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 09:06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Untact society, raises a fundamental question about existence
시작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세계를 뒤흔든 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다. 초고속 백신 개발로 1년 만에 세계 각국에서 백신 예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어서 남아공 변이 바이러스나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가 다시 유행 시작이다. 치료제가 개발되었다는 반가운 뉴스도 일부 연령대에서는 무용지물이란다. 혼란과 혼돈의 연속이다.
그야말로 세기말적 아노미(anomie)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21세기 들어선 지 20년 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혼란이 오다니……. 전염병으로 인한 혼란은 세계 각국의 기존 질서와 문화, 사회 체제에 조금씩 균열을 가하고 있다. 단순한 균열이 아닌 근본적인 변화의 사전 경고음처럼 빽빽거리고 있다.
단순한 전염병의 확산 이상이다. 고령층의 치사율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더 크게 판이 바뀌고 있다. 가속으로 달려가며 스스로 조금씩 대안을 찾아가던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려는 것이다. 경제적 성장과 이로 인한 반작용, 산업 발달과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 조금씩 대안을 만들어 가던 중이었다. 예를 들면 ‘공유’ 같은 개념으로 등장한 대안이었다. 그렇게 상호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던 공유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자유로운 이동으로 비롯된, 말 그대로 우주적 유목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염병은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하고 고립을 유도하고 있다. 물론 완전한 고립은 아니다. 21세기 IT 발달로 어느 정도 고립된 생활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와중에 초고속 성장하는 기업도 있고, 주체 못 할 이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다만 모두에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동의 제한은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인 경제적 실패 또는 손해를 안겨주었다. 대면을 통해 이뤄지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거래나 관계는 파괴되었다.
사회적 모순은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난다. 분명히 물리적으로 단절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발달한 IT로 인해서 더 먼 곳의 사람들과 화상회의를 하거나 화상으로 만남을 갖는다. 전에는 사람들이 광장같이 열린 공간에 모여서 의견을 나눴다면, 이제는 온라인 화면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분명 신체적 이동 거리나 활동 공간이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지적 이동 거리나 활동 공간은 인터넷을 타고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비대면은 매우 공포스러운 상황이기도 하다. 영화 <더 네트(The Net, 1995)>는 이런 비대면으로 인한 고립을 헐리우드 영화다운 상업적 공포로 꾸몄다. 영화를 보던 당시만 해도,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생활은 정신적으로 광장 공포증이나 대인기피증이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해는 하지만 몰입되지 않았다.
샌드라 블록이 분한 주인공 안젤라 베넷은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다. 한 소프트웨어 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나, 오로지 재택근무에 의존하고 있다. 업무적 특성상 굳이 사람들과 대면할 이유도 없는지라, 불안정한 대인관계는 그녀의 이런 고립 생활을 유지하게 했다. 대부분의 생활은 전화와 온라인으로 이뤄지고, 외출 혹은 타인과의 접촉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집 밖을 나가는 것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를 방문하는 일이 전부다. 그러던 중, 그녀는 회사 동료로 인해 의도치 않는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누군가의 의도로 의식불명의 사고에 빠지게 되고, 깨어난 다음은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이게 된다.
온라인과 전화가 대인 관계의 전부였던 그녀. 실제 그녀와 접촉한 이들도, 그녀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도 거의 없다. 더구나 그녀에 대한 모든 기록과 온라인 데이터들은 삭제되었거나 왜곡되었다. 모든 기록이 전산화되고 비대면으로 활동한 덕분에 왜곡된 정보는 그녀의 존재를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재창조해버렸다. 집도, 회사도 그녀의 기억과 달라 머물 곳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완전히 리셋(Reset)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그녀의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상업 영화인 덕분에 이런 설정은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가능한 일일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다.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실이 25년이 지난 지금 피부로 와닿고 있다. 아이들이 학교를 가지 않고, 선생님들과 화면으로 이야기하며 수업을 받고 있다. 비대면으로 어떻게 수업을 할지 궁금했던 체육시간이나 미술시간도 화면으로 상호 반응하도록 하여 수업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익숙해지고 있고, 심지어 종교 활동까지 비대면으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회 예배가 온라인 영상으로 실시간 중계되면서 온라인 예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일 년째다.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견을 보이지만, 이는 19세기 주요 운송수단이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던 시대의 반응과 같다.
어쩌면 교회의 온라인 예배는 종교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의식을 좌우했던 거대한 공간에서 집단 속 일원이 되는 군중심리를, 온라인 예배를 통해 극복하게 된다. 비대면 예배에는 온전히 나에 대한 사색과 기도, 몰입만 있을 뿐이다. 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천주교나 불교, 심지어 이슬람교도 동일하다 본다.
