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건축 03목재(木材) 2021.3

2023. 2. 1. 09:08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Architecture 03
Wood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랜 기간 사용되었던 건축재료를 꼽자면, 단연 목재일 것이다. 지금도 목재는 건축재료에서 빠질 수 없는 소재이다. 현대에 와서는 물류의 발달로 동남아시아와 남아메리카의 활엽수종을 가공한 목재에서부터 캐나다, 북유럽, 그리고 러시아 지역의 침엽수종을 가공한 목재까지 다양한 모습과 방법으로 목재를 건축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다양한 수입 목재나 새로운 방식의 목재를 살펴보기 전에, 우리 땅의 우리 목재를 먼저 살펴보자. 우리나라는 어떤 목재를 최고의 건축재료로 사용했을까? 주요 문화재 복원이나 보수를 시작할 때면 대목수가 재목으로 사용할 소나무를 찾고 벌목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니, 소나무는 한국 건축에서 최고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소나무는 최고의 건축 재료일까?

현대건축에서 사용되는 목재를 대상으로 생각해 보면, 소나무류의 침엽수는 형틀을 만들거나 장식벽의 뼈대를 만드는 각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버려지는 소모 재료로 쓰이거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경량 목구조에서 구조재로 사용하는 S.P.F.는 가문비나무(Spruce), 소나무(Pine), 전나무(Fir)를 수종 구분 없이 가공한 것이다. 수종 구분 없이 섞여서 S.P.F.라고 하는 것을 보면,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강도나 내구성이 특별히 높은 것도 아니고, 습기에 강하지도 않다. 색이나 무늬가 아름다워 장식용으로 선호되는 것도 아니다. 단단하기와 내구성은 활엽수가 뛰어나고, 향이 좋은 것은 편백나무나 적삼목이 인기 있다. 소나무의 장점이 있다면 다른 종류에 비해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다. 빠른 성장 속도 때문일까? 소나무는 경량 목구조 구조재 또는 합판으로 가공되어 널리 사용된다. 현대건축에서 소나무는 내구성이 약한 저가의 재료이다.

Spruce 가문비나무 ⓒ wikimedia.org
S.P.F. 경량 목재
소나무 숲
합판
목재 등급 표시 스탬프


현대건축이 아닌 우리나라 전통 건축에서 소나무의 가치는 어떨까? 전통건축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건축물은 부석사 무량수전이다. 그토록 기대고 싶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은 소나무가 아닌 느티나무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대웅전도 느티나무다. ‘우리나라 건축물에 사용된 목재 수종의 변천(2007)’ 논문을 살펴보면, 고려시대까지 우리 건축은 참나무와 느티나무 같은 활엽수를 주된 재료로 사용했다. 고려 후기부터 소나무 사용이 증가하기 시작했고, 조선 후기에 들어 80% 이상의 건축물이 소나무를 사용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조선 후기를 전통건축의 핵심으로 보는 입장이 아니라면, 소나무가 전통건축을 대표하는 최고의 재료라고 할 수는 없겠다. 시행착오를 거쳐 최고의 재료로서 소나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온돌의 보편화로 조선 후기에는 건축재료로 사용할 만한 재목이 남아나지 않았고, 생육 속도가 빠른 소나무가 그나마 쓸 수 있는 목재였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세한도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고, 이를 기념하는 특별전이 한창이다. 세한도의 소나무 이미지처럼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소나무를 관념적인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이 영향으로 애국가 2절 가사에 소나무가 등장할 정도로 소나무는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본다. 건축재료로서 소나무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과는 분리된 개념일 것이다. 소나무도 소나무의 특성에 맞게 적절한 부분에 적절하게 사용된다면, 건축재료로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존중받거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재료가 아닌 재료를 다룬 사람이 아닐까? 건축재료로서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소나무를 가지고, 그것도 충분한 길이와 굵기를 갖추지 못한 소나무를 가지고도 그렇게 높은 완성도의 건축물을 만들어낸 솜씨 좋은 조선 후기의 목수들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기둥(느티나무)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느티나무

나무를 건축재료로 사용한 것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목재에 대한 우리의 낮은 이해는 그로 인한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으로 드러난다. 마루는 한국 건축의 정체성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공간이자 장소다. 온돌과 마루를 결합하여 실내에서 신을 벗고 생활하는 공간 구성은 분명 우리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우리나라는 전통건축뿐만이 아니라 현대건축에서도 마루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마루에 관련된 용어가 합리적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오류 투성이다.

