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건축 03젠느 대사원 2020.4

2023. 1. 12. 09:08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Immortal architecture 03
Great mosque of djenne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이 건축물의 배치는 한 변의 길이가 55m 정도인 마름모 형태를 하고 있다. 가로 50m × 세로 25m 크기의 국제 규격 수영장이 두 개나 들어가는 규모다. 외벽 높이는 10m 정도로 3층 건물 높이와 비슷하고, 정면에 있는 타워의 높이는 어림잡 20m  정도 된다. 현대건축에서도 이 정도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규모라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런데 800년 전에 흙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면 어떤가?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구상에서 흙으로 만들어진 건축물 중 가장 큰 규모인 이 건물은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젠느(Djenne)」에 있는 젠느 대사원(great mosque of djenne)이다.

 

젠느 대사원



「젠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사막인 사하라 사막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다. 사막의 경계라고는 하지만, 사바나 기후의 영향으로 우기에는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 건축물을 짓기 전에 급격히 불어나는 강의 수위를 대비하는 계획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가로 75m × 세로 75m 정도의 크기로 높이 2m 정도의 기단을 먼저 만들었다. 그리고 이 기단 위에 가로 55m × 세로 55m 높이 20m 규모의 대사원이 세워졌다. 사원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도시의 중심가로가 지나간다. 도시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정치, 종교적 의미가 클 뿐만이 아니라 경제와 교통의 거점공간으로서 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축물이다.

 

젠느 대사원 전면 타워



젠느 대사원의 이런 규모와 상징성도 주목되지만, 독특한 외관도 눈에 띈다. 우리는 공장에서 생산된 산업화 재료로 만든 건축물에 익숙하다. 그래서 건축물이라고 하면 반듯반듯하고 각진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런지 유기적이고 부드러운 외관을 하고 있는 젠느 대사원은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젠느」가 위치한 서아프리카의 Sahel 및 Sudanian 목초지 지역에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완성된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전통건축의 모습이다. 우리에겐 낯설지만, 이 지역에서는 자연스럽고 환경에 더 적합한 건축일 것이다. 이 지역 건축양식(Sudano-Sahelian architecture)을 잘 보여주는 젠느 대사원은 800년 이상의 긴 역사와 약 3,000㎡ 정도의 큰 규모까지 갖추고 있어 대표성을 띠는 건축물로도 손색이 없다. 이런 역사성이 지역대표성을 인정받아 1988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폐허가 된 젠느 대사원 (1893) 사진=amisdumali.com



지금은 말리제국의 전성기였던 중세의 영광스러운 모습도 되찾고 인류문화의 중요한 건축물로 인정받고 있지만, 항상 영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유럽에 처음 소개되었던 19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젠느 대사원은 버려진 폐허였다. 1893년의 엽서에서 지금처럼 재축되기 전에 폐허였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흙벽과 타워는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조금씩 보이는 목재와 기단의 흔적으로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지경이었다. 도대체 젠느 대사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재축된 젠느 대사원 (1911) 사진=en.wikipedia.org



「젠느」에 정착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세기부터였고 9세기경에는 이미 도심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인 셈이다. 중세에는 이 지역에서 융성한 말리제국(mali empire)의 중심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지정학적으로 동·서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어서 교역 거점으로 매우 중요했고, 교육과 문화교류에서도 중심 도시였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이었는지 1230년경, 말리제국은 제국의 역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축물로서 젠느 대사원을 건설한다. 이후 17세기 중반까지 450년간 말리제국은 서아프리카의 맹주로서 대제국으로 성장했고, 「젠느」는 말리제국의 정치, 종교, 경제 중심지로 크게 번성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이런 「젠느」의 중심에는 언제나 젠느 대사원이 그 영광을 상징하며 서 있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부터 말리제국의 세력이 약해지면서, 「젠느」는 다른 세력에게 점령되고 만다. 새로운 통치자는 종교가 같은 이슬람 세력이었지만, 기존 사원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젠느 대사원을 포함한 기존 사원들은 모두 폐쇄되었고 새로운 사원이 건설되었다. 젠느 대사원은 버려졌고 이렇게 방치되자 곧 폐허가 되었다. 1810년대의 일이다. 그 후 프랑스의 탐험가 René Caillié 가 젠느 대사원이 버려지고 10년 뒤 「젠느」에 도착한다. 그는 젠느 대사원을 두 개의 거대한 타워가 있는 매우 큰 규모의 사원이라고 묘사하고, 버려진 수천 개의 제비둥지와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유럽에 전했다. 영광스러운 젠느 대사원은 10년 만에 냄새나는 흙더미로 전락하고 말았다.

