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회가 잘해야 한다 2018.03

2022. 11. 30. 23:1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The institute should do well leading.

 

길지도 않은 2월에 참, 일도 많았습니다. 추위가 좀 가시는가 싶더니 미세먼지가 들어 앉아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짧은 설날 연휴가 왔는가 싶더니 금세 가버렸습니다. 인사동에서 사온 질 좋은 화선지를 잘라, 입춘방을 커다랗게 써서 붙였습니다. “올 봄에는 대길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제발 무탈하게 넘어가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기름칠한 바닥 위로 쭈욱 미끄러져 나가듯 일이 매끄럽게 진행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일은 늘 비포장 자갈길 위에서 낮은 포복하듯 요동치며 오랫동안 고통을 겪으며 진행됩니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인지 집을 한 채 지으려고 하면, 정다운 이웃들이 동네에 새로 들어올 사람에게 축복 대신 창의적이며 다양한 민원서를 선사합니다. 법에도 없는 규정을 들먹이며 한없이 행정절차를 늦추는 관청 때문에, 시간이 이토록 큰 위협의 도구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낍니다. 그리고 아직 정착되지 않은 공영감리제와(대체 왜 사용승인은 설계자가 해야 하는 겁니까) 간혹 만나는 공무원보다 더 야박한 특별검사원 때문에 추운 날씨보다 더 오싹한 한기를 겪습니다. 건축에서 제일 즐거운 일은 그저 앉아서 트림하고 옵셋하며 도면을 그릴 때 뿐이라는 자조적인 한탄을 하기도 합니다.

아... 정말 건축사들에게 봄은 언제나 올까요? 그 와중에 즐거운 일이 잠시 있었죠. 얼마 전에 끝난 평창 동계 올림픽 이야기입니다. 올림픽이 열리기 전 많은 사람들이 무척 걱정을 했었습니다. 어렵게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준비기간 동안 여러 가지 난맥상과 잡음을 보고 들으며 기대지수가 많이 떨어졌었죠. 사실 저는 스포츠를 아주 열심히 보는 편이 아니라서,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던 평창 올림픽의 개회식을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개회식을 하는 날, 낮에 어떤 매체에서 개회식을 시청하고 의견을 주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거절하기 애매해서 텔레비전 앞에 노트북을 켜놓고 일이나 하면서 가끔씩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개회식이 시작되자 그럴 틈이 없더군요. 기대 이상으로 연출이 훌륭했고 여러 가지 무대와 영상 등 준비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마다 감동하는 포인트가 다르겠지만, 저는 허공에 반구형으로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나타날 때 손뼉을 치며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까지 했고, 시작부터 예감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좋은 예감은 좋은 결과로 나타났죠. 굳게 문을 닫아걸고 툭하면 핵실험 카드를 들었다 놨다하며 으름장을 놓던 북한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 선수 손을 잡고 입장을 했습니다. 단일팀으로 경기했던 여자 아이스하키도 비록 승리는 못했지만 가슴 뭉클한 드라마를 연출했고, 세계에 우리의 역량을 선보인 가운데 컬링이라는 아주 생소한 경기에 빠져들게 되었죠.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이 대목에서 흐뭇하게 웃으실 듯합니다. 경상북도 의성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실력을 연마한 젊은 여자 선수들이 보여준, 세계의 강호들에게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패기와 경기력에 우리 모두 감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은메달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개인들이 노력하고 메달을 따면서 세상을 놀라게 할 때, 한편으로는 선수들을 육성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며 큰 보호막이 되어주어야 할 관련 협회가 제 역할을 못하다가 뒤늦게 성공에 편승하고 생색을 내는 어이없는 모습도 드러났습니다. 빙상 관련 협회만이 아닙니다. 많은 분야의 ‘협회’들이 파벌을 만들고 그 파벌이 해당 종목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소를 위해 대를 희생하는’ 그런 일도 서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수한 개개인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걸 일일이 이야기하자면 아마 백과사전 두께의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습니다.

협회가 잘 해야 합니다. 건축사 개개인이 민원과 대관 업무 등에 시달리며 한 달 한 달을 힘들게 넘기며 어려운 여건에서 건축을 할 때, 협회가 커다란 보호막이 되고 어두운 항로를 비춰주는 불빛이 되어야합니다. 새로 시작하는 대한건축사협회 집행부의 행보에 큰 기대를 걸어봅니다.  곧 산수유 꽃망울이 터지며 봄이 올 겁니다.

 

. 임형남  본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