세한도의 소나무 ⓒ 김정희(1844년) gongu.copyright.or.kr

마루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건축재료의 종류를 살펴보면, 강화마루, 강마루, 온돌마루, 합판마루, 원목마루 정도가 있다. 유리를 표면 처리하여 강도를 높이면, 강화유리라고 한다. 강화마루는 마루의 표면 강도를 높여 긁힘과 오염에 강하다. 그런데 강화마루와 강마루의 표면 처리는 같은 방식이다. 강화마루와 강마루는 마루를 설치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이름으로는 차이를 구분할 수 없다. 단순 암기를 해야 구분할 수 있다. 전문가일 필요가 없다. 전통건축에서 마루는 온돌이 없는 곳에 설치된다. 우리나라의 현대건축에서는 바닥난방 위에 마루를 설치하니 모두 온돌마루라고 할 수 있겠다. 합판마루는 합판을 주된 재료로 하고 표면에 무늬와 색이 좋은 나무를 붙인 것을 의미한다. 온돌마루, 합판마루, 원목마루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제작된다. 두께와 크기가 다른 정도다. 원목마루는 가장 이해되지 않는 명칭이다. 원목이라 하면, 나무를 벌목하고 제재한 것을 의미한다. 합판, 집성재, OSB, MDF처럼 나무를 재료로 2차 가공한 산업 제품과 구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건축의 대청마루는 원목마루라고 하면 적절하겠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사용하는 원목마루는 합판마루와 같은 방식으로 합판을 바탕으로 표면에 색깔과 무늬가 좋은 나무를 얇게 가공하여 붙인 것이다. 통상적으로 원목마루라고 칭하는 마루 제품은 합판마루와 비교하여 표면재의 두께가 1∼2mm 정도 두껍다. 표면재가 두꺼우면 비틀림이 더 크게 생기기 때문에 바탕이 되는 합판의 두께도 함께 두꺼워진다. 높은 제작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가격이 높다. 원목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재료의 특성과는 무관하고, ‘원목’이라는 단어가 갖는 고급 이미지만 가져다 붙인 잘못된 용어다. 누군가는 좋은 재료에 좋은 이름을 붙이고 싶었을 것이고, 누군가는 쉽게 사용했을 것이다. 적절하지 못한 용어의 사용이 범죄라면, 우리 모두 공범이다.

전통적 원목마루
현대적 복합마루
복합마루의 종류와 구성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는 건축물 외부공간에서는 조경의 요소로서, 건축물 내부공간에서는 마감재료로 선호되는 나무다. 아름다운 자작나무 숲의 이미지는 북유럽의 감성으로 건축과 조경에서 많이 소비되었다. 준공 사진에서 자작나무가 빠지면 완성이 덜 된 것 같았고, 인테리어에서는 자작나무 합판 마감이 빠지면 감성이 없거나 실력 없는 디자이너로 평가하기도 한다. 여기에 북유럽산 자작나무 합판은 고급이고, 러시아산 자작나무 합판은 싸구려로 치부하는 인식도 더해진다. 이런 선입견은 적절할까?

천마도(자작나무 껍질 위 채색) ⓒ 국립경주박물관


자작나무 합판의 등급은 무늬에 따라 달라진다. 옹이 무늬가 없고 깨끗하면 가격이 높고, 옹이가 많이 있을수록 저렴해진다. 그 정도를 B - S - BB - CP로 구분한다. 합판은 면이 두면이기 때문에 양쪽의 옹이 무늬 정도를 병행 표시하는데 B/BB 또는 S/BB 와 같이 표기된다. 뒷면으로 사용하여 보이지 않게 되는 쪽은 옹이가 많이 보이는 BB 면으로 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 대해서 옹이가 없는 B로 할 것인지 옹이가 약간만 있는 S 정도로 할 것인지를 고르면 된다. 북유럽산 자작나무 합판이라고 옹이가 없는 B이고 러시아산 자작나무 합판이라고 옹가 많은 S나 BB인 것은 아니다. 같은 등급이면, 나무의 산지나 생산기업의 노하우에 따라 품질과 가격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북유럽 자작나무는 좋고, 러시아 자작나무는 나쁘다는 감성적 논리는 전문가가 지양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장편소설 ‘닥터지바고’의 배경으로 나오는 설원의 자작나무 숲은 러시아의 자작나무 숲이다. 

우리나라의 자작나무는 북유럽과 러시아의 자작나무와는 모양과 쓰임새가 조금 달랐다. 태울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고 하여 자작나무라고 불린 이 나무의 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많이 사용되었다. 오래 지나도 잘 썩지 않아 관이나 생활용품을 제작하는데 널리 쓰였다. 또한 얇게 벗겨지는 껍질은 종이 대신 사용하였는데,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렸다. 천마총의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린 그림이다. 건축재료로서 목재의 품질을 생각 국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의 등급으로 판단하는 것 태도도 필요하고,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우리의 자작나무 특성과 활용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도 필요하겠다.

자작나무와 소나무처럼 왜곡된 이미지로 알려지거나 마루 종류처럼 잘못된 용어가 널리 퍼진 경우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