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2020.12

2023. 1. 27. 09:04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A little bit of skill and a lot of luck

 

맬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는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책이다. 어떤 분야든 하루에 3시간, 10년 동안 연습하면 대가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물론 재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재능을 갖춘 사람들의 경쟁에서는 재능보다 연습의 양이 성공을 보장한다. 이 이론은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이 연구한 결과인데, 맬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흔히 <아웃라이어>와 1만 시간의 법칙을 언급한다. <아웃라이어>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지만, 늘 이렇게 인용되는 걸 보면 이 책을 정말로 읽은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아웃라이어>에서 내가 느낀 건 재능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진정한 성공의 비결은 ‘운’이라는 점이다. 글래드웰이 이 책의 첫 장에서 드는 사례는 캐나다 하키 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아이스하키를 가장 사랑하는 국가이고 남자 아이들의 경우 운동을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하키를 배운다. 그런 캐나다의 프로 리그에서 하키 선수들은 1월, 2월, 3월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1, 2, 3월생들에게 하늘이 하키의 재능을 주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그들이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하키를 시작한다는 데 있다. 

유소년 팀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로 구성되고, 그 연령기준이 1월이다. 유년기의 1, 2, 3월생은 봄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보다 신체적으로 유리하다. 사춘기 이후에는 1월생이든 12월생이든 신체 차이가 사라지지만, 유년기에는 그 차이가 정말 확연하다. 그리하여 키가 크고 몸무게도 많이 나가는 연초생 아이들은 비슷한 재능을 지닌, 연말에 태어난 아이들을 압도한다. 연초생들은 지속적으로 승리의 성취감을 경험하고, 연말생들은 패배의 좌절감을 몸에 새긴다. 연초생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빨리 실력을 쌓는 반면, 연말생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좌절감만 쌓이고 자신감도 잃게 된다. 그리하여 비슷한 재능을 가진 캐나다 유소년 하키선수들의 경쟁에서 연초생은 이른바 ‘누적의 이익’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법칙에 적용되는 건, 재능과 노력이 아닌 운이다. 어쩌면 노력조차도 개인의 의지라기보다 운이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경기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고 더 많은 공을 세우는 아이들은 용기와 자신감으로 충만하여 하키에 더 많은 재미를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연습도 더 많이 하게 된다. 발동이 걸리면 멈추지 않고 가게 되는 법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재능과 노력이 3할이라면, 운이 7할이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는 첫 직장 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 운동이 일어 나고 있던 시카고에서 찾는다.


그렇다면 건축과 디자인 분야는 어떨까?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예로 들어보자. 라이트는 재능은 물론 불굴의 의지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경쟁심이 엄청나게 많고, 자긍심이 넘쳐 자신이 다른 이와 비교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는 스스로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아니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건축가라고 주장할 정도다. 건축적 재능뿐만 아니라 이런 타고난 경쟁심과 자신감은 그를 위대한 건축가로 만드는 데 분명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또 낭비벽이 심하고 허세로 가득 찬 남자로서 젊은 시절 자기 수입에 맞지 않게 늘 좋은 옷을 차려 입고 고가의 미술품을 사는 등 분수에 넘친 사치를 부렸다. 그 결과 늘 빚에 쪼들렸고, 그것을 갚고자 정신 없이 설계를 했다. 설계사무소 일이 끝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해야 자신의 엄청난 소유욕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열심히 일을 따내고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애들러 & 설리번 사무실에 근무하던 시절 디자인한 월터 게일 주 택은 퀸앤 양식으로 디자인되었다.

이렇게 보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재능과 노력으로 성취를 이룬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와 비슷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없을까? 없을 리가 없다. 20세기를 통틀어 라이트 정도의 재능을 가진 이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트가 독점적으로 가진, 또는 그에게 주어진 독특한 환경은 다른 이들 모두가 누리는 건 아니다. 라이트는 1867년 위스콘신 주에서 태어났다.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것이다. 그가 태어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는 시카고다. 그는 시카고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880년대다. 1880-90년대 시카고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건축 실험의 장이었다. 그곳에서 마천루 양식이 탄생했고, 근대 건축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런 시카고에서도 애들러 & 설리반 회사에서 초기 경력을 쌓았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인 루이스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의 유명한 명제를 말한 이다. 설리번은 시카고 학파 중에서도 최고의 건축사 중 한 명이었다. 라이트는 그로부터 모더니즘의 건축 언어를 배웠다. 특히 설리번은 규모가 큰 빌딩 설계에 매진하느라 주택 설계 일을 라이트에게 맡겼다. 

루이스 설리번이 디자인한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

라이트는 결국 미국 모던 건축의 개척자가 되었다. 특히 ‘프레리 하우스(Prairie house)’라는 미국식 주택 양식을 창조했다. 라이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의 성공에 대해 많은 걸 이야기해준다. 19세기 말 시카고라는 도시, 루이스 설리번이라는 스승과의 만남은 결정적이었다. 물론 19세기 말 시카고에서 일한 건축사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그 중에서 유독 라이트가 커다란 업적을 남긴 것을 보면, 그의 재능과 노력을 무시할 수 없다. 같은 시기 그와 비슷한 재능을 가진 이가 한국에서도 태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라이트가 태어난 시기와 장소는 분명 그에게 운으로 작용했다. 

태어난 시기와 지역은 재능을 가진 이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르네상스는 15세기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 주에서 만개했다. 르네상스의 위대한 천재들인 브루넬레스키, 보티첼리, 도나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이 토스카나 주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미켈란젤로도 토스카나 주 아주 가까운 곳에서 태어났다. 같은 시대에 역사에 이름을 남긴 천재들과 비슷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이탈리아 전역 많은 곳에 분포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르네상스 중심지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다시 말해 운이 따르지 않은 것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가장 미국적이며 근대적인 프레리 양식을 개발했다. 프레리 양식 의 대표적인 집인 로비 하우스.

운칠기삼은 환경과 운의 중요성이 더 크다는 것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재능과 노력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운칠기삼은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겸손을 가르친다. 내가 성공한 것의 7할은 운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자뻑’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또 실패한 이들에게는 위로를 준다. 내가 실패한 것은 오로지 나의 재능과 노력의 부족만은 아니다. 운이 나빴던 것이다. 1990년대 이후에 한국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은 그 전에 태어난 기성세대보다 훨씬 적은 기회를 갖게 되는 반면, 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간다. 그들은 운이 나쁘다. 출세하기가 몇 배는 더 어렵다. 그러니 더 많은 기회와 누적의 이익이라는 행운을 부여 받은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실패에 대해 지적할 권리가 없다. 운빨 좋았던 사람이 운빨 없는 이를 탓할 수 없는 것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