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건축 워치 02Ⅱ 북한의 건축설계 2021.4

2023. 2. 2. 09:09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2
Ⅱ Architectural Design in North Korea

 

북한의 건축설계(2)

3. 설계연구소의 조직   
국내의 건축사사무소 대부분은 건축설계 외에 구조, 토목, 전기, 기계, 조경 및 내역서 작성은 외주를 주어 설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측량 및 지질조사 등을 직접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북한의 도시설계연구소는 건축설계만이 아니라, 건축설계와 관련된 업무를 자체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이다. 건축설계 외에, 구조, 토목, 기계, 전기설계, 내역서 작성 그리고 측량과 지질조사부서도 설계연구소 내에 있다.
북한의 설계연구소는 대체로 ①건축설계실, ②표준설계실, ③혁명사적설계실, ④시설설계실, ⑤지질실, ⑥도시계획설계실, ⑦측량실, ⑧심사실, ⑨제작실 ⑩기요실(문헌정보실), ⑪경리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탈북자 면담).
건축설계실은 건축설계를 하는 부서이며, 한 개의 도시설계연구소는 몇 개의 건축설계실을 가지고 있다. 각 설계실에는 건축, 구조, 전기, 난방(설비), 원예(조경), 예산담당(적산, 원가산정) 등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배치되어 있어 한 부서에서 설계가 완결되는 조직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실은 20~30명으로 구성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표준설계실은 중앙에서 작성한 학교, 탁아소, 아파트, 농촌주택 등의 표준설계를 부지 등 여건에 맞게 수정하거나 보완하는 설계를 하는 부서이다. 예를 들면 지역마다 다른 동결심도를 고려하여 기초의 깊이를 변경하거나, 부지의 형태에 따라 평면 일부를 변경하는 등의 설계를 한다. 
남한도 과거에는 도시주택, 학교, 보건소, 파출소, 공장 등의 표준설계제도를 운영하였다. 표준설계도는 필요한 사람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별도의 설계비가 들지 않으며, 건축신고만으로 건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나 지형, 거주자의 특성 등을 반영하지 못하고 건물 조형이 획일적인 문제점이 있어 199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촌표준주택설계, 산림청의 목조주택표준설계 정도가 운영되고 있다. 
혁명사적설계실은 김일성주석이나 김정일위원장을 기념하는 혁명사적관, 연구소, 구술탑, 기념비, 표식비, 유래비 등의 설계, 현지지도집의 보수와 유지관리, 동상이 건립되는 경우 주변의 환경계획(조경, 조명, 보도 등의 설계) 등을 한다.
시설실은 주로 토목설계(도로, 교량, 철도, 석축 등)를 담당하는 부서이며, 지질실은 부지의 토질, 지내력 등의 조사, 설계(기초, 지정), 시험 등을 하는 부서로 직원이 직접 현장에 가서 현지조사, 관입시험 등을 수행한다. 측량실은 건축물(시설물)의 설계를 위하여 부지의 위치, 높낮이, 구획 등을 측량하는 부서이다.   
도시계획실은 북한의 도시계획법에서 규정한 지역의 도시계획(마을계획 등)을 작성하는 부서이다. 또 다른 업무는 건설명시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건설명시는 건축물이 지어지는 위치의 좌표를 확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건축설계 전 건설명시를 먼저 받아야 한다. 건설명시신청을 위해서는 개략의 배치 및 건축계획이 필요하며, 이 계획도면을 작성하는 업무를 도시계획실에서 담당한다. 
심사실은 각 부서에서 작성한 모든 설계도면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부서로 경험이 많은 설계원들로 구성되며, 각 설계실의 실장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제작실은 청사진 제작, 설계도면 책자 제작 등을 하는 부서로 설계원이 아닌 일반직원으로 구성된다. 기요실(문헌정보실, 기록보관실)은 설계도서 등 기록물을 보관하는 부서로 주로 설계원이 아닌 일반직원으로 구성되는데, 주로 당원 등 성분이 좋은 성원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경리실은 설계연구원의 인사, 회계 등 각종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이다.  
류경건설설계연구소, 평양건재설계연구소 등의 구성원 수는 수십 명 단위이지만, 대부분의 설계연구소는 300명 이상 규모라고 알려져 있다.  
북한의 설계연구소는 지배인이 책임자이며, 기사장은 기술업무를 총괄한다. 기사장 아래 부서(실)의 장이 있고, 실장 아래 조장과 설계원이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설계연구소에도 북한의 기업소와 공장의 운영방식인 대안의 사업체계가 적용되어, 당비서가 설계연구소 운영의 최종 권한과 책임을 지는 구조이다. 지배인과 기사장은 대부분 설계원 출신이며, 당비서는 설계원출신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안의 사업체계란 1961년 12월 김일성 주석이 남포시 대안구역에 있는 대안전기공장을 방문하여 지시한 공업부문 관리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김일성의 현지지도 이전 대안전기공장은 공장 지배인이 관리운영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김일성은, 지배인 유일관리제는 공장운영의 효율성에만 관심이 있고 국가정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기관이기주의적이고 관료주의적인 요소가 남아있다고 지적하며, 공장관리의 최종 권한과 책임을 공장 당위원회로 넘겼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1962년 이후 북한 공업관리체계로 정식화되어 모든 공장기업소에 적용되었다.  
그러나, 대안의 사업체계는 비전문적인 당 조직의 중앙집권적 통제가 강화하면서 공장 지배인의 권한과 역할이 축소되어 자율성과 창의성이 없이 수동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효율성도 떨어지고 관료주의가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대안의 사업체계는 1984년 제정된 합영법에 따라 재일교포가 투자하여 설립한 합영회사운영에 어려움을 야기한 주요 요인이었다. 재일교포 기업가들이 1984년 북한에 합영회사 설립을 시작하여, 한때 그 수가 120여 개에 달하기도 하였으나, 1993년 20여 개로 줄어들었다. 일본에서 사쿠라그룹을 운영하던 대표적 조총련 사업가인 전진식은, 북한이 합영기업에도 대안의 사업체계를 강요하여 공장의 실권을 당위원회가 장악하였고, 이에 따라 계약이행이라는 비즈니스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하였다(『와다 하루키의 북한 현대사(와다 하루키)』, 207, 225P). 대우의 남포공단사업도 대안의 사업체계 때문에 작업지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북한경제와 협동하자(이찬우)』.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기업의 부분적인 독립채산제를 내용으로 하는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대안의 사업체계가 과거와 같이 적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완전히 폐지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설계도면의 작성 및 검토절차는 설계원이 설계도면을 작성하면 조장과 실장이 검토하고, 심사실에서 심사 후 기사장과 지배인이 최종 확인을 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심사실에는 경험이 많고 실력이 있는 각 분야의 설계원이 배치된다. 

