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구조가 낳은 한국 가구의 고유성 2021.1

2023. 1. 29. 09:06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uniqueness of Korean furniture created by the structure of hanok (Korean-style house)

 

전통 한옥 방의 천정 높이는 약 7.5척(225센티미터) 안팎이다. 이는 사람이 앉아 있을 때를 기준으로 사람 키를 더한 높이라고 한다. 사람의 앉은키는 키와 관계없이 비슷한 편인데, 대략 2.5척(75센티미터) 정도다. 여기에 평균 키 5척을 더한 것이다. 1척이 30센티미터 정도이므로 5척이면 150센티미터다. 옛날 사람은 키가 현대인보다 훨씬 작았다. 그런 키를 기준으로 공간의 넓이와 높이를 결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현대인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스케일감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서촌에 있는 상촌재의 사랑방. 한 칸의 크기가 작다.


아무튼 그 정도의 높이를 적당하다고 본 이유는 기의 균형을 맞춰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천정이 그것보다 낮으면 기가 눌린다고 보았다. 반면에 그것보다 높으면 기고만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옥에서 방의 높이는, 사람이 대부분의 시간을 바닥에 앉아서 생활한다는 것을 전제로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방에서 오랫동안 서 있으면 머리가 천정에 가까워져 기가 눌린다. 그런 사고로 천정의 높이를 정했으니 한옥의 방에서는 의자에 앉아서도 안 된다. 의자에 앉으면 방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때보다 키가 커져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가 눌린다. 이 말은, 전통 한옥의 구조는 좌식 생활에 맞게 디자인되었음을 말해준다. 

반면에 대청마루의 천정은 더 높다. 종이 천장으로 막지 않아 서까래와 들보 같은 지붕의 구조가 그대로 노출된다. 자연스럽게 천정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대청마루는 앉기도 하지만 주로 사람이 이동하는 공간이라고 보았다. 즉 서 있는 시간이 많다. 따라서 머리와 천정 사이가 가까워진다. 서 있을 때 키가 5척이므로 여기에 또다시 5척을 더하면 10척, 즉 3미터 정도의 높이가 된다. 이래야 서 있을 때 기의 균형이 맞게 된다. 

하지만 천정의 높이는 유동적이다. 방의 크기가 커지면 천정 높이도 높아지는 것이다. 궁궐이나 절의 방은 훨씬 크고 넓기 때문에 기둥도 높아지고 천정 또한 굉장히 높다. 여기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대개 기고만장해진다. 기가 세지는 것이다. 늘 그런 공간에서 살았던 임금이나 관리들은 기가 살아 있겠지만, 그런 곳을 어쩌다 방문하는 평민들은 기가 눌리고 쇠해져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이것이 큰 공간의 효과다. 마치 그곳에 놓인 거대한 예술작품이 방문자를 주눅 들게 하는 것처럼, 공허할 정도로 큰 권위적인 건물의 공간과 그 공기가 방문자의 기를 압박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도가의 집이라고 하더라도 대체로 일반 살림집은 방이 크지 않다. 한옥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지칭하는 ‘칸’을 모듈로 한다. 집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한 칸의 길이는 약 240센티미터 정도다. 여러 칸짜리 방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방은 작다. 앉아서 생활하는 것을 전제로 아늑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한옥의 전통이다. 방이 크면 외풍이 세지고 에너지도 많이 든다. 뿐만 아니라 방이 휑해져 공허해진다. 
이렇게 작은 공간에는 큰 가구가 어울리지 않는다. 조선시대 가구들이 크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주거공간의 크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이다. 다시 말해 공간과 조화로움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다. 방이 작기 때문에 일어나는 필연적인 결과가 있다. 서양이나 중국에는 있는 가구인데 한국에 없는 것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침대, 식사 테이블, 책상, 그리고 의자다. 

침대와 식사 테이블은 사용되지 않는 시간이 많다. 가구는 대체로 수직형과 수평형으로 나눌 수 있다. 수직형은 옷장, 책장, 장식장 같은 것들이다. 이 가구들은 그 안에 뭔가를 담고 있고, 그 상태가 항구적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한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면에 수평형 가구인 침대와 식사 테이블, 책상, 의자는 그곳에 놓인 사람과 사물이 항구적으로 있지 않고 잠시 있다가 사라진다. 다시 말해 그것의 쓰임은 일시적이다. 

 

일제강점기의 소반, 높이 30cm ©국립중앙박물관


방의 크기가 작은 한옥에서 일시적으로 쓰이는 가구가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낭비다. 게다가 한옥에서 방은 다양한 쓰임새를 갖는다. 밤에는 잠을 자는 곳이고, 낮에는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곳이고, 끼니 때마다 밥을 먹는 곳이다. 그러니까 한옥의 방은 침대이고, 식사 테이블이며, 책상인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설치하기엔 방이 작다. 따라서 해당 가구를 모두 유동적인 것으로 만든다. 요와 이불은 사용이 끝나면 장으로 들어가거나 낮은 반닫이 위로 올라간다. 상은 식사가 끝나면 부엌으로 다시 보낸다. 음식을 차린 상은 이동해야 하므로 크기가 커서는 안 된다. 자연스럽게 앙증맞은 소반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식사 테이블이 없으므로 의자도 필요 없다. 의자는 방석이 대신한다. 방석 역시 치울 수 있는 일종의 이동형 가구(?)다.          

 

서안, 일제강점기, 높이 29cm. 천판 밑에 서랍이 없고 책을 놓을 수 있는 층널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안, 즉 사랑방의 책상은 이동하는 가구는 아니지만, 그 크기가 아주 작다. 책 한 권 올려놓고 펼칠 수 있는 정도의 크기다. 바닥에 주저앉은 키에 맞춰야 하므로 높이가 낮다. 책상은 멀리 이동하지는 않지만, 이 역시 움직임을 고려해, 또 방의 크기를 고려해 최소한으로 디자인된다. 서안 디자인의 특징은 천판(상판)과 그 밑을 받치는 몸체 크기의 차이다. 몸체는 작은 방에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소화하고, 책을 올려놓는 천판은 그것보다 옆으로 더 늘린다. 그 모습은 검소하면서도 날렵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서안, 조선시대, 높이 28cm. 천판 밑에 서랍이 달렸다. ©국립민속박물관


사랑채는 수직형 가구인 사방탁자와 책장, 그리고 중심에 서안이 놓인 아주 아늑한 공간이 된다. 이런 공간은 결코 거만을 떠는 법이 없어서 방문자의 기를 누르거나 주눅 들게 하는 법이 없다. 한옥은 한국의 지형과 기후가 낳은, 자연과 조화로운 집이다. 그곳의 가구는 그 태도가 겸손하기 그지없다. 작은 소반과 서안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왜 아름답다고 느낄까? 그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가장 적절한 크기와 균형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현대인의 스케일감은 너무 커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