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사회, 집중화된 도시 문제를 드러낸 영화 ‘컨테이젼’ 2020.5

2023. 1. 13. 09:07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he move ‘Contagion’, revealing the problems of a super-connected society and a centralized city

 

 

오래전에 개봉한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주인공 데이빗 에임스(탐 크루즈 주연)가 차를 타고 뉴욕 한복판을 달리는 장면이 나온다. 번화한 뉴욕 한복판이 속된 말로 개미 한 마리 등장하지 않는 빈 도시 풍경으로 연출됐는데, 사람들은 초현실적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맨해튼 타임 스퀘어. 뉴욕을 가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사람들로 가득한 맨해튼 중심 한복판의 타임스퀘어 이미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의 중심 메신저 배경으로 나오는 이곳에 사람들이 사라진 모습을 상상하긴 누구도 힘들었다. 아마 대낮에 빈 도시 풍경이 되는 일은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점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맨해튼 한복판 도심에 아무도 없는 초현실적 장면이 연출되었다. 상상이나 했는가? 파리 샹젤리제나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가능한가? 그야말로 놀랍다. 컴퓨터 그래픽도 아니고, 어떤 속임수도 아니다. 정말 사람들이 사라졌다. 중국에서 시작해 아시아를 지나 유럽, 미국을 관통하고 중남미와 아프리카로 퍼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전염력이 강력한 바이러스는 전 세계 경제 활동을 마비시켰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람들이 쓰러지고 거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 얼마나 초현실적 상황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사망자 수치에 관한 세계 소식들이다. 과연 이런 뉴스들이 사질인지 실감나지 않을 정도며, 마치 전쟁의 순간처럼 사망자와 환자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세계 영화 시장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할리우드 덕에 우리는 현대 도시의 이미지를 몇 가지 정도 떠올리곤 한다. 대표적 장소 중 하나인 맨해튼, 그중에서도 타임스퀘어는 현대 문명의 상징이며 시장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과로 등장하는 시각적 장치물이다. 그곳은 항상 분주하게 활동하는 세계인의 중심 공간이다. 설상 맨해튼의 뉴욕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담긴 세계 각지 도시의 풍경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영화에서 등장하는 서울 테헤란로 풍경이나 일본 영화의 신주쿠 장면 모두 동일 선상의 이미지다. 
인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문명에서 인간이 사라진다는 점은 거의 상상하기 힘든 풍경이다. 그래서 여러 영화들은 사람들로 분주한 공간과 인간의 소멸을 대비해 극적인 연출을 한다. 기후 변화의 공포를 다룬 ‘투모로우’에서도 대도시의 중심 공간과 사람들이 사라진 현상을 대비해 보여준다. 외계인의 침공을 다룬 ‘인디펜던스 데이’ 역시 외계인들은 가장 번화한 곳을 공격한다. 바이러스 등 질병에 의해 혼란이 발생한 상황도 번화한 대도시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특히 ‘컨테이젼’은 놀라울 정도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진 최근 상황과 유사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21세기에, 초연결사회인 세계가 바이러스 하나로 초토화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사람들 간의 욕망과 갈등, 본성이 드러난다. 바이러스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감염시킨다. 과거에도 전염병이 있었지만 오늘날처럼 초연결된 밀집사회에서의 전염은 더 빠르고 확산 폭도 넓다. 전염의 물리적 영역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국경을 넘나든다. 

 

