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건축 10_브라질 국립박물관 2020.11

2023. 1. 26. 09:08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Immortal architecture 10
National Museum of Brazil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축물은 브라질의 130여 년 역사보다 오래되었다. 현재 공화국인 ‘브라질’의 전신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던 왕정국가 ‘브라질 제국’이다. ‘브라질 제국’ 이전의 브라질 지역은 ‘포르투갈 제국’ 식민지의 일부였다.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축물의 역사는 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 전쟁(1803년-1815년)으로 유럽에 있던 ‘포르투갈 제국’의 수도 리스본은 나폴레옹에게 점령당한다. 유럽 본토를 상실한 포르투갈 황제 ‘주앙 6세(john VI)’는 브라질의 ‘리우 데 자네이로’로 제국의 수도를 옮기는데, 왕가의 거처(Royal residence)가 필요했다. 이렇게 Paco de Sao Cristovao(Palace of Saint Christopher)는 왕의 거처로서 1803년 착공해 5년 뒤 1808년 완공된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유럽의 본토를 회복하자, 주앙 6세는 1821년 ‘리스본’으로 귀환하며 이 궁전과 브라질 지역을 아들 ‘페드루 1세(Pedro I)’에게 맡겼다. 하지만, 이듬해인 1822년, 페드루 1세(Pedro I)는 포르투갈에 독립을 선언하며 스스로 브라질 황제에 오른다.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이었지만, 포르투갈의 왕자가 세운 국가였다. 포르투갈의 왕이었던, 아버지 ‘주앙 6세’가 죽자, ‘페드루 1세’는 한때 브라질 황제이면서 동시에 포르투갈 왕을 겸하기도 했다. 결국 ‘포르투갈’과 ‘브라질 제국’은 18세기 말까지 같은 왕족의 또 다른 나라였던 것이다.   

페드루 1세가 세습받은 것은 궁전만이 아니었다. ‘주앙 6세’가 1818년 ‘리우 데 자네이로’에 왕립 박물관을 설립하고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한 곳에 모았었다. 이 박물관과 박물관이 소장한 ‘포르투갈’ 왕가의 유물들이 ‘브라질 제국’의 왕립 박물관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페드루 1세’는 유럽의 저명한 학자들을 박물관장으로 임명하고, 희귀하고 중요한 유물들을 지속적으로 모았다. 1889년 ‘브라질 제국’의 황제가 물러나고, 브라질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황제의 ‘왕립 박물관’은 지금의 ‘브라질 국립박물관’으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제국이 식민지에서 수집한 유물이 ‘브라질 국립박물관’에 남게 된 배경이다.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1817) 사진 ⓒ Jean-Baptiste Debret(wikipedia.org)
타워가 증축된 모습(1831) 사진 ⓒ Jean-Baptiste Debret(wikipedia.org)
1835년-1840년 경의 모습 사진 ⓒ Karl Robert, Baron of Planitz(wikipedia.org)
증축 기간의 모습(1858) 사진 ⓒ Victor Frond, Eugene Ciceri(wikipedia.org)
증축이 완성된 모습(1862) 사진 ⓒ Augusto Stahl(wikipedia.org)
브라질 제국 말기의 모습(19c 후반) 사진 ⓒ Arquivo Nacional do Brasil(wikipedia.org)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모습(1905) 사진 ⓒ JB de Lacerda(wikipedia.org)
화재 전의 모습
화재 전의 모습

브라질 국립박물관은 자연사와 인류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희귀하고 의미 있는 유물을 200만 점 이상 소장하고 있어 규모나 문화적 중요성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박물관이다. 특히, 고고학, 고대 이집트, 지중해 문화를 비롯해서 브라질 지역을 포함한 아메리카의 인류학과 자연사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이다. 소장한 유물의 양도 많지만, 브라질 국립 박물관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희귀 유물도 많다. 대중적으로 축구와 삼바축제로 더 익숙한 브라질이지만, 앞에서 언급한 분야의 전문가라면 축구와 삼바보다도 브라질 국립 박물관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박물관이 2018년 10월 1층 오디토리엄 냉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한 화재로 전시 중이던 유물들과 함께 불타버렸다. 세계 최대 박물관의 유물들과 함께 건물도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조금씩 재축이 진행되고 있는 브라질 국립박물관 건물의 역사를 살펴보자.

2018년 화재 당시 모습

이 건축물은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항이 아름답게 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으로 지어진 당시(1808년)의 모습이 묘사된 그림(1817년)을 살펴보면 화려하고 아름다운 계단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2층의 창이 크고 화려한 것을 보니, 왕족들은 2층에서 주로 생활했을 것이다. 왕족들은 넓고 우아한 계단을 이용해 넓은 마당에서 2층으로 바로 오르거나, 계단 위에서 마당을 내려다보며 위엄을 뽐냈을 것이다. 언덕 위의 이 저택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리우 데 자네이루’ 항구의 모습은 브라질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었을 것이다. 1층은 창이 작거나 없다. 기능적인 출입구로 효율적인 동선을 확보했다. 2층의 왕족들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대시설이 1층에 있었을 것이다. 리스본의 화려한 궁전을 떠나 멀리 브라질까지 왔을 당시의 왕족들의 생활을 상상해본다.      

