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를 짓습니다 2023.1

2023. 1. 19. 20:19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Create an atmosphere

 

ⓒ 풍화지건축사사무소

주 종목 인테리어
의도하지 않았지만 첫 직장에서는 주택 위주로 일했다. 이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스위치, 도어 핸들, 수전을 고르느라 야근을 일삼았다. 그런 영향을 받았는지 건축과 인테리어를 구분해서 생각한 적이 없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건축과 인테리어가 나누어지는 경계를 알 수 없었다. 애초에 구분할 수 없는 것을 상황에 따라 편리하게 구분해서 쓴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특별한 배경 없이 독립한 어린 건축사에게 건축 일을 선뜻 주는 경우는 단연코 없었다. 주어지는 작은 작업들을 시작했고, 자연스레 인테리어 위주로 일하게 되었다. 이어지는 인테리어 작업으로 빠듯하게나마 사무실을 운영해온 것이 다섯 해를 바라본다. 지금은 다행히도 대수선, 리모델링, 건축으로 조금씩 작업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단지 건축사이기 때문에 건축 작업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건물 안에 주어진 구조를 유지하면서 제한적인 디자인을 하는 상황이 만드는 갈증이 있다. 인테리어 일을 마음먹고 중단해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어쩌면 인테리어 일이라도 계속해야 하는 스스로에게 지속할 동기나 명분이 필요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더 솔직한 이야기이다.

분위기
건축 생산자의 입장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은 운신의 폭이 아주 좁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재료를 고르고 마감 방식을 달리하는 일이다. 조금 더 한다면 선정한 재료 비율을 조정하고 시공 상세를 고민하는 정도다. 제법 과감하고 획기적인 디자인을 제안해도 건물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배치, 공간구성, 기능적인 측면을 전복시키는 결과물을 만들기는 힘들다.

ⓒ 풍화지건축사사무소
ⓒ 풍화지건축사사무소


기존 건물이 갖고 있는 가능성과 개성을 효과적으로 고양시키는 일. 공간이 필요로 하는 적절한 ‘분위기’를 만드는 일이 인테리어 작업이 가진 의미다. 해가 드는 창문 맞은편 벽은 어떤 마감재를 선택해야 부드러운 텍스처를 만들 수 있는지, 벽과 닿은 바닥은 무슨 재료가 어떻게 만나야 부드러우면서도 긴장감이 유지되는지, 조명은 어떤 벽을 드러나게 하고, 어떤 공간을 내밀하게 숨길 것인지. 작은 스케일에서 섬세하게 고민하는 일이 손에 익어갔다.

기본으로 짓는 집
독립 초기에 인테리어를 작업한 요가원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는 것보다 직접 건물을 지어서 요가원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창 시공비가 올라있던 상황이라 시장 상황을 말씀드렸다. 쉽게 갖기 힘든 건축 과정이 행복하게 진행되길 바라는 마음에, 예상되는 어려움을 같이 공유하고 더 좋은 선택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넉넉한 건축주는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이번 현장도 예외 없이 빠듯했다. 많은 고민들 사이에서 몇 가지 확실한 사실들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도록 했다. ‘건축하지 않는 한 상황 변화는 없다, 건축은 오늘이 가장 싸다!’
여건을 고려해서 진행하기를 부탁받고, 많은 부분에서 건축사로서의 욕심을 내려놓았다. 제한 상황에서 설계하는 일은 워낙 익숙해서 불편함은 없었다. 이번 현장의 제한사항은 예산, 오히려 기준이 명확해서 고민이 줄었다. 디자인할 여지가 없는 부분과 조금의 기회가 남아있는 부분을 빠르게 구분했다.
여러 선배들의 조언으로 구조는 철골구조로 결정하고, 효율적인 공사를 위해서 매스와 형태적인 변화도 최대한 절제하기로 한다.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A 프레임 틀 안에서 작업한다. 지붕 경사와 건물 전체의 비례, 창호의 위치와 크기, 배치와 평면 구성… 비용의 증감이 없는 설계 영역에 집중하기로 했다. 디자인 과정에 운신의 폭은 좁았지만 더 깊은 고민을 할 수 있었다. 건축주와 협의 과정도 여느 때 못지않게 풍부했다.
제법 순조롭게 착공을 하고 어느덧 공기도 반을 넘어가고 있다. 어려운 공사는 없지만 예상외로 매주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 자리를 채워나갈 생활에 대한 책임감인 것 같다. 부디 건실하게 마무리되고 따뜻한 시간이 쌓여가기를 기대한다.

 

글. 안종훈 An, jonghun 풍화지건축사사무소

 

안종훈  건축사·풍화지건축사사무소

 

홍익대학교 건축학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공학석사를 취득했다. KPF new york 에서 인턴을, ‘솔토지빈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수련 후 독립했다. 현재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경기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contact@p-ao.kr

'아티클 | Article > 에세이 | Essa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음과 맞춤 2020.11  (0) 2023.01.26
마당, 그 아름다움에 관하여 2020.10  (0) 2023.01.25
빛 2023.1  (0) 2023.01.19
애틋한 골목길 2020.5  (0) 2023.01.13
접바둑과 그레질 2020.4  (0) 2023.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