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salon]대한제국의 꿈, 정동탐색 2019.9

2023. 1. 4. 09:0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he Dream of the Korean Empire, Jeong-dong Exploration 

 

정동전망대에서 바라본정동 전경

정동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일대

면적 : 0.32㎢

인구 : 415명(2018)

 

 

시청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덕수궁의 상징인 돌담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덕수궁의 얼굴인 대한문이 나오고, 그 옆의 돌담길과 함께 정동길이 펼쳐진다. 길을 따라 심은 나무들과 사계절을 함께 보내면서, 정동길의 색도 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더운 여름 주말에도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정겨운 분위기가 정동길 일대에 퍼져 있다. 

이렇게 정동길 일대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이유에는 덕수궁을 비롯하여 조선의 마지막 역사인 대한제국의 모습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위의 네 사진처럼 과거의 흔적이 우리가 보던 정동길의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사회가 형성되어 가면서 과거의 모습들이 조금씩 변화되어 왔고, 최근에 개방된 ‘고종의 길’처럼 사라졌던 역사 속 산물들을 복원시키는 작업도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요소들에 따라 5개의 ‘대한제국의 길’이 선정되었고, 그중 4개의 길을 각자 맡아 돌아보며 그 길의 거점과 이야기에 대해 콜라주(Collage)와 함께 풀어보고자 한다.

 

 

 

➊ 일제의 잔재인 국세청 별관이 있던 자리, 성공회성당을 가리고 있던 모습. 지금은 도시건축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사진출처ㅣ뉴시스, 오마이뉴스) ➋ 1896년 촬영된 구 러시아 공사관의 모습, 현재는 사진의 칼라부분만이 남아 정동공원에 현존하고 있다. (사진출처ㅣ문화재청, 프랑스 프랑뎅공사 후손 칼메트 소장, 연합뉴스) ➌ 현재 정동길 중심에 있는 광장에서 보이는 과거 정동교회의 모습 (사진출처ㅣ핀터레스트 Sung-Jin Yoon) ➍ 1960년 미술가 협회전이 열렸던 과거의 돌담길과 현재의 돌담길의 모습. 신문화예술의 선구자인 김환기, 박수근 등의 예술가의 흔적이 있었던 곳이다. (사진 출처ㅣ최열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장, 윤명로 서울대 명예교수)

 

배움과 나눔이라는 주제로 당시 학생들의 졸업앨범 사진과 대한제국 최후의 미국공사 알렌(H N Allen)을 성공회성당의 아치 사이에 덕수궁 돌담길과 함께 넣어 콜라주했다.

 

■ 영국과 성공회성당, 살아있는 역사지

 

 

1코스 배움과 나눔

1코스는 배움과 나눔이라는 테마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으로 접하게 되는 성공회성당은 최근 국세청 별관이 철거되고 건축박물관으로 이용되며 지하공간으로 설계되면서 시민들의 눈 앞에 새로 등장했다. 원래 이곳은 경운궁의 옛 영역으로 왕족과 명문가 자제들이 수학을 하던 곳이다. 역사적 사실로 보면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인데, 당시 영국과 일본과 동맹국이었던 상황에서 큰 문제없이 어렵지 않게 이 곳에 성당을 짓고 선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세실극장은 성공회의 회의장으로 1970년대에 구상되었지만, 명동 국립극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문화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극장이 되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사였던 김중업이 설계했다. 
양이재는 일제강점기 전까지 귀족의 자제 교육을 전담하다 일제강점기 대한성공회가 매입하여 현재는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의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영국 대사관에 다다르는데, 특별한 용무 없이 방문하기는 힘들지만 성공회성당과 앞선 장소들이 영국과 관련이 있으므로 하나로 묶여있는 듯하다. 개화기 대사관 중에서는 아직까지 같은 자리에 있는 경우로 유일하기 때문에 방문해볼만하다. 배움과 나눔이라는 테마로 묶어놓았지만 사실은 영국과 성공회가 대한제국시절부터 쭉 자리잡아온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겠다.

