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4. 09:06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2001: A Space Odyssey
영화를 오래 보다 보면 과거의 영화들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다. 이야기 구조나 영화 장면에서 데자뷔를 느끼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영화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을 찾기 어려운 점도 있고, 관객들의 경험치도 그만큼 증가했기 때문이다.
극장을 가야지 볼 수 있었던 영화를 이제는 손안에서 보기도 한다. 스마트폰과 통신 기술의 발달은 꿈으로 여겨졌던 이미지들을 현실화 해준다.
그래서 가끔 과거에 상상하던 오늘에서 있는 입장에서 ‘그렇다면 예전엔 오늘을 어떻게 그렸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과거의 자료들을 보게 된다.
오늘 이야기 할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바로 그런 영화이고, 그들의 상상력과 현재의 싱크로율에 놀랄 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혼돈의 시대였다. 혼돈의 시대는 다른 시각에서는 아이디어의 시대였다. 아이디어는 각 분야에서 탄생했고, 도전적 시도들이 다양했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경쟁이 시작된 기간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그들의 시선은 먼 외계를 향했다. 우주를 향한 시선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쳤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의문과 호기심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60년대의 상상력은 실현 가능성 을 떠나 혁신적이고, 무한한 추상성과 기하학을 바탕으로 전개됐다. 더불어 수 많은 상상력은 다양한 형태와 개념을 통해서 표현됐다. 발달된 기계와 전자의 세계는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예술적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미술, 음악, 조각, 건축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시도됐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은 스타건축사가 된 오스트리아의 쿠프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나 영국의 아키그램(Archigram) 운동 등이 이런 60년대 흐름을 타고 등장한 실험적 작가들이다. 20대 초반 청춘들의 비현실적 도전들은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다듬어지고 세련되게 건축되고 있다. 이런 시대 적 모험은 고스란히 이 영화에 담겨 있다.
1960년대 말은 아폴로 우주선이 발사된 시점이기도 하고, 냉전의 최고조에 오른 시기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으로 인한 반전과 히피문화가 등장했으며, 많은 국가에서는 사회적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급진적인 학생 운동과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등장했던 시기다. 또한 문화에 있어서도 흐름의 변화를 대중이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예술의 경계가 조롱받고 허물어지는 극단적인 탈 권위의 경계기간이기도 했다.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의 충돌이 있었던 변화의 시간이었다.
1968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서사적 SF 영화를 발표한다. 다소 철학적인 제목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웅장한 음악을 배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그리고 아주 느릿한 화면으로 대자연과 인류의 탄생을 암시하는 화면으로 진행된다. 인간의 내면적 폭력성과 야만성을 은유하면서 시작되는 영화의 화면구성과 색의 조합은 뛰어난 회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진다.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펼쳐지는 영화는 시간이 흘러 2001년의 어느 날이다. 조지오웰의 <1984>처럼 이 영화에서 말하는 2001년의 상황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지금에 와서는 맞지 않는다. 영화에서 말하는 2001년은 상징적인 미래의 시점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영화 속 미래의 시점에서 본 우리의 생활에서 지구를 벗어난 여행은 일상화 되어 있다. 일리아드의 오디세이처럼 우주를 항해하는 광활한 이동이다.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은 이 영화에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시각적 형태들에 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 완벽주의자 스탠리 큐브릭이 해석하는 미래는 통합된 디자인과 드러나지 않은 첨단 기계를 보여주었다. 기계보다는 전자적인 이미지이고, 인공지능으로 구축된 미래는 매우 단정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통상 미래를 떠올리는 두 가지 디자인 문법, 기계적 형태와 유기적 형태의 상반된 구성 사이에서 스탠리 큐브릭은 어느 한쪽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았다. 적절한 기계적 구성과 유기적 통합성으로 영화의 배경을 구축했다.
이 영화에서 유독 배경으로 등장한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제한된 공간에서 가 지는 인간의 내면 갈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연기는 갈등으로 폭발 적이지도 않고, 섬세한 감정적 변화를 표현했다. 덕분에 이 영화는 무척 졸립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유독 건축계에서 주목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 배경의 공간들이 오늘날 현실로 재탄생하고, 다수의 영화나 디자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프리츠 랑이 영화 <메트로 폴리스>에서 이분법적 세계와 첨단 대도시의 모습을 창조해내었던 것처럼,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어낸 기준은 이후 엄청나게 많은 추종자들을 탄생시켰다.
