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변화시키는 가구와 실내 문화 2020.11

2023. 1. 26.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Furniture and interior culture that COVID-19 changes

 

코로나는 스마트폰 이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있다. 우선 공공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일이 극히 줄어들었다. 나는 강사로 세 학교에 출강을 하는데, 두 개 학교는 1년 동안 한 번도 가질 않았다.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거나 강의를 녹화해서 학교 서버에 업로드 한다. 얼마 전에 잡지 인터뷰 때문에 어느 대학엘 갔다. 그랬더니 교정은 한산하고 건물 안은 썰렁했다. 극장에도 안 가고 식당에도 덜 간다. 나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뭔가 일이 되려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 모이려면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교통수단 역시 일종의 장소이고 공간이다. 모이면 일도 하지만 밥 먹으러 식당에도 가고 커피숍에도 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흥시설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 역시 특정 공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그러고 보니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어떤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일이다. 그 공간이란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곳이고, 그런 공간은 아무래도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 공간을 기피하는 현상이 자연스럽다. 집에만 있을 수 없으니 밖으로 나오긴 나와야 하는데, 인구 밀도가 낮고 개방된 공간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 개방된 공간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켜야 한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식당들이 야외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야외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은 뒤 테이블마다 천으로 가려서 감염을 예방하고 손님들의 심리적 안정을 꾀하기도 한다. 작은 단위 미팅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들을 외부로부터 격리시키는 스크린 장치도 요즘 인기 있는 오피스 가구다. 테이블 하나와 의자 몇 개를 한 단위로 부스처럼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미국의 한 식당이 야외에 테이블을 마련하고 바이러스에 대비해 천막을 쳤다.


사람들이 내부 공간을 기피하지만 오히려 더 많이 머무르게 되는 내부 공간이 있다. 바로 집이다. 한국 사람들만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은 나라는 없을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집을 비우고, 야근을 많이 해서 집을 비우고, 또 회식이 잦아서 집을 비운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음식을 먹고 차나 술을 마시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 연예인들 흉을 보고 직장 상사나 적대시 하는 이들의 뒷담화를 하는 일을 그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즐겨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밤 문화만큼은 한국을 따라올 국가가 없다고 자부한다. 자연스레 집에 소홀해진다. 

 

가구회사 노톤에서 출시한 풀만 부스. 프라이버시를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디자인했는데, 바이러스 예방에도 좋다.


그에 반해 유럽이나 북미 국가들의 식당이나 술집이 얼마나 빨리 영업을 끝내는지, 또 이웃이나 친지들과의 파티를 식당보다 집에서 하는 걸 얼마나 즐기는지 흔히 들어보았고, 영화에서도 자주 본다. 집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자연스레 집안 물건에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또 외부 손님들을 자주 맞이하려면 더욱 가구나 식기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래 저래 실내 디자인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북유럽 국가의 가구나 조명, 패브릭 제품들이 뛰어난 것은 밤이 길어서 더욱 집에서 삶을 즐기는 문화가 발달한 것과 비례한 것이리라. 북유럽의 대표적인 디자인 강국인 덴마크의 경우 프리츠 한센(가구), 헤이(가구), 루이스 폴센(조명), 르 클린트(조명), 로얄 코펜하겐(테이블웨어) 등 세계적인 가구와 조명, 테이블웨어 브랜드가 많다.

 

스튜디오 베르코가 디자인한 시팅 부스, '커트(Kurt)'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은 한국인들은 자연스레 가구나 조명, 식기 등에 대한 관심보다 옷이나 가방, 시계, 구두, 자동차 같은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몸을 싣고 다니는 물건에 더 많은 투자를 한다. 반면에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제공하는 빌트인 된 우윳빛 아크릴 조명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세계적인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나라 치고 조명에 대해서만큼은 참으로 그 취향이 빈약하다. 집 안이나 공공 장소나 조명은 단지 어둠을 밝히는 것 이상의 기능이 있다. 조명은 심리에 엄청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윳빛 아크릴 조명이 한국의 실내 문화를 획일화하는 주범이다. 왜냐하면 이런 문화 때문에 조명 업체는 물론, 조명 디자이너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뜨고 있는 덴마크 가구 브랜드 헤이(Hay)의 의자 '리설트(Result)'


가구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가장 발달한 가구는 나의 판단으로는 오피스 가구다. 특히 오피스 의자는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다. 직원들이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의자만큼은 좋은 걸 제공하려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 일을 열심히 하게 하려면 사무가구도 좋아야 한다. 집에서도 공부하는 아이들을 위한 의자만큼은 부모들이 좋을 걸 사주려고 한다. 의자가 자식의 허리를 잘 보호해야 그들이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를 할 것이 아닌가. 마치 조명이 오로지 어둠을 밝히는 기능에 충실한 것에 만족하듯이 의자 역시 인체공학적인 기능을 가장 우선시한다. 멋을 부린 조명과 의자에 인색하다. 

덴마크 조명 브랜드 르클린트의 대 표적인 펜던트 조명인 '프룻(Fruit)'

21세기 들어 한국 대중들은 조금씩 실내 디자인의 재미와 가치를 알아가는 듯하다. 빈티지 가구 매장들이 많이 생기고, 마르셀 브로이어, 찰스와 레이 임스, 폴 헤닝센 같은 위대한 디자이너들의 마스터피스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미술관의 전시회, 잡지의 지면, 영화의 소품 등을 통해 조금씩 가구와 조명, 실내 디자인이 대중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홈퍼니싱 시장이 성장세에 있다. 이제 한국인들도 명품 패션과 자동차를 욕망하듯 디자이너의 의자와 조명을 찾게 될까? 내가 편집장 노릇을 하던 2003년, 월간 <디자인>은 비트라의 전시회 <100개의 의자>전을 후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전시 흥행이 꽤 잘 될 줄 기대했지만 3개월의 기간 동안 1만 명도 안 되는 관객 동원에 그친 것에 실망한 적이 있다. 한국은 여전히 가정의 실내 문화를 등한시한다고 느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이제 변화가 예상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역병이 그런 계기를 만들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나.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