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의 영화 ‘괴물’과 ‘에이리언3’ 2020.4

2023. 1. 12. 09:07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Human movement flow's films 'The Host' &'Alien 3' 

 

오스카상의 백미인 감독상과 작품상, 각본상을 받은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 덕분에 이전 영화들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영화들을 보면 항상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 사회적 소수와 약자에 대한 관찰이 있다. 이런 시선 자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항상 있다. 그들은 굳이 동전의 이면 같은 부분을 드러내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봉준호의 영화에는 무척 복잡한 관점이 섞여 있다. 복잡한 가운데, 상징이 있고 은유가 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곳곳에 유머가 있다는 점이다. 유머는 영화를 쉽게 이해하게 만든다. 유머가 빠진 복잡함과 상징으로 된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는 피터그리너웨이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사실 무척 지루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머리 아픈 부분도 많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상징의 코드를 찾아내야하는 수수께끼 같은 현학적 표현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학성과 상상의 반대편에 있는, 적나라함을 드러내는 영화도 있다.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로, 사회성을 이야기하자면 이탈리아 대가 비토리오 데 시카가 최고로 보인다. 50~60년도 훨씬 이전의 영화감독이지만, 지금도 그의 영화는 인간적 감동을 진하게 보여준다. 그런가하면 썩소의 대명사 쿠엔틴 타란티노, 인간성과 폭력성을 깊이 있게 다루는 마틴 스코세이지 두 사람도 대표적이다. 물론 임권택과 박찬욱을 비롯한 우리 영화감독들도 좋다.
그런데, 봉준호는 이런 영화적 장르를 비빔밥 만들듯이 섞어 놓고 이야기한다. 한국인이라 그런지 그의 영화가 쉽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비빔밥에 익숙하다 보니까……. 기생충에도 짜파구리가 나오듯이…….
이왕에 이슈의 중심에 있는 봉준호에게 숟가락을 얻는 셈이니 그의 이전 영화를 언급해본다. 건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풀어나가는 지면이기에, 그의 영화 중 건축적 공간을 가장 잘 다룬 ‘괴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괴물’의 사회적 시선이나 의미는 다른 비평가들의 글에서 여러 번 읽었을 터이니, 공간에 대한 그의 해석과 시선을 중점으로 써보려 한다.
대개 영화에서는 건축, 즉 공간은 여러 방식으로 설정돼 드러난다. 직설적으로 예쁘장한 양식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은유의 상징으로 건축을 다루기도 한다. 대체로 봉준호의 영화는 후자에 가깝다. 직설적인 설명보다는 암시 또는 심리적 반응을 만들기 위해 공간을 이용한다. 그에게서 직접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분석하자면 당연히 그런 효과가 있다고 본다. 모든 공간의 장면들이 좌우 대칭으로 안정적이기보다는 중심이 이동하는 동적 화면으로 구성돼 있다. 이런 카메라 앵글은 아주 묘한 감정적 객관성을 느끼게 해 준다. 카메라의 수평적인 이동은 피사체가 있는 공간감을 오히려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영화 ‘괴물’에서 한강 다리 밑이나 하수로를 이동할 때 수평으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화면이 공간 안으로 따라 들어갈 때보다 훨씬 객관적 입장에서 공간을 바라보게 된다.

 