 

FRENCH WEST AFRICA가 발행한 우표 (1947)



19세기. 아프리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던 프랑스는 서아프리카 내륙으로 세력을 확장했다. 1880년부터 말리를 식민지에 편입했고, 1893년에는 프랑스 군대가 「젠느」를 점령한다. 「젠느」에 입성한 프랑스는 폐허가 된 젠느 대사원을 1907년에 재축했다. 버려진 지 100년 만의 부활이다. 재축을 마치자, 프랑스는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젠느 대사원을 널리 알리기 시작한다. 1931년 열린 프랑스 엑스포에서 서아프리카 식민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젠느 대사원을 소개했다. 또한 1947년 french west africa에서 발간한 우표에 젠느 대사원을 담았다. 프랑스 제국주의의 목적은 따로 있었겠지만, 우리는 이를 통해 젠느 대사원이 서아프리카 건축의 상징인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1931년 엑스포는 제국주의 프랑스로서는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세계 곳곳에 있는 식민지 지역의 대표 건축물들의 복제 건물을 프랑스에 만들어서 전시하며 제국의 영광을 크게 홍보했다. 이때 서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엑스포에 복제되어 전시된 건물이 젠느 대사원이었다. 이 복제 건물은 이슬람교 사원으로서 종교적 기능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Missiri Mosque라는 종교적 이름으로 지어졌다. 이 건축물은 젠느 대사원의 재료인 흙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았고, 붉은색 시멘트로 반죽한 콘크리트로 건설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Missiri Mosque는 복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1987년 프랑스 문화유적(French historic monuments)으로 등재되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젠느 대사원과 비교하면 문화재로서 가치는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복제 건축물도 문화재로 등록된 특이한 경우다.

또 다른 젠느 대사원의 복제 건축물이 우리나라에 있다. 서귀포시 중문 관광단지에 2005년 개관한 ‘아프리카박물관 제주‘ 는 젠느 대사원의 겉모습을 모방했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이 건물의 장식과 외부는 황갈색 페인트를 섞은 뿜칠로 마감되었다. 프랑스에 있는 복제 건물 Missiri Mosque와는 달리 내부 공간은 원본과 유사성이 전혀 없고, 장식적인 겉모습만 흉내 냈다. 젠느 대사원의 의미보다는 시각적인 호기심을 끌기 위해 낯선 문화의 이질적이고 특이한 외형만 차용한 것이 아쉽다.

 

젠느 대사원을 본 딴 「Missiri Mosque」 (1931, 프랑스) 사진=en.wikipedia.org



프랑스와 한국에서 복제된 두 건물이 내구성이 강한 현대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흙으로 만들어진 젠느 대사원은 비만 오면 벽면이 씻겨나가고, 심하면 종종 무너지기도 한다. 2m 높이의 기단이 우기에 불어난 물로부터 대사원을 지켜주지만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2009년에는 정면 세 개의 타워 중에 하나가 무너지는 심각한 사고도 있었다. 당시 사진을 보면 타워의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붕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붕괴가 아니더라도 우기가 지나면 지속적으로 보수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해마다 보수하고 필요하면 지속적으로 재축을 한다.      

 

젠느 대사원을 본 딴 「아프리카박물관 제주」 (2005, 대한민국)
타워가 붕괴된 젠느 대사원 (2009) 사진=en.wikipedia.org
해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수와 재축의 축제 사진=archnet.or

 



매년 보수를 할 때면, 도시의 모든 남녀노소가 대사원의 보수에 참여한다. 노인들은 건초를 자르고, 여자들을 물을 기른다. 농부는 가축을 이용해 흙을 밟아 반죽하고, 아이들은 반죽된 흙을 고사리 손으로 들고 뛴다. 젊은이들은 대사원의 벽을 기어올라 아이들이 가지고 온 흙 반죽을 고루 펴 바른다. 얼굴과 손에는 모두 흙이 묻었지만 도시는 축제 분위기로 활기가 넘친다. 시민들은 모두 각자의 집을 매년 보수해왔던 준비된 건설 전문가인 셈이다. 이 과정은 며칠간 지속되는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참여하기 위해 해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젠느」를 찾아간다. 이렇게 젠느 대사원은 해마다 새롭게 태어난다. 어쩌면 반복되는 재축의 운명을 타고난 건물인 것 같다.
흙으로 만들어져서 매년 보수와 재축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문제점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 가능하고 영구적인 건축물로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건물보다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800년간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는 젠느 대사원은 오늘도 재축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천년의 도시 「젠느」와 「젠느」의 시민들이 있는 한 젠느 대사원은 불멸의 건축으로 남을 것이다. 

 



※ 국내 건축법은 재축과 개축을 구분한다. 천재지변 등 외부요인으로 건축물이 소실된 경우는 재축이고, glass cube처럼 건축물 소유자의 자발적 의사에 의한 경우는 개축이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 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 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