1822년 페드루 1세의 황제 등극과 독립선언으로 브라질 제국이 수립되자, 식민지에 위치한 포르투갈 왕가의 저택은 이때 황제의 저택(Imperial residence)으로 격상되었다. 이제 황제의 위상에 맞는 상징적인 모습이 필요해졌다. 포르투갈에 대한 향수를 달래주거나 화려한 생활을 위한 건축도 필요했겠지만, 제국의 황제로서 유럽의 황제와 같은 위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1822년부터 1826년에는 포르투갈의 Manuel da Costa이 계획하고 이어서 프랑스인 Pedro Jose Pezerat에 의해 1826년부터 1831년까지 계획과 공사가 이어졌다. 거의 10년에 걸쳐 진행된 증축공사로 새로운 황제를 위한 신고전주의 양식(Neo-classic)의 파사드가 강조된다. 한쪽에만 있던 타워의 반대쪽에 새로 타워를 세워 대칭성을 강조한 두 개의 타워를 갖춘 것이다. 이후에도 2층이었던 전면은 3층으로 1개 층을 증축한다. 좌우를 대칭시켜 상징성을 강조하고, 3층 건물로 크기를 키워 황제의 위용에 걸맞은 건축적 웅장함을 더했다. 이렇게 황제를 위한 건축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후에도 브라질의 예술가와 이탈리아의 장인들이 초청되었고, 그들의 손길이 닿은 섬세한 내부 장식과 천장 그림으로 여러 방들이 화려하게 꾸며졌다. 이렇게 브라질에서 가장 화려하고 권위가 높은 건축물은 1862년이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다. 

화재 전의 모습

1889년 황제가 물러나고 브라질은 왕정국가에서 공화국으로 출범한다. 건국 초기에 브라질 공화국의 헌법 재정단이 이 건물을 임시 사용했지만, 1892년 황제의 박물관을 브라질 국립박물관으로 전환하면서,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이곳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황제는 사라졌지만, 유물은 남았다. 대표적인 소장 유물은 ‘루지아’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견된 인류의 화석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으로 무려 1만 2천 년 전 여성의 두개골을 복원한 것이다. 지구 밖에서 지구에 떨어진 것도 있다. 1784년 발견된 대형 운석으로 무게가 자그마치 5.36톤에 달한다. 이런 진귀한 유물을 2천만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데, 1938년에는 브라질 국가유적(Brazilian National heritage)으로 지정되면서, 건축물까지 국가 문화재가 되었다. 건축물과 건축물 내부의 유물들까지 모든 것이 브라질의 보물이자 세계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인 곳이었다.

이곳에 화재가 발생한 것은 2년 전인 2018년 9월 2일이다. 1층 오디토리엄의 냉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한 불꽃은 삽시간에 박물관 전체로 번졌다. 소방차가 출동하고, 화재 진압을 위해 많은 소방관들이 노력했지만 박물관의 전소를 막지 못했다. 박물관의 내부와 전시 중이던 유물을 모두 태우고, 모든 지붕이 내려앉은 뒤에야 불길이 잡혔다. 석재로 만들어진 외벽은 새까맣게 타버린 내부와 멀쩡한 외부가 대조적이었다. 각종 유물 2천만 점과 동물 표본 650만 점, 식물 표본 50만 점 정도가 있었는데, 일부만 안전하게 옮겨지고, 90% 정도의 대다수 유물은 소실되고 말았다.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자랑하던 희귀 유물들은 이제 사진과 세밀화로 그려진 기록물로만 남았다.

브라질이라는 국가의 역사보다 더 오래된 이 건축물과 박물관은 이렇게 치유하기 힘든 사고를 겼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치유와 복구의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비단 기부금으로만 복원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브라질 국민과 기업의 기부금액이 외국의 기부금액에 못 미친다는 소식도 있고, 브라질 국립박물관 복원에는 기부하지 않고,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한 기금으로는 수백억 원을 기부한 브라질의 억만장자 이야기가 전해지자 브라질 여론이 좋지 못했다는 뉴스도 있다. 애초에 화재 사건도 부족한 운영재원에 원인이 있었다는 주장도 있으니 중요성에 비해 인기가 낮은 박물관과 미술관의 어려움이 전해져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식민지 시절과 왕정시기를 거쳐 공화국으로 거듭난 브라질의 상징적인 건축물이 충분한 재원과 복원 노력으로 완성도 있는 재축이 되기를 기대하고 다음 시대에서도 브라질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불멸하기를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 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 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