자료=워너브라더스


이번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이런 공포심과 우려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19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는 한두 달 간격으로 인접 국가로 넘어오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까지는 단 몇 개월도 안 걸렸다. 엄청난 전염 속도와 전염률은 가히 세계적인 마비를 가져왔다. 이에 가장 강력한 대응책은 물리적 이동을 멈추는 것이었다. 항공기가 멈추면서 국경을 넘는 이동이 대폭 줄었다. 국가적 분업화와 이동의 제한은 충격적인 현상이다. 분업과 효율을 강조하는 근대 산업사회의 기준이 파괴되는 장면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효율과 글로벌 분업은 더욱 가속화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벌어진 이 사건은 패러다임을 바꿨다.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는 일상과 삶을 파괴했고, 도시 집중화로 이동 중이던 도시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영화 ‘컨테이젼’은 태평양 너머에서 활동하는 21세기 사람들의 생활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재난 영화가 그렇듯이 이 영화 역시 별다른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는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람들의 감정과 대응, 조직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을 보여준다. 
재난 영화들은 다양하다. 사건 사고가 이야기의 주요 동기다. ‘타이타닉’이나 ‘타워링’의 경우는 자본가들의 이익 추구라는 욕망을 강조한다. 거대한 사고의 공간은 타이타닉이나 건물 하나로 제한된다. 이익 추구의 욕망은 어디에서나 나타나고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성공하면 개인의 성취와 사회적 이익을 공유하게 된다. 반면 실패할 경우에는 엄청난 재난과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하지만 생물학적 이익 추구로 인한 재난은 타이타닉이나 타워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생물학적 이익 추구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다양한 영화의 단골 메뉴다. 재난 범위는 훨씬 크고, 인간 종 멸망의 두려움으로까지 연결된다. 치매 예방이라는 선의로 접근한 생물학 연구가 영장류의 두뇌 발달을 가져와 인간과 대립하게 되는 ‘혹성탈출’은 그나마 불가능해보여서 재미있게 느껴진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가짜 뉴스든 합리적 의심이든 연구소에서 만들어진 인공 바이러스라는 소문도 무시할 수 없다. 에이즈 치료약 개발이 인류에게 더 필요한 의약품 개발보다 거액이 들어가는 이유는 이윤 창출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연장 선상에서 본다면 인공 바이러스 개발이라는 목적 자체도 자본주의 세상의 이익과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동식물에 존재하는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이되었을 수도 있다.
‘컨테이젼’의 아무도 없는 빈 도시가 된 코로나 사태와 중첩된 이유는 그것이 공상과 상상의 장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료=워너브라더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한다.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로나 이후 시대의 첫 번째 키워드는 접촉 빈도수의 축소다. 두 번째는 통합 네트워크 또는 집합이라는 개념의 변화인데, 이 통합 네트워크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코로나 전이 과정을 보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염성이 빠르다. ‘컨테이젼’처럼 국경을 넘나들며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국제적 분업화로 기능화된 현대 산업 구조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치명적인 전염병을 전달하는 루트가 된 것이다. 국제적 분업화가 왜 이루어졌는가? 생산성과 효율성을 추구해 이윤추구를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국경을 건너면 인건비가 낮아지고 각종 세금 등의 조건이 달라져서 생산 원가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 이후 이제 국경을 건너는 분업화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이 건축엔 어떤 영향을 줄까? 그리고 도시에는?
이런 전염병 사태에서 기능적 분화와 선택적 집중으로 거대화된 도시는 철저히 고립되지만 독자적 생존은 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차를 타고 대형 마트에 가서 쇼핑을 해야 하는 도시 구조에서 이동 제한과 물리적 차단은 위협적인 상황이다. 집밖으로 나오는 일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 된다. 결국 도시의 순환 체계를 작은 클러스터로 분할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도시 구조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할 필요성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물리적 이동 반경을 축소해서 생활할 수 있는 생존 시스템이 부상했다. 그것은 온라인을 통한 다양한 생활 방식이다. 바로 이점이 모순점이다. 네트워크의 긴밀함 때문에 과거 어느 시대보다 빠르게 치명적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에 대항하는 것이 ‘차단’인데, 실제 생활에서는 네트워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생물학적 전염병이 온라인까지 강타했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지만 도시는 완전히 마비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아날로그적 생활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든다. 작은 클러스터, 즉 동네 농원과 동네 커뮤니티 등 아날로그적 부활이 예상된다.
집중의 효율성과 이동의 자유로움 안에 이제는 공포도 포함되어 있는 셈이 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네트워크가 이뤄져야 한다. 도시 구조, 건축도 마찬가지다. 통합이 효율적이란 장점도 있지만 바이러스의 오염으로부터 동시에 궤멸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 거대하게 단순화된 주거단지 역시 마찬가지다. 집중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가 증명해주었다. ‘컨테이젼’의 상황은 전염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될 수 있다. 건축사들은 이런 시대적 변화에 대해 무엇을 고민하고 제안할 것인가. 거대한 숙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