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26. 09:13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인 註
경제에 대한 이해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필수적 요건이다. 모든 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런 당연함을 언급하는 이유는 생각 외로 건축설계업에 참여하는 이들이 경제적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시장구조에 대한 이해부터 마케팅, 세금 등 전반에 대한 학습이 절실하다. 실제 현장에서 요청하는 점도 이 부분이 크다.
대부분 건축사 시험을 합격한 이들이 궁금해 하는 것이 이런 경영 과정의 전반이다. 건축사 시험을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이름으로 설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영의 ABC를 궁금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사를 등록하고, 사업자 등록증을 만들고, 사무실을 확보하는 일 등 모든 것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 생소하고 난감하다. 세금을 내야하고, 4대 보험을 가입하고, 각종 비용을 어떻게 지출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건축사로서 당혹스러운 순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런 실질적 프로세스보다 시장 전체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경영 관점의 시각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부하는 방법 외의 기회가 절실히 필요함은 향후 대한건축사협회의 숙제가 될 내용들이다.
이런 이해 아래 이번 건축담론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어떻게 가격이 결정되는지 생각해보는 이해의 시간을 만들어 보았다. 시장에서 가격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설계비부터, 인건비, 각종 지출 등의 균형에 의해 구성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균형으로 가격이 형성된다. 현재 우리나라 시장에서 인정되는 설계비는 이런 수요, 공급의 균형 결과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지불할 충분한 의사가 있는 가격에 의해 공급자의 인정으로 형성되는 가격이다. 다만 업역의 전문적 안정성과 특징으로 제도적인 최저 설계비 한계는 제안할 수 있지만, 이는 담합이나 기타의 불공정거래로 인정될 수 있어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부분이다.
이번 건축 담론은 이런 초보적 시장에 대한 이해부터, 실제 고군분투하면서 운영하는 작은 건축사사무소 경영자들의 경험담을 게재한다. 그리고 이런 건축환경에 대한 시선과 돌파구를 위해 기존과 다른 시각으로 건축 경영을 강조하는 학문적 흐름도 이야기했다. 분명한 것은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하려는, 이미 경영하고 있는 수많은 건축사들에게 실질적 경영 학습 과정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다.
04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축사의 이상과 현실
‘건축사’, 아직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이에게는 꿈만 같은 단어이다. 건축학도 시절부터 건축사사무소의 직원으로 근무를 할 때까지, 필자에게 건축사라는 단어는 인생의 목표였고 이상적인 미래를 위한 단어였다. 하지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지 5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지나 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건축사로서 꿈꿔왔던 이상적인 삶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던 현실적인 삶이 더 많았던 것 같다. 필자가 투쟁적인 삶을 살았다는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평가이지만,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변의 동료 건축사들이 사무소 경영의 애로 사항들을 빈번하게 토로하는 것을 보면 꼭 필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운영과 관련하여 많은 연구와 다양한 개선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건축사의 현실적인 어려움은 건축계에서 어느 정도 인식이 되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인 듯하다. 필자는 당면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현재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당면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프로젝트 수주와 건축사의 대가
사무소 개소를 앞두고 필자에게 도움을 얻고자 찾아오는 후배 건축사들에게 필자는 늘 작은 일거리라도 확보한 후에 개소하기를 권한다. 새로운 희망에 열정으로 똘똘 뭉친 후배에게 할 소리는 아니지만 선험자로서 후배들이 현실의 벽에서 덜 힘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다. 실제로 주변의 인맥과 배경이 있지 않은 한 프로젝트의 수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개소 후 처음 접할 수 있었던 프로젝트는 지인을 통해 연결된 작은 인테리어 프로젝트들이 대부분이었고 필자의 가족들이 거주할 주택을 설계함으로써 처음으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지금은 온라인이나 필자가 했었던 작업을 보고 의뢰해 오는 분들이 계시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3년 이상의 시간을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새로 오픈하는 건축사의 경우, 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하나의 포트폴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최소 1~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의 시간은 꽤 힘든 시간이다. 그렇다고 필자의 지금의 상황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업무범위와 대가기준’에 따른 설계비와 감리비가 우리가 쏟는 노력에 대비한 최소금액이라 생각하여 클라이언트들에게 그에 근거한 설계 견적서를 작성하여 주는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계약이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리뷰를 해보면 우리가 제시한 설계비가 비싸다는 이유가 부지기수이다. 모든 건축사들의 사정이 같은 것은 아니지만, 민간시장에서의 설계의 금전적 가치는 필자의 생각보다도 많이 낮은 것 같다.