그렇다면 온라인(비대면)을 통한 감정이입은 불가능할까? 이 역시 가능하다. 어쩌면 인간이 단계별로 기계와 인간적 친밀감을 높일지도 모른다. 영화 <그녀(her, 2013)>에서는 이러한 감정적 몰입을 보여준다. 더 네트에서의 주인공이 컴퓨터 시스템 엔지니어였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대필 편지를 써주는 웹 기반 회사의 편지 대필 작가다. 흥미로운 점은 웹을 기반으로 하는 IT 기술을 통해 편지라는 아날로그 상품을 취급하는 회사라는 상반된 이미지의 기업 설정이다. 아무튼, 내성적인 성격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혼자 놀기를 좋아하나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타인과의 관계는 서툴지만 그 역시 사람들과 사회적 관계, 더 나아가서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는 관계를 원하고 있다. 비혼? 싱글이 점차 늘어나는 시대를 설명하는, 그에 딱 어울리는 캐릭터지만 그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제 만남을 힘들어하는지라 AI인 그녀와 교감하면서 점차 연애 감정을 키우게 된다.
이미 우리는 PC 통신을 다룬 <접속(1997)>이라는 영화를 통해 직접 만나지 않아도 감정적 사랑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이 상대방과 문자로 대화를 나누다 점차 감정 이입하게 되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목소리까지 들려주는 AI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뭐가 다를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있지만, 온라인 대화에서 시작해 결혼까지 도달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생활이 온라인을 통해 가능해진 2021년. 그렇다면 우리들의 공간은 어떻게 변화하고 구성될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비대면 업무의 증가와 이동 제한으로 집에 머물며 일과 생활을 병행하게 된다. 집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영상을 보며 운동하니, 홈 트레이닝이 가능한 운동실이 필요하다. 집에서 일을 하니 사무 공간도 필요하다. 배송으로 모든 물품을 주고받으니 현관의 기능이 복잡해진다. 수시로 손 씻기를 강조하니 위생 공간이 절대적이다. 하나씩 늘어나는 필요성에 따라 구성하다 보면 집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큰 집을 어떻게 마련하고, 입주할 수 있을까? 굳이 출근하지 않는데도 비싼 값을 주고 도시 중심에 집을 마련해야 할까? 이러한 고민과 생각들은 수많은 곳에서 발표, 언급되고 있다.
과연 내년, 내후년에는 어떻게 될까? 개발된 백신의 접종이 일상화되면 이전처럼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많은 학자들이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을 예견하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또다시 새로운 변종이 생길 거라고 단언하고 있다. 결국 이전의 생활, 이전의 사회와 전혀 다른 양상에 우리가 적응할 수밖에 없다.
과연 미래의 우리 생활 모습은 어떨까? 아마도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의 일상화보다는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stancing)’가 보편화되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근본적으로 타인과의 교류를 억제하긴 어렵다. 다만 온라인으로 대체될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말하는 ‘거리 두기’는 스킨십이나 직접 접촉이 아닌 비물리적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을 뿐이지 온라인상으로는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사회다. 이미 수많은 회의와 모임을 다자간 화상 모임으로 일상화 하고 있다. Zoom, Google Duo 등 화상 모임이 가능한 다양한 앱들은 점점 더 섬세하게 발달하고 있다. 공간을 다루는 건축사의 입장에서 봤을 땐 배경 화면을 바꾸는 기능이 가장 흥미롭다. 낮밤은 물론, 도시를 바꾸고 공간을 바꾸는 효과를 연출한다. 실제 화상 회의로 업무를 보는 직장인들의 경우 배경 화면을 의도적으로 연출해서 본인의 실제 공간을 숨기기도 한다. 배경을 동남아의 멋진 휴양지로 바꿀 수도 있고, 화려한 거실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다. 실제 머무는 공간의 중요성이 퇴색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가상 공간의 현실화인 셈이다.
이쯤에서 영화 <인셉션(Inception, 2010)>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인셉션>에서는 무의식, 즉 꿈을 언급하는데 이 꿈과 온라인의 차이가 뭘까? 이런 허상을 언급하다 보면 <12 몽키즈(1995)>와 <매트릭스(The Matrix, 1999)>도 함께 언급할 수밖에 없다. 비록 장르는 판타지지만, 이런 영화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 것은 앞서 언급했던 <더 네트>에서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결코 과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이 뇌의 뉴런(신경세포) 간 전자 접촉에 의한 퍼즐이라고 보면, 결국 <매트릭스>의 허상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의 공간은 매우 중요한 역할로, ‘현재의 나’를 인식시켜주는 중요한 장치이다. ‘현재의 나’가 어디에 있는지는, 배경이 되는 공간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 공간은 인식하는 주체인 ‘나’가 만지고, 보고,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경험을 통해 기억 저편에 존재하던 공간이 만지고, 보고, 듣는 행위에 따라 기억 저편에서 나와 눈앞에 실재하는 것 같은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다. 촉감은 뇌를 통해 실제 무언가를 만지는 것처럼 얼마든지 속일 수 있다. 이렇게 속이기 위해 <매트릭스>에서의 환경은 의도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비대면 사회에서의 고립된 개인, 또는 고립된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있는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새삼 ‘존재’에 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지고 냄새 맡는 대상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광장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주 작은 나의 방에 있는 것일까?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여겼던 실재하는 공간들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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