자료=(주)쇼박스


‘괴물’에 등장하는 공간은 색으로도 해석된다. 어둠과 빛의 대비가 선명하지 않고 흐린 날의 색감이 공간을 차지한다. 흐린 날의 색감이란 선명하지 않으며, 감정적인 우울함과 불안감을 드러낸다. 색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대체로 그의 영화들에서 색과 빛은 명랑한 이미지보다는 채색되고 빛바랜 듯한, 한 계단 아래로 내려앉은 모양새다.
‘괴물’의 공간 역시 등장부터 강렬한 암시를 주면서 이해하기 쉽다. 감정 이입도 마찬가지로 잘 된다. 서울 사람에게 한강은 묵시적으로 두 가지 접근법으로 다가온다. 하나는 관상용인 거대한 물길이다. 다가설 수 없는 거대한 물길이 넘나드는 한강은 값비싼 조망권을 소유한 집들이 독점하는 곳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강을 만나는 일상적 경험은 한강 다리로 바라보는 경우가 고작이다. 한강과 함께 한강 주변에 있는 고급 주거지들도 부러운 듯이 보게 된다.
다른 하나는 토끼굴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기어들어 가듯이 고급 주거지를 지나서 도착하는 강변도로와 올림픽 도로 건너에 있는 고수부지다. 모래사장이 넘실대는 한강변 해수욕장은 이미 50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서울 사람들 대부분이 경험하는 한강은 80년대부터 개발된 고수부지의 한강변이다. 이 한강변 고수부지를 이용하는 때는 대부분 여가시간이다. 달리기를 (고상하게 조깅을) 한다던가, 치킨을 배달받아 먹으면서 한강을 구경한다던가, 한여름 더위를 피해 나들이를 가는 정도다. 이 정도도 대단한 서울 시민들의 놀이터 역할이긴 하다. 인정!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뒷모습? 우리가 알지 못하는 거대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고층건물의 세련되고 화려한 도시 풍경과 한강 가까이에 개발된 자연 고수부지는 한마디로 매력적인 그림이다. 그런데, 매일 사람들이 잉여시간을 즐기기 위해 찾는 그곳에, 우리가 모르는 거대하게 구성된 또 다른 서식지가 있다는 설정은 흥미진진하다.
그렇게 만나는 한강변 고수부지는 어려운 곳이 아니다. 재미난 것은 우리가 한강 고수부지를 지나면서 무의식으로 만나는 수많은 한강 다리가 만들어내는 하부 공간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건축적으로도 매력적인 거대한 공간들이 아무 쓸모없이 버려져 있는데, 봉준호는 이 거대한 공간들을 보면서 온갖 상상을 다 한 듯하다. 마치 등잔 밑이 어두워 쉽게 좋은 것을 발견하지 못 한 것 같은데, 영화 ‘괴물’은 바로 이 공간에 주목한다. 일상의 한강과 그 일상의 한강에 숨어 있는 어마어마한 비밀에. 

 