프리츠 랑(Fritz Lang)이 기계시대에서 미래를 그려내었다면, 스탠리 큐브릭은 전자 시대를 넘어서 인공지능(AI)의 미래를 만들어내었다. 지금의 시선으로 본다면 아날로그적인 화면 속 장치들이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장치들을 첨단의 전자장치로 생각했던 것 같다. 화면 가득 채우고 있는 공간의 디자인들은 기계적이고, 섬세한 디테일이 풍부한 구성을 보여주기 보다는 감추어진, 간결함을 중심으 로 디자인되었다. 이러한 단순성은 20세기의 시작부터 시작된 모더니즘의 영향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장식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등장했던 시기, 즉 포 스트 모더니즘의 건축과 인테리어는 직설적인 과거의 장식을 인용할 뿐만 아니라, 기계의 고전적 장식적 형태를 드러내었다. 이 점에서 마치 라디에이터나 터빈 같은 기계적 구성을 마치 반복적이고 화려한 디테일의 장식으로 치환했던, <배 트맨>, <블레이드 런너>와는 아주 대조적인 시각적 구성이었다. <2001 스페이 스 오디세이>는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준다. 영화 중심으로 나오는 우주선의 공간을 살펴보면, 60년대를 풍미했던 사이키델릭한 기하학의 구성을 볼 수 있게 된 다. 이러한 디자인은 피에르 가르뎅이나 파코라반 등의 <스페이스 룩>이라 지칭 한 유니크하고 기하학적인 이미지의 패션도 볼 수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도 나오는 올리비에 모그의 붉은색 소파들 같은 유기적이고, 기하학적 형태들은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덴마크 출신으로 60년대 플라스틱 가구 등을 발표한 베르너 판톤(Verner Panton)의 다양한 디자인들을 보면, 60년대의 모험을 알 수가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60년대에 꿈꾸던 다양한 디자인 문화 트렌드를 집약해서 보여준 영화 같다. 언급한 공간, 패션, 가구나 소품디자인, 조명 구성 등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영화 속 공간, 건축들이 또 다른 주연처럼 다뤄지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조금 덜 친절한 상징으로 드러나고 있다.
각각의 상황에 따른 화면의 구성이나, 색의 구성, 난색과 한색의 의미적 조합 등이 그것이다. 시각적 코드는 매우 일관되며, 투명한 소재에서 발광하는 형태의 디지털 이미지들을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디지털적인 이미지를 추구하거나, 주제로 삼은 많은 디자인 작품들에서 유리 같은 투사재료에 대한 조명의 구성을 떠올린다면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빛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고전적 거주공간의 바닥에서 비추어지는 형광빛은 부유의 이미지를 주며, 무중력적인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또한 단순하면서도, 원초적인 도형의 구성, 사각형과 원을 기본으로 전개되는 영화 전체의 시각적 흐름은 이 영화가 얼마나 디자인과 의미의 간극에서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또한 부드럽지만 다양하게 적용되는 색, 카메라의 움직임 역시 리듬감 있게 전개됐다.
설명도 불친절하고, 숨어있는 그림 찾아 해석해야 하는 것 같은 영화라 따분하고 지루하긴 하다. 실제 영화 상영시간도 길다. 완벽주의자인 스탠리 큐브릭이 말하 고자 한 내용은 엄청난 서사를 한편의 압축된 영상으로 처리했다. 영화의 전체적 인 내용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과 고민을 담고 있다. 즉, ‘인간은 무엇인 가’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종교와 과학을 넘나들면서 전개된다. 인류의 진화와 인간의 폭력성, 그리고 집단성 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기독교적 코드들도 뒤섞여 있다.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는 문장과 동시에 모세의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연상되는 검은 비석은 영화의 전환마다 등장한다. 십계명은 기독교의 중요한 윤리 지침으로 인간의 도덕성을 정의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아무것도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검은 비석은 충분히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원시의 본능적 인간성은 과학 문명이 바뀌고 첨단의 기술 세계가 되었을 때, 인간 닮은 컴퓨터 AI에게서 폭력성을 만나게 된다. 결국 신이 된 인간은 자신의 창조물을 스스로 파괴하고, 죽어간다. 이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노화로 늙어 죽어가는 주인공과 다시 등장하는 탄생의 과정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교와 철학자들에게 생각의 시작을 알 려준 인간의 존재, 도덕, 윤리, 탄생과 죽음... 이 엄청난 주제들을 2시간 40분이넘는 시간동안 보여주고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는 내용과 시각적 표현 모두 우리에게 생 각의 계기를 주었고, 인간에게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그리고 이런 철학적 이야기 주제들을 다양한 영화 속 장치를 설명하고 있다. 당연히 그 장치들은 디자인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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