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_강한 질서가 만든 자유로움

2022. 11. 11. 15:38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Freedom Granted by Strong Framework

 

공공에서 민간으로
갓 개소한 건축사사무소 중 다수가 첫 프로젝트로 공공을 선택하곤 한다. 달리 민간건축주와 연결되는 끈이 없을 때이기도 하고, 점점 더 많은 공공건축이 공모전을 통해 실력 있는 건축사를 만날 수 있도록 제도가 정비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할리 만무하다. 공모전이라는 복마전의 장벽을 넘는 일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어렵사리 당선되어 온갖 관행과 싸워가며 제법 괜찮은 물건을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다음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는 맨땅에서 시작하는 기분으로 다시 모든 과정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공공건축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공공은 민간과는 달리 앞 프로젝트의 성과가 다음 프로젝트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시점이 되었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완전히는 아니어도 조금씩이라도 공공에서 민간으로 대상을 옮겨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건축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사무실들의 첫 민간건축이 궁금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에스엔 건축사사무소의 카페 ‘포옥’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뢰의 관계  
에스엔 건축사사무소는 몇 개의 어린이집을 성공적으로 완성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최근 주목을 받은 ‘인왕 3분초 숲속쉼터’와 ‘해아전’에 이르기까지 공공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카페 포옥은 아직 이렇다 할 준공작이 없던 시절, 당시 힘들게 진행 중이던 공공 프로젝트의 자재를 공급하던 분의 소개로 건축주와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사무소 운영의 측면에서는 꼭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지 조건의 문제로 설계 기간이 1년 가랑 늘어났고, 덕분에 두 건축사는 충분히 설계를 숙고할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건축주는 카페 건축을 의뢰하면서 몇 가지 하고 싶은 것들 이외에는 대부분을 건축사에게 일임했다고 하는데, 이러한 프로젝트 이면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상언 건축사의 눈빛에서 건축주와의 단단한 신뢰 관계가 느껴졌다. 첫 민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한 중요한 조건들이 갖춰진 셈이다.

강한 질서가 만든 자유로움
카페 포옥은 음식점과 카페가 하나 건너 하나씩 자리 잡은 지방도로변에서 살짝 비낀 한쪽 천변에 서있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에서 출발해서 광릉수목원을 지나며 보았던 아름다운 풍광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다. 처음 받은 카페의 인상은 떠있는 두 개의 콘크리트 판이다. 무엇보다 다소 혼란스러운 주변의 상황을 단순하고 강한 건축 요소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으로 읽힌다. 이 판들은 2층 바닥과 지붕 슬래브의 연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입면의 프레임처럼 작동하기도 하고 건축물의 영역을 정의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차장에서 2층의 카페로 들어서기 위해 진입 계단에 서면, 처마가 만든 가상의 경계를 지나 콘크리트보와 벽돌벽 사이의 켜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이런 건축적 요소가 자아내는 공간의 레이어는 진입을 위한 적절한 시퀀스를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건축물이 외부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효과를 연출하는데, 두 개의 판은 이러한 건축적 장치의 가장 중요한 기틀이 된다. 
구성의 측면에서 보면 두 개의 판은 그 사이를 채울 여러 요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장치로 작용한다. 비틀어쌓기와 비워쌓기로 만들어진 다양한 패턴의 벽돌벽이나, 다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아치 형태의 창도 두 개의 강한 수평선 사이에서 어색하지 않게 공존하고 있다. 말하자면 강한 질서가 역설적으로 자유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바탕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질서를 통해 자유로움을 얻는 전략은 내부공간에서 개구부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합판을 400밀리미터 높이가 되게 잘라 수평의 그리드를 설정하고, 이 그리드에 맞는 다양한 높이의 창들을 만들었다. 카페 내부에서 천을 넘어 동쪽의 숲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양하게 연출되어 있지만, 그리드가 암시하는 규칙을 넘어서지 않기에 적절하고도 어수선하지 않다. 

