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건축 02돌(石) 2021.2

2023. 1. 31. 09:09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Architecture 02 Stone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슬레이트
‘슬레이트’라는 말을 듣고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낡고 여기저기 깨진 흔적이 있고,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집이 떠오를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슬레이트’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슬레이트 지붕‘은 1972년 농촌 새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개량하라’는 지침이 만들어지면서 보급되기 시작했다. 6년 만에 목표였던 250만 동을 넘어 270만 동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은 이미지였지만, 곧 상황이 반전된다. 슬레이트에 첨가된 석면이 심각한 발암물질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1980년대부터 건축자재에 석면 사용을 금지했고, 1990년대에는 국가가 주도하여 석면이 들어있는 부분을 모두 철거했다. 국내에서도 2009년 석면에 대한 수입과 제조가 법으로 전면 금지되었고, 2011년부터는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는 지원 사업이 시작됐다. 이렇게 ‘슬레이트’는 매우 부정적인 재료가 되었고, ‘슬레이트 지붕’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정작 ‘슬레이트’라는 단어는 ‘슬레이트 지붕’이나 ‘석면’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검색창에  ‘슬레이트 지붕’과 ‘slate roof’를 각각 검색하고 이미지들을 비교해보자. ‘슬레이트 지붕’으로 검색된 이미지는 우리가 처음 떠 올렸던 것과 비슷한 낡은 지붕들이다. 반면, ‘slate roof’로 검색된 이미지는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모습의 지붕 이미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 '슬레이트 지붕'은 ‘slate roof'가 아니다. 누명도 이런 누명이 없다.

지붕개량 전(1973년) ⓒ 새마을운동중앙회

 


Corrugated Asbestos-Cement Sheet 석면 시멘트 골판
우리가 알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이 ‘slate roof'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답을 찾고 싶다면, 이 재료의 성분과 제작 과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슬레이트 지붕은 포틀랜드 시멘트에 석면(asbestos)을 10~20% 정도 혼합하고, 골 형태의 형틀에 고온 고압으로 찍어낸다. 인장력을 석면으로 보강한 시멘트 판이다. 저렴하고 강도도 적당하며, 불연재인 시멘트 골판은 뛰어난 성능과 경제성으로 196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함유된 석면이 발암물질인 것이 확인되면서 생산과 사용이 중단된 것이다. 이후 식물성 섬유인 셀룰로스(cellulose)를 보강재로 사용한 CRC(cellulose reinforced cement) 제품이 등장한다. 국내에서도 패널이나 보드 형태로 제작된 CRC 제품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성분과 특성을 이해하면 우리가 '슬레이트 지붕'이라고 알고 있는 재료는, '석면 보강 시멘트 골판' 정도의 이름이 적합하다고 공감될 것이다. 이 재료에 '슬레이트'라고 이름을 붙인 우리의 용어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지붕개량 후(1973년) ⓒ 새마을운동중앙회
'슬레이트 지붕' 검색 결과 ⓒ google
Slate roof‘ 검색 결과 © google
옛 슬레이트 지붕
못으로 고정하는 슬레이트 지붕
클립으로 고정하는 슬레이트 지붕

slate roof : 점판암(粘板岩) 지붕
슬레이트(slate)는 점판암(粘板岩)의 영문명이다. 점판암(粘板岩)은 점토(粘土)가 굳은 암석인데 넓적한 판(板) 형태로 쉽게 떨어져서 예부터 지붕재료로 사용했다. 그래서 영문으로 slate roof를 검색하면 다양한 돌지붕 이미지가 검색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60~70년대 단독주택 지붕에 이 슬레이트(점판암)가 종종 사용되었다. 경사진 콘크리트 지붕 슬라브 위에 방수층과 모르타르로 보호층을 만들고, 가공된 슬레이트(점판암)를 못으로 고정했다. 이런 습식 구법의 슬레이트(점판암) 지붕은 거의 사라졌는데, 최근에는 클립으로 고정하는 건식 구법이 도입되면서 슬레이트(점판암) 지붕이 다시 사용되고 있다. 1972년 새마을 가꾸기로 농촌의 초가지붕을 석면 시멘트 골판으로 교체하면서, 슬레이트(점판암) 지붕의 이미지로 포장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본다. 멀리서 눈을 지그시 감으면 색깔은 얼핏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돌너와 - 신광사 대웅전 ⓒ 전라도닷컴
돌너와 - 영모정 ⓒ 이종근의 한국문화 스토리_Daum 블로그
돌너와 - 어은공소 ⓒ 가톨릭인터넷 굿뉴스(catholic.or.kr)

 

돌 너와 : 지붕을 일 때 사용하는 널 모양의 돌조각이나 나무 조각
국내에서도 점판암(slate)이 생산된다. 지붕재료로 사용되는 돌조각이나 나뭇조각을 전통건축에서는 너와라고 하는데, 돌 너와가 바로 슬레이트(점판암) 지붕이다.

