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2020.10

2023. 1. 25. 09:03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bout the yard, its beauty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고 어머니의 부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여 있던 갈색 툇마루에서 내려 보았던 마당에 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때 그 날은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었고 백색의 마당은 더욱 눈을 부시게 한 날이었다. 우리 한옥은 처마가 깊다. 앞산의 둥그런 실루엣을 닮은 듯, 한복 소매의 공 굴린 듯, 그리고 여인의 버선코를 닮은 듯한 지붕 선은 서까래와 부연을 타고 내려와 숫, 암막새 기와로 마감된다. 처마 선은 길게 이어짐으로써 여름철 직사광선과 길게 늘어지는 서향 빛을 차단하는 기능을 가진다. 반면 그 처마 깊이로 인해 겨울철 실내는 빛이 상대적으로 작게 들어온다. 그래서 그 점을 보완한 장치가 바로 마당에 백색 마사토를 까는 일이었던 것이다. 백색 마사토는 햇빛이 찬란하게 비출 때 그 위력을 발휘한다. 마사토의 백색은 태양고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겨울철 햇빛을 마당으로부터 반사시켜 실내 어둡고 깊숙한 곳 까지 태양 빛을 제공해 줌으로써, 실내 조명기능으로서 효과를 발현했다. 건축을 전공하면서 체득한 것이지만 백색 마당이 주는 선조의 지혜는 놀라웠다.

우리 집 마당 앞 담장에는 어릴 적 서예를 배우면서 최초로 벽에 서예 글씨를 뽐낸 담 벽이 있었고, 아버지의 손수레가 한 쪽 창고 앞에 있었다. 어릴 적 기억하는 잔치에 관한 추억은 대개 마당에서 이뤄졌다. 예쁜 누이가 시집을 갈 때 행했던 혼례식도 마당에서 행해졌다. 흰 광목 차양을 치고 그 차양 아래 연지 곤지를 찍은 수줍은 누이의 홍조 빛 미소가 정말 아름다웠던 마당은 한 편의 드라마 촬영지였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맛있게 나눠 먹던 잔치 음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첫 맛을 제공해 주었고…….

 


그렇게 마당은 내 인생 추억 영상록 중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주마등 중 하나다. 우리는 본가가 있으면 당연히 어머니의 생가가 있다. 왜, 우리는 본가보다 외가가 더 정겨울까.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 그야말로 ‘떠나온 집,  친정’이라는 애틋함 때문이 아닐까. 어릴 적 외가는 마당에 관한 또 다른 세계를 접하는 공간이었다. 나의 외가는 농사를 상당히 많이 지었던 외할아버지의 손때가 절절이 묻어있던 공간이었다. 모내기철이 되면 놀고 있는 아이들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기에 나는 농사일을 도와 드리러 자주 외갓집을 갔다. 그리고 놀러도 많이 갔다. 갈 때면 외삼촌은 늘 그러셨지만 새벽 네 시 이전에 일어나셔서 소죽을 끓이시며 모내기 준비를 다 하시고, 아침을 드시기 전에는 늘 마당을 쓰셨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내려다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백색 마사토 마당에 선명하게 그어져 있던 외삼촌의 마당 빗질 선이었다. 빗질 선형은 마치 산등성이의 능선처럼 모두 일정한 모양으로 외삼촌의 어깨 관절을 중심으로 그 분의 팔 길이에 맞추어 겹겹이 첩첩산중처럼 그어져 있었다. 나는 어릴 적 그 선을 보며 외삼촌의 성실함, 부지런함과 마당 전체를 묵묵히 쓸어 내며 일을 마치시던 황소 같은 뚝심을 배웠다. 

농삿일을 전문으로 하는 곳의 마당은 여느 살림집 마당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마당을 중심으로 살림집이 있고, 농삿일의 훌륭한 일꾼 소의 집, 우사가 있고, 소죽을 끓여서 방바닥이 절절 끓는 사랑방이 있으며, 또한 하루 식사를 마무리하여 처리하고 그것을 다시 거름으로 재활용하는 돼지 돈사를 겸한 해우소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각종 곡물과 다양한 농기구가 보관돼 있는 창고가 함께 어울려 배치된 외갓집. 실로 외가는 정말 나에게는 커다란 우주였고 색다른 세계였다. 그리고 마당 한 켠에 배치된 우물, 그 우물물이 주는 시원함과 상큼함, 그 깊은 우물물에 비춰 보인 내 어릴 적 동그란 얼굴은 그대로 뇌리에 각인되는 훌륭한 영상들이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고, 일을 끝내고 집에 와서 맛난 점심을 먹고 휴식을 하며 나른함에 취해 오수를 즐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한 바탕 소나기가 마당에 지나가서 그 소리에 놀라 잠에 깨어, 긴 하품을 하며 마당을 내려 보았을 때를 나는 또한 기억한다. 그 때 느꼈던 시원함과 청량감 그리고 그 마당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흙 내음, 그 체취는 어떻게 표현하며, 무엇과 견주겠는가. 또한 한 겨울에 소복이 쌓여 있는 눈은 마당에 한 편의 수묵 동양화를 그려 놓은 것과 같았다. 

자연은 예술이 아니라고 혹자는 말한다. 하지만 마당에서 빚어지는 모든 행위와 풍광은 예술이다. 건축을 전공하면서 많은 고택을 돌아다니고 고즈넉한 산사를 답사해 보며 느낀 것은 우리의 마당은 진정 예술 그 자체였다는 점이었다. 예산 추사고택에서 보았던 마당은 기품을 느낄 수 있었던 곳이었다. 켜켜 마당이 있고 본 마당으로 진입하기 위한 전위 공간들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고, 그 마당에 떨어지는 햇볕 양과 공간의 크기가 다르기에 그 위계가 달랐던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또한 안동에 있는 병산서원에서 느끼는 마당은 본관 건물 입교당에서 내려다보는 마당의 느낌과 병산과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는 만대루에서 뒤돌아보아서 느끼는 마당은 서로 감이 달랐다. 이렇듯 마당은 다양한 조화로움이 피어나고, 아름답게 빛나는 우리의 훌륭한 건축문화유산이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건축사·작가

 

건축사이자 문학작가인 조정만은 남원 성원고, 건국대학교 건 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설경영과정 금호MCA를 이수하였다.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설 계, 감리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건축사를 취득한 후 강원청암 재, 동교주상헌,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등 다수의 작품을 하고 있 다. 2016년에는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 로 등단하였고, 선함재건축을 7년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무영씨 엠건축 대표이사이자, 활발한 에세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imatect@mooyoungcm.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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