자료=(주)쇼박스


그리고 영화의 내용을 이해하면 복선이 깔린 그 배경 선택이 얼마나 탁월했는지를 알게 된다. 일상적으로 노출된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처럼, 괴물은 그렇게 일상의 무관심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 가족은 설정부터 서민으로 구성된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다. 사실은 평범함보다 조금 더 무능력한 가족들이다. 국가 대표 양궁선수와 4년제 대학 출신도 있긴 하지만. 경제적인 면에는 밀린 자들이다. 이런 인물 캐릭터는 봉준호 영화 속에서는 아이콘 같은 구성이라 차치하고, 영화를 보면 이들이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장면이 많다. 그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이번에 상을 받아 화제가 된 ‘기생충’역시 마찬가지다. 카메라 동선도 이런 뛰어다니는 인물들의 동선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관찰자 시점에서 크게 바라보고, 직접 달리는 주체가 돼 뒷모습이나 앞모습을 담아 냈다.
‘뛴다’라는 것은 선형적인 이동을 말하면서도 어떤 목표점을 향해 이동하는 동선이기도 하다. 뜀박질을 할 때 사람들의 시선은 풍부하지 못하고 양옆의 모습들을 흘려버린다. 달리는 행위는 통상 하나의 행위로 이뤄지며, 다른 행동을 동시에 진행하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뛰고, 뛰고, 뛰는 영화가 대부분인 봉준호 영화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대표적인 행위다.
그런데 유달리 ‘괴물’은 그의 다른 영화에 비해서 선의 동적 동선을 자주 표현한다. 이 영화의 동선 구성은 공간적 리듬감을 보여준다. 한강변에서 괴물에 쫓기는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거대한 트레일러 사이로 지나가도록 만든다. 양 옆 트레일러 사이는 제한된 복도 공간이 되고, 인물은 달리 선택할 길이 없어 앞이나 뒤로 갈 수밖에 없다. 힘겹게 사이 공간을 빠져 나오면 이번에는 사방이 무방비로 노출된 고수부지가 나온다. 괴물이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는 동선 역시 다양한 공간의 크기 변화로 인해 마치 음악을 듣는 듯 공간의 운율을 보는 것만 같다.
화면 가득히 가득 채운 공간은 다양한 리듬으로 관객들에게 전해진다. 카메라의 수평적 이동과 공간의 깊이감을 보여줬다가, 다시 원근법의 중심에서 화면을 전개해 공간적 깊이를 정면으로 응시하기도 한다. 공간 자체로 멈췄다가 다시 이동하는 리듬감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공간에 몰입하면서 괴물을 관조하다가 괴물을 쫒는, 그러한 심리적 감정에 이입되게 된다.
동선에 리듬감을 부여함으로써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연출은 데이비드 핀쳐 감독의 SF 스릴러 영화 ‘에이리언3’에서도 볼 수 있다. ‘에이리언3’의 배경은 오로지 복도로만 돼있어서 긴장감의 강도가 훨씬 크지만 동선의 리듬감을 활용한 측면만큼은 ‘괴물’과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괴물’이 만들어낸 동선의 리듬감은 규칙성 속에 변수들을 삽입해서 훨씬 풍성하다는 것이다. ‘괴물’이 마치 바로크 음악 사이에 록큰롤이 섞여 있는 거라면  ‘에이리언3’는 미니멀 음악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압박감 같은 느낌이다.
‘에이리언3’은 식민지 해양 우주선에 발생한 화재로 감옥 행성에 착륙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괴물’에서는 인간의 탐욕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괴물이 탄생했다면, 에이리언 이면에는 기업이 외계 생명체를 군사용 무기로 활용하기 위해 몰래 지구로 가져간다는 설정이 숨어 있다. 영화 ‘에이리언3’에서 주인공 리플 리에 대한 설정은 미스터리다. 완벽한 인간인지 아니면 사이보그인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모호하게 전개된다. 철학적 대상으로 설정된 것 같기도 한데, 사이보그는 기업에 의한 일종의 테스터(Tester)로 만들어진 제품이기도 하다. 다만 리플 리가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을 보면 인간과 사이보그 그 중간쯤으로도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튼, 영화를 비평하는 글이 아니라 건축적 코드를 읽고 설명하는 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영화에 대한 비평적 내용을 이야기하진 않겠다. 

자료=20세기 폭스


‘에이리언3’에서 공간적으로 주목할 것은 선택지가 없는 미로를 따라가는 장면들이다. 선형의 동선 공간이 심리적 압박감으로 크게 다가오면서 에이리언과 등장인물들의 추격신이 본격적으로 연출된다. 공간은 튜브로 구성될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도 크고 작은 열린 공간들이 등장한다. ‘에이리언3’의 흥미로운 지점은 선형 공간에서는 아무런 갈등도 없고, 긴장의 순간은 있지만 쉽게 결정하고 이동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여러 선택지가 있는 홀이나 광장에서는 혼란스럽고, 선택의 순간을 강요받는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까? 그렇지 않음을 관객 모두가 알고 있는데, 마치 운율의 숨표 부분처럼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은 열린 공간에서 드러난다. 공간 하나로 심리적인 다양함을 연출한 감독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을 정도다.
거의 십 수 년이 흘러 ‘괴물’을 다시 보는 내내 ‘에이리언3’가 중첩된 것은 이런 배경적 공간이 닮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욕망에 의한 결과로 만들어진 괴물에 도리어 쫓기게 되는 이야기 구조 역시 두 영화를 비교하며 닮은꼴을 찾게 만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괴물이나 불순한 의도로 채집해온 에이리언이나 모두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이며 공포다. 하지만 이들 존재는 인간이 동기가 된 것들이다. 자승자박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두 영화에서 건축적 배경과 이야기 구조, 그리고 공간을 찾아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내면에 숨겨진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걸려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3월, 코로나19라는 느닷없는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진 2020년이다. 두 영화로 인해 여러 생각들이 스쳐간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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