신광사 대웅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영모정(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5호)
전주교구 진안 본당 어은동 공소(등록문화재 제28호)

돌 너와를 사용한 문화재 3개를 지도에 표시해보니 행정구역은 서로 다르지만, 세 건축물 모두 전라북도 성수산(1059m) 기슭에 있었다. 무게가 무거운 돌 너와는 먼 거리를 운반하기 어려웠을 테니, 널리 사용하지 못하고 채석이 가능한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서양과 동양은 물론 우리나라의 옛 건축에서도 전통적으로 오랜 기간 사용되었던 슬레이트(점판암) 지붕이 지금처럼 부정적 이미지의 건축재료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갈기 작업자(20세기 초) ⓒ John Di Filippo(media-exp1.licdn.com)


도끼다시
적절히 평가받지 못하고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는 억울한 재료가 하나 더 있다. 80~90년대 지어진 학교의 복도에 널리 사용된 ‘도끼다시’다. 이 ‘도끼다시’는 무슨 뜻일까? 도끼다시는 ‘갈아서 광이나 윤을 내다’라는 뜻의 일본어 '토기 다시(とぎだし [研ぎ出し])'의 우리식 발음이다. 재료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물갈기 또는 광내기 (polishing) 가공방법을 지칭하는 용어다. 적당한 크기의 골재를 모르타르에 섞어 바닥이나 벽에 바르고 굳으면, 골재가 드러날 정도로 표면을 갈아내는 과정으로 시공하니 '토기 다시'라고 불렸고, 이 용어가 '도끼다시'로 고착되었다. 도끼다시는 ‘화강석 물갈기’처럼 물갈기한 대상을 붙여 ‘OOO 물갈기’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본식 용어여서 부적절하다는 것이 아니고, 가공방법을 지칭하기 때문에 재료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옛 도면에서도 이것을 '테라조 물갈기'라고 표기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도끼다시’는 ‘테라조 물갈기’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테라조의 구성


테라조(TERRAZZO)
그렇다면 ‘테라조 물갈기’의 ‘테라조’는 무엇인가? 테라조(TERRAZZO)는 다양한 색깔의 종석을 모르타르와 섞어 바른 후 표면을 연마하여 가공한 인조석을 지칭하는 용어다. 대리석을 생선전에 비유한다면, 테라조는 어묵과 비슷하다. 어묵에 야채나 문어를 넣어 풍미를 더하는 것처럼, 테라조는 종석(chips)으로 대리석이나 색깔 있는 돌조각 또는 유리 같은 반짝이는 재료를 섞기도 한다.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있었던 모자이크 장식이 변형되어 18세기 베니스에서 완성된 이 복합 재료는 종석(chips)으로 형형색색 알갱이를 사용해서 아름답기도 하고, 표면을 가공하는 숙련공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고가의 건축재료였다. 베니스 최고 권력자의 공간이었던 두칼레 궁을 방문한다면, 발아래로 시선을 돌려보자. 궁전 곳곳의 바닥이 테라조로 꾸며진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에 전기로 작동하는 물갈기 기계가 도입되면서 단가가 낮아졌고, 저렴한 화강석을 종석으로 사용하여 더욱 저렴해져 국내의 학교 복도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리석 종석을 사용한 것과 학교 복도를 비교하면 화려함이 덜 한 것이 사실이지만, 가장 못난 테라조만 보고, 테라조라는 재료가 싸구려라고 폄하하면서 스스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베니스 두칼레궁의 테라조 바닥 서울 중림동 태림빌딩 바닥(1970년)
서울 중림동 태림빌딩 바닥(1970년)
최근의 테라조 사용


아름다운 테라조의 부활
두칼레 궁의 테라조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아름다운 테라조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에 지어진 건축물의 바닥에 테라조가 많이 적용되었는데, 모르타르의 색에 변화를 주며 다양한 패턴으로 꾸미거나 색깔 있는 돌, 유리, 금속을 종석(chips)으로 넣어 장식하기도 했다. 공장에서 일정한 크기로 제작한 테라조 판을 외벽과 바닥에 붙여 장식하기도 했다. 황동 줄눈을 현장에서 가공해 층수를 표시하며 솜씨를 뽐낸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과감한 색의 종석을 사용한 이색적인 테라조도 판매되고 있으며, 설계자의 의도에 따라 종석을 지정하고 주문 생산도 할 수 있어서 다시금 관심을 받고 있다. 아름다운 테라조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슬레이트 지붕과 도끼다시(테라조)처럼 잘못 사용되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 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 (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 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