 

카페 <포옥>의 내부 공간. 매끈한 두 판이 다양한 방식의 창을 품고 있다. © 김용순

 

마감으로서의 구조
카페 포옥은 대부분의 콘크리트 구조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구조는 많은 부분에서 마감은 물론 의장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는데, 부재의 크기와 배치, 타설 품질과 표면처리에 대한 실험 등 곳곳에서 에스엔 건축사사무소의 콘크리트라는 재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단면도를 보면 2층 슬래브는 아래로 돌출된 일반적인 보를, 지붕 슬래브는 위로 돌출된 역보를 사용하고 있는데, 두 판 사이의 공간을 매끈한 콘크리트 면으로만 정의하고자 하는 두 건축사의 의지가 엿보인다. 특히 카페의 높은 천장면은 달라붙는 설비를 최소화하여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4미터 높이의 공간감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설계되었다. 직교체계에 맞추어 적절하게 배치된 1층 외부 천장의 노출된 보는 간접조명의 바탕이 되어 자칫 답답할 수 있는 필로티 공간에 활력을 넣어주고 있다. 
     
소통을 위한 정원
카페 포옥의 1층은 필로티 구조로 대부분 외부로 열려있다. 동쪽의 천변으로는 콘크리트로 천을 향해 내려가는 단을 만들어 날씨가 좋을 때 누구든 쉽게 걸터앉아 쉴 수 있다. 서쪽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현장에서 나온 돌과 초화류, 자작나무로 밀도 있게 꾸며진 중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중정은 남쪽에서 바로 접근하면 1층의 열린 회전문 사이로 언뜻 보이는 동시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위로도 연결되어 보인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바로 2층으로 올라갈지, 아니면 1층을 먼저 둘러볼지 잠깐 고민하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게 생각되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이 정원이 조금 더 은밀하게 감추어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다. 두 건축사는 여러 공공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공공의 가치를 구현하는 방법을 터득하였고, 건축주를 설득해가며 1층을 최대한 열어둠으로써 카페의 공공적 성격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공공건축을 통해 얻은 교훈을 민간건축에 시도한 것이다. 그 노력은 충분히 가치가 있고 또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보이지만, 주변의 빈약하고 혼란스러운 도시적 맥락이 그러한 시도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느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히려 아름답게 꾸며진 중정은 서쪽의 일부를 차폐하여 조금 더 소중한 고유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았으리라. 

기본에 충실한 건축
바야흐로 카페 건축의 전성시대다. 민간 분야에서 설계 좀 한다는 건축사사무소치고 포트폴리오에서 카페 프로젝트가 빠져 있는 경우를 찾기 쉽지 않다. 트렌트를 읽되 유행에 휩쓸려서는 안 되며, 독특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되 건축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게다가 포토스팟과 같은 아이템도 챙겨야 하고, 브랜딩 디자인도 놓쳐서는 안 된다. 쉽지 않은 조건들이다. 에스엔 건축사사무소는 단순한 건축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구조와 질서라는 건축의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어려운 조건들에 흔들리지 않고 까다로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완성시켰다. 과감한 공간이나 형태, 실험적 디테일에 집착하여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는 기본에 충실하면서 스스로 세운 원칙에 입각하여 하나씩 단단한 디자인의 요소를 쌓아올리는 것. 요즘의 팍팍한 건축설계업의 현실을 생각하면 효율적이고 영민한 전략이다. 이제 막 민간건축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에스엔 건축사사무소의 미래는 한껏 밝아 보인다.

 

글. 이승환 Lee, Seunghwan (주)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이승환 건축사·(주)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이승환은 파트너 전보림과 함께 2014년부터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첫 준공작인 매곡도서관으로 대한민국 신진건축사대상 대상 등을 수상하였고, 2019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였다. 사용자와 일상을 매개하는 배경으로서 건축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2020년 공공건축과 건축설계 현실에 대한 내용을 담은 단행본 『그래도 건축』을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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