 

아관파천 사건을 주목하여 2코스의 대표적인 길인 고종의 길을 중심으로 구성한 콜라주. 과거의 일부만 남아있는 러시아 공사관, 과거 그대로를 보존한 건물 구세군 중앙회관, 빈터로 남은 선원전 터 등 다양한 역사의 잔재가 남아있다. (사진출처ㅣ사진작가 윌리엄 헨리 잭슨이 한국을 방문했던 1896년에 찍은 사진)

 

■ ‘적민(積民)이 곧 국(國)이다, 대한제국의 초대황제 고종의 길’

 

2코스 옛 덕수궁역

아관파천([俄館播遷)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乙未事變) 이듬해에 일본군에게 위협을 느낀 고종과 왕세자가 약 1년간 조선의 왕궁을 떠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사건으로 구한말 격동기 우리의 아픈 역사이다.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덕수궁을 오갈 때 비밀리에 이용했던 돌담길로 알려진다. 2코스에는 아관파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고종의 길, 구 러시아 공사관뿐 아닌 일제에 의해 훼손된 선원전 터가 있다. 곳곳의 아픈 역사가 어려 있지만 이 또한 기억하고 위로하여 모두 차근차근 옛 모습을 되찾을 예정이다. 구 러시아 공사관과 선원전은 원형대로 복원될 예정이며, 선원전 터 반대편에 위치한 구세군 중앙회관은 리모델링을 통해 카페, 전시와 연극, 대관 홀 등이 있는 한국 근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근대문화의 감성을 향유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정동 1928’으로 탄생했다. 덕수궁을 에워싸는 2코스에서 근대역사가 묻어난 건축물들과 함께 아픈 역사의 현장을 느껴본 후, 구세군 중앙회관에서 전시와 연극을 보거나 휴식하며 옛 구조물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에 머물러 보는 것을 추천한다.

 

과거의 중명전과 복원된 현재의 중명의 모습은 역사를 보관하는 전시관으로 이용되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 모습이다. (사진출처ㅣ1954년 이철원이 편찬한 <왕궁사>에 수록된 중면전의 모습)

 

■ 과거선교사들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는 정동길

 

3코스 외교타운

정동길 거리는 과거의 흔적들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광장을 기점으로 바로 앞에 있는 정동교회와 중명전이 있다. 정동교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교회로 19세기의 교회 건물이다. 을미사변 직후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 목사는 건물을 건립하고 명성황후 추모 예배를 드리고 일제강점기의 항일활동의 거점,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 등을 한 정동교회는 조선의 격동기를 함께 한 역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좀 더 나가면 중명전을 볼 수 있다. 중명전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양식 도서관 건물이었지만 과거에 을사녹약이 강제로 체결된 동시에 주권을 되찾기 위한 노력의 현장이기도 하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역사의 현장을 전시하여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이러한 건축물의 역사는 현시대의 문화와 어우러져 의미 있는 거리가 된다.

돌담길의 Main Spot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문, 신문물의 선구자를 교육하던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이를 비롯한 역사의 흔적들은 돌담길의 지표가 되는 작은 분수광장을 중심으로 두어 찾아가기 쉽다.

 

■ 新문화를 이끈, 광무의 시대를 걷다 :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4코스 신문화와 계몽

대한제국의 새로운 시대를 함께 한 덕수궁 일대는 고종을 비롯한 여러 선조들이 신문물의 역사를 빚어낸 곳이다. 시청역 출구로 나오면 덕수궁의 얼굴인 대한문이 바로 보이고, 그 뒤로 아름다운 돌담길이 구불구불 펼쳐져 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울시립미술관과 배재 학당이 보인다. 둘 다 대한제국시대의 건축 양식을 보존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으며, 그 덕분에 당대의 분위기가 여실히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배재학당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라는 신교육의 발상지이자, 신문화의 요람으로 여겨지며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글. 김세빈(Kim, Sebin _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박수진(Park, Sujin _ 인천대학교 도시건축학부)

박가연(Park, Gayeon _전남대학교 건축학과)

박우승(Park, Wooseung _ 한국교통대학교 건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