 것인데, 그가 어릴 적에 살던 동네 사진관의 이름이라고 한다. 정원의 집과 초등학교 등 영화 촬영의 대부분은 이 초원사진관 인근에서 이루어졌다. 촬영이 끝난 뒤 초원사진관은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 되었다가, 이후 군산시에서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복원했다.
이 곳은 처음 얼마 간 새로 사진관이 생긴 줄 알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극중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이들 가운데 일부는 엑스트라가 아닌 실제 방문객이라고 한다. 또한 크리스마스 장면에는 눈이 필요한데, 촬영시기가 11월 말이었다. 제작진은 사진관 주변에 솜을 깔고 소금을 뿌려 눈이 내린 것처럼 꾸몄다. 촬영 후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를 수거해 김장 때 쓰기로 하여 제작진은 청소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고 한다.

 

 

 

 

 

글. 김혜민(Kim, Hyemin _ 강원대학교 건축학과), 

임보미(Lim, Bomi _ 세종대학교 건축공학부 건축학전공), 
윤해성(Youn, Haesung _경기대학교 건축학과), 

윤기한(Youn, Kihan, 전남대학교 건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