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과 PC 2020.10

2023. 1. 25. 09:05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Apple & PC(Personal Computer)

 

5년 전 큰 마음 먹고 애플 아이맥을 구입해서 썼다. 아이폰을 쓰다 보니 데스크톱 컴퓨터로 아이맥을 쓰는 것도 괜찮겠다 싶고, 또 데스크톱 컴퓨터로는 애플을 따라갈 디자인이 없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렇게 한 4년 이상을 썼더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내가 주로 쓰는 프로그램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제품인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이다 보니 애플 OS와 자꾸 충돌이 일어난다. 파일이 잘 열리지 않고 빈번하게 다운이 된다. 이것이 사람을 열받게 만든다. 4년 이상이 되면서 속도도 엄청 느려졌다. 그래서 아예 피씨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애플 아이맥 컴퓨터. 아무리 봐도 이보다 더 완벽한 비례와 형태, 그리고 깔끔한 표면을 가진 제품은 앞으로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좀 이상한 게 있다. 윈도우 운영체제를 쓰는 컴퓨터도 피씨(PC: Personal Computer)지만, 애플도 피씨다. 둘 다 피씨인데, 왜 굳이 애플 컴퓨터는 애플이라고 하느냔 말이다. 내 생각에 그것은 애플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피씨는 과거 IBM을 비롯해 HP, 델, 삼성, 엘지, 삼보, 소니, 그리고 용산전자상가의 조립 피씨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브랜드와 군소업체들이 생산했다. 반면에 애플 운영체제의 컴퓨터는 오로지 애플(매킨토시, 아이맥, 아이북 등) 브랜드 한 곳에서만 독점적으로 생산한다. 윈도우 피씨들은 흔해 터지고 평범하지만, 애플은 희소성이 있으니 비범한 것이다. 그러니 애플 소유자들이 애플 쓰는 걸 자랑스러워하지 않던가. 언젠가 <내부자들>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조폭 두목의 책상에조차 애플 아이맥이 놓여 있었다. 

물론 과거에는 애플 컴퓨터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 때문에 그래픽 디자이너의 경우 필연적으로 애플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윈도우에서도 편집 프로그램들이 잘 돌아간다. 그러니 굳이 애플을 고집하는 것은 애플 브랜드가 가진 아우라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런 가치를 알고 아이맥을 샀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적응 실패로 다시 피씨로 돌아간 것이다. 

윈도우 운영체제의 데스크탑을 사와서 세팅을 하고 일을 시작했다. 이제 워드나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소프트웨어를 쓰는 데 에러가 나지 않아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운영체제가 다른 것에 따라 사용 방법에서 차이가 약간 나는데, 그게 자꾸 헷갈려서 실수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키보드 설정을 한글에서 영문으로 바꿀 때 피씨는 스페이스 바 옆에 있는 한/영 변환 키를 한 번만 누르면 된다. 근데 애플은 알트 키를 먼저 누른 상태에서 그 옆에 있는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된다. 4년 동안 이렇게 단축키처럼 두 번 누르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니 피씨를 쓰는 데도 자꾸 애플 단축키를 누르게 되는 거다. 그밖에 복사하기와 붙이기의 단축키, 글자를 지울 때 쓰는 딜리트 키 등의 사용법이 다르다. 그런데 이 명령어들은 대단히 자주 사용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꾸 실수를 하면 짜증이 나는 것이다. 

 

애플의 키보드. 간결함과 단순성을 위해 키를 최소화했다.
기계식 키보드. 완벽한 비례와 단순성을 추구하진 않지만, 디자인에서 뭔가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과거의 습관 때문에 새로운 피씨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애플 디자인의 우수성이다. 두 컴퓨터를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애플은 최대한 단순화하는 디자인 철학을 갖고 있다. 애플의 키보드 키는 피씨보다 적다. 피씨에서 글자를 지울 때는 backspace 키와 delete 키 두 개로 지울 글자의 방향(왼쪽과 오른쪽)을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에서는 delete 키만 있다. 따라서 지우는 방향을 바꾸려면 다른 키를 하나 더 이용해야 한다. 또 피씨에서는 한글/영문 변환 키, 한자 변환 키가 별도로 존재하지만, 애플에는 없으므로 결국 단축키를 설계할 수밖에 없고, 사용자는 그것을 외워야 한다. 물론 외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자꾸 쓰다 보면 손의 근육이 기억을 하기 때문이다. 근육에 저장되어 있으니 운영체제가 다른 컴퓨터로 바꿨을 때 자꾸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피씨는 명령 키들이 기능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결국 더 많은 키를 포용할 더 넓고 큰 보드를 필요로 한다. 반면에 애플은 기능마다 키를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단축 키를 활용해 최소한의 키를 유지하려 한다. 이로써 더 간결한 디자인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이 태어나기 전 PDA 제품에 딸린 스타일러스 펜에 대해서 불만을 가졌다. 손가락이 열 개나 있는데, 왜 굳이 펜을 하나 더 추가해 거추장스럽게 만드느냐는 것이다. 하나의 버튼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두 개로 하거나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다른 도구로 대체하는 것은 스티브 잡스에게 단순함와 조화로움을 깨뜨리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무질서를 증가시키는 무책임한 디자인이다. 
스티브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이 말은 1977년에 애플 Ⅱ 제품을 출시했을 때 홍보 문구로 사용한 말이다. 이 말은 단순함에 이르는 것은 엄청나게 극도로 무지막지하게 어렵다는 뜻이다. 최고의 장인이 완벽한 마감을 이끌어내고자 마지막까지 최선의 최선을 다하는 것, 보통 사람이 상상조차 하지 못할 재료와의 투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조직이 해내려면 리더가 직원들을 벼랑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스티브 잡스의 엄혹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엄하고 모질게 다그친 결과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단순성, 매끄럽기 그지 없는 표면을 가진 제품을 바라보고, 감탄하고, 그것을 소유한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이런 완벽에 가까운 단순함을 유지하려면 제품을 철저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이 자신의 운영체제를 배타적으로 생산하는 것도 이런 통제의 일환이다. 만약 다른 제조업체에게 애플 OS의 제품 출시를 허락한다면, 그들은 키보드의 키를 추가할지도 모른다. 이는 무질서의 증가로서 애플을 모욕하는 처사가 된다. 반면에 피씨는 개방적이다. 피씨용 키보드 중에는 화려한 기계식 키보드가 있다. 애플의 디자이너가 본다면, 무식하고 투박하다고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소프트웨어의 문제로 애플을 버리고 피씨로 돌아왔지만, 다시 말해 애플과 견주면 더 너절한 디자인으로 갈아탔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네모 반듯하고 작고 세련된 것을 얻고자 애플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들인 치열한 노력은 높이 살 만하다.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세련된 크기와 단순성이라는 것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실용성과 즐거움을 위해 좀 더 포용적인 태도를 갖는 피씨 계열의 다양성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