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1. 30. 23:10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Oki Sato and Nendo Part II
사토 오키는 한 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서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있습니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저의 이야기를 해야하는 것이지요.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너무 진지한 대화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터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꺼려하는 인터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년의 디자인 전망을 얘기해야 하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색, 디자인을 이야기 하는 것, 그리고 그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매번 불편함을 느끼고는 합니다.”
- IDS13 International Guest of Honor에서 발췌
관련 인터뷰를 찾아보다 발견한 강연회에서 그가 이야기했던 부분 중에 하나이다.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사토 오키의 내성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라 이해를 했다. 최대한 스스로를 낮춤으로서 자신의 생각을 공감시키는 능력이 있는 디자이너라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좋은 디자인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지금 당장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전혀 제품에 대한 기본적인 바탕이 없는 사람에게, 전화로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컨셉을 들려줬을때, 그들에게 직감적으로 컨셉을 이해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성이죠.”
그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만나는 다양한 클라이언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평소 그가 어려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디자인이 결코 무겁고 어려운 대상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전혀 큰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 그가 찾는 작은 아이디어가 결코 무겁거나 진지한 대상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그의 생활 패턴을 눈여겨 보면, 단순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삶으로 생각한다. 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국수집을 매일 찾아가고, 옷의 가짓수를 정해 바꿔가며 입는다. 삶에 있어 변화를 주는 것이 좋을때도 있겠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아오는 변화들이 때로는 더 큰 즐거움이다. 자주 가는 국수집에 국물 맛이 달라졌거나, 자신이 늘 걸어다니던 거리에 새로운 상점이 들어선 것과 같은, 일상에서 오는 작은 변화가 그에게는 하나의 즐거움인 것이다. 이 즐거움이 그의 작업 속으로 그대로 대입된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소소한 즐거움이 위트가 되어 디자인에 필수 요소가 된다. 결과적으로 클라이언트가 직감적으로 컨셉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경영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디자인 철학은 쉽게 문제에 노출된다. 바로 수익과 관련된 부분이다. 디테일과 관련되어 진행되는 많은 디자인 작업들은 그만큼 시간과 돈이 투자되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와 교감이 될 수 있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는 어디까지나 밑그림이고, 디자이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작은 부분에서 결정짓는 디테일이 결국 승부수가 된다.
하지만 이것에 너무 집중하다보면 효율이 무너지며, 수익률이 악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번 새로운 클라이언트를 만날 때마다 새로움을 찾아내고자 비용과 수고를 들인다면, 디자인 회사는 수익구조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반대로 디자이너 수를 늘려 아이디어나 디자인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하지 않는 상황이 된다고 가정해보자. 흔히, 대형 건설사나 건축사사무소에서 진행하는 방식처럼 일종의 대량 생산 체제를 준비하는 디자인이라면, 고객에 요구를 무시한 반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디자인이 된다. 즉, 이런 환경에서는 디자이너의 성장도 간단한 하나의 길이 된다. 광고, 그래픽, 공간디자인 등 대량 생산을 지향하는 디자인일수록 디자이너의 수가 많고 경제적으로 윤택한 회사가 많아지는 게 사실인 것이다.
또 하나, ‘하청작업’의 많고 적음이 디자인 회사의 경영 사정을 흔들 수도 있다. 인맥을 활용해 CAD 도면 제작 같은 하청 업무를 맡아 처리하면서 회사의 기본적인 이윤을 확보하는 회사도 적지 않다. 건축이나 인테리어의 경우, 내부 투시도 제작이나 제도 업무 분야가 많이 있다. 대규모 건축사사무소에서는 파트 타이머나 계약직 사원이 그런 업무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량이 갑자기 늘어난다거나 하면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진다. 외부의 소규모 디자인회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급 밸런스가 성립된다. 그러나 이 강한 수요 공급 관계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청 작업에 특화된 디자인 회사가 어느 날 돌연 ‘디자인의 질을 중시한 업무로 전환’을 생각한다 해도 본질을 쉽게 바꾸기는 어려운 것이다. 즉, 대량 생산 및 하도급 방식과 관계된 디자인 프로세스는 한번 발을 들이는 순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늪과 같은 것이다.
이에 사토 오키는 넨도가 가지는 혹은 디자인 회사가 가지는 가장 큰 차별요소는 아이디어라고 확신한다. ‘이 회사에서만 내놓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기 때문에 지구 반대편에 있는 클라이언트가 1년을 기다릴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수준 높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디자이너 일수록 ‘디자인 수익 빈곤’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밀라노 국제 가구 박람회’는 디자인계 최고의 성지이지만 경제적으로는 디자인 수익 빈곤자들의 병동과 같은 곳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극소수의 디자이너에게만 금전적인 보수가 허락되는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그런 가구 박람회는 결국 홍보를 위한 곳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박람회를 통해 얻어지는 많은 미디어의 노출 효과는 세계 각국의 클라이언트를 확보한다는 기대감을 가져다 준다. 결국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그에 상응하는 품질까지 확보한다. 회사는 경제적으로 안정을 꾀하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여 육성시키려고 하는 것이 사토 오키의 경영 철학인 것이다.
넨도는 이 고민의 시작점에 서 있다. 디자인 업계가 가진 이런 딜레마를 직접 부딪혀 보려한 것이다. 물론 다양한 시행착오가 앞에 있지만, 넨도는 단순히 디자인회사의 명칭은 아닌 것이다. 높은 품질의 디자인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지닌 하나의 사고방식, 또는 ‘플랫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플랫폼이고자 한다면, 다른 어떤 회사에서라도 응용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한다. 그 시스템을 개별 디자인회사에 맞춘 커스터마이즈 방식, 이식 방법 등을 끌어내기 위해서 앞으로도 몇년이 더 걸릴 것이라 사토오키는 생각한다.
글. 김성환 Kim, Sungwhan 현대자동차 크리에이티브디자인팀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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