건축시장의 공정성
필자는 세 건의 설계공모에 당선하여 용역을 수행한 경험이 있는데 한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의 결정되지 않은 사업 계획으로 인해 당선 후, 일방적으로 사업변경이 일어났고 그로 인한 설계변경에 대한 대가는 합당하게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면서 완수한 경험이 있다. 또한 다른 프로젝트의 경우, 발주처에서 계획 설계에 대한 용역을 배제하고 기본 및 실시설계라는 명목으로 80%의 대가로 용역비를 산정하여 설계공모를 발주하였고, 이를 모르고 당선한 필자가 계약 전, 설계비 변경 요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여 진행한 경우도 있다. 혹자는 필자가 그러한 부조리에는 강력 대응을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를 할 수도 있겠으나, 필자 또한 협회나 국토교통부,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방면으로 문의하고 노력하였지만 크게 도움의 손길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명 남짓한 작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필자의 입장에선 이러한 부조리에 강경하게 법적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직원들의 생계와 필자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요즘 설계공모에 신진 건축사들이 열정과 실력만을 가지고 도전하는 데, 실제로는 그것만으로는 당선하기는 쉽지 않다”라는 어느 선배 건축사의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한 대형 건축사사무소에 다니는 동기를 통해서 설계공모 심사위원을 사전에 접촉하는 행위가 ‘영업’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것을 듣기도 하였다. 필자 또한 여러 건의 설계공모에 도전해 오면서 불공정한 심사방식과 처사, 그리고 공공연하게 들려오는 뒤 이야기들을 직간접적으로 보고 들어왔기에 이러한 말들에 크게 분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불공정한 행위로 당선되는 이들로 인해 공정하게 참가하는 이들의 열정과 노력이 부족한 것이 되고, ‘로비’라는 단어가 ‘영업’이라는 단어로 미화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가슴 한 구석에서 화가 나는 부분은 바로 필자가 이러한 불공정성에 체념하게 되고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건축계 곳곳에서 공정성을 찾아가려는 움직임을 보게 되는 것은 희망적인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만연한 불공정 행위를 근절하고 잃어버린 설계공모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더욱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건축시장의 현실에서 정당한 도전과 노력으로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고 싶어 할까?
건축사의 워라밸
필자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동료 건축사들이 겪는 공통된 어려움 중에는 직원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점이 있다. 각 사무소의 특징과 대표자의 개인적인 성향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전반적인 건축 산업의 문제가 배경에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늘어나는 설계업무의 양에 비해서 낮은 설계비이다. 갈수록 건축사의 책임과 처리해야 할 업무는 늘어나고 있지만 설계비는 제자리다. 두 번째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지자체마다 상이한 행정 기준과 절차이다. 이러한 부분은 통일된 법 제도와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덧붙이기식 법규는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른 행정업무 또한 늘어나고 있다. 세 번째는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기피하는 현상이다. 임금에 비해서 업무의 강도가 강한 편인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사람들이 기피하는 반면에, 그나마 직원 복지가 좋은 대형 건축사사무소를 선호하는 추세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설계비를 지금보다 높게 받으면 해결되는 일이다. 1명이 할 수 있던 일이 1.5명이 필요한 일이 된 만큼 설계비를 1.5배 올려 받으면 될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 하면 냉정한 시장에서는 수주가 어려워진다. 워라밸이 중요한 삶의 가치가 된 요즘,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 동의하며 나름대로 실천 중이지만 벌어들이는 수익 대비 업무량을 생각하면 쉽지만은 않다. 결국 직원들은 퇴근시키고 혼자 일을 처리하며 야근을 하게 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정작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사의 워라밸은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살아남으려면..
앞서 필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경영에 있어서의 여러 문제들은 하나의 해결책으로 해소될 수 없는 복합적인 문제이다. 현실과는 동떨어진 건축교육과 건축사 자격시험, 건축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인 의식수준과 그에 따른 대가, 건축계에 몸담고 있는 많은 건축인들의 건전하고 공정한 경쟁의식,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여러 협회와 단체로 나누어진 건축계의 현실, 책임에만 치중되어 복잡하고 상호 충돌하는 법제들만 양산하는 행정 시스템의 부조리,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개선되어야 향상될 수 있는 건축사의 대가와 삶의 질 등이 그것이다.
최근의 자료(2016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11,276개의 개설된 건축사사무소 중 73%(8,320개)가 종사자 수 1~4명인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라 한다. 종사자가 5~9명인 사무소까지 합치면 10인 미만의 건축사사무소는 91%에 육박한다. 바야흐로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시대이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서 개선해 나가야 하는 복합적인 일이지만, 조금씩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정량적인 문제들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많은 동료 건축사들이 그들이 들이는 노력에 합당한 대가와 삶의 질로 보상받을 수 있는 날이 조금이나마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글. 정효빈 Jung, Hyobin HB 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정효빈 HB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정효빈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 현준건축사사무소, (주)SDPartners건축사사무소 등 국내의 여러 건축사사무소에서 다년간 실무를 쌓았다. 대한민국 건 축사(KIRA)이며, 2013년 HB건축을 개소하여 건축의 여러 속성간의 관계 맺음에 주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UIA International Competition Asia 1st Prize, 경기도 건축상 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경상북도 공공건축가, 서울시 마을건 축가, 서울시교육청 꿈담건축가, SH공사 청신호건축가로 활동 하고 있다.
'아티클 | Article > 칼럼 |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02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건축사사무소의 조직 2020.11 (0) | 2023.01.26 |
---|---|
03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의 빌드업, 그리고 워라밸 2020.11 (0) | 2023.01.26 |
[건축비평] 이성관의 건축이 지향하는 것 2020.11 (0) | 2023.01.26 |
조선시대 불교건축의 역사 2020.11 (0) | 2023.01.26 |
01 젊은 건축사의 ‘공공건축하기’ 2020.10 (0) | 2023.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