최근 북한에서도 설계의 정보화와 전산화가 상당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영화 <행복의 수레바퀴>를 보면 7년간 휴직하였던 설계원이 복귀하면서 컴퓨터로 도면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제작년도가 2010년이므로, 북한에서 본격적으로 건축설계에 컴퓨터가 도입된 것은 2003년 이후인 것으로 보인다.

<행복의 수레바퀴> 유튜브 캡쳐 화면

2015년부터의 북한의 5.21 건축축전 보도를 보면 전시 중 중요한 부분이 건축설계의 전산화 분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평양건축종합대학에 대한 텔레비전의 영상보도를 보아도 도면작성은 모두 컴퓨터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18년 이후의 보도에서는 3차원 설계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BIM설계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볼 수 있다.

건축축전 작품집 표지


4. 남북건축설계 협력 
그동안 북한에 건설되는 건축물의 건축설계에 많은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다. 지오디자인(대표 박운종)의 KEDO 경수로 마스터플랜과 부대시설설계가 북한지역에 시행된 최초의 설계로 추정된다. 지오디자인은 개성공단 LH개성지사 건물도 설계하였다. 단국대학교 김정신 교수는 KEDO의 교회, 성당 등 종교시설을 설계하기도 하였다. 현대종합설계는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후 금강산의 많은 시설과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도 설계하였다. 남북철도도로연결사업에는 혜원까치가 참여하여 북한지역 역사 6개소의 설계를 하였다. 그 외에 정림건축(평양과학기술대학교), 아키플랜(개성공업지구의 개발 총계획), 희림(개성공업지구종합지원센터), 삼우(개성공업지구 아파트형공장) 등의 대규모 사무소에서도 북한지역 설계를 하였다. 개성공단의 공장설계 등에 국내의 80여 개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으며, 평양의 병원 등 인도적 지원사업 관련 건축물 설계에도 여러 건축사사무소가 참여하였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여러 해 동안 북한의 건축가동맹과 협력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2018년 대한건축사협회 석정훈 회장과 조선건축가동맹 중앙위원회 심영학 위원장이 중국에서 만나기도 하였다.
남북이 협력하여 설계한 건축물은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백두산건축연구원-현대종합설계), 개성공단 통행검사소(백두산건축연구원-아키플랜), 금강산 옥류관(백두산건축연구원-한터인) 등이 있었으나, 이 프로젝트들은 백두산건축연구원이 계획설계를 하고 남한의 건축사사무소는 실시설계를 하였으므로 단순히 역할을 나누어 설계를 하는 초보적인 협력형태였다.
향후 남북관계 개선 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건축프로젝트가 추진될 것이므로 북한과 본격적인 건축설계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설계협력은 현지 특수성의 반영, 비용절감, 북한설계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건축설계 수준과 시스템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용어, 도면 작성방법, 건축기준, 업무방법 및 사고방식도 상이하므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하고 단순한 분야의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건축시공도면(Shop Drawing), 구조설계의 도면화, 전기, 기계설비 도면 작성, 수량산출(적산) 등을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외주를 주었던 분야, 작업에 인력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BIM 설계 등이 우선 협력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북한의 설계수준이 향상되면 건축설계, 구조계산, 전기 및 기계설비 설계 등으로 분야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며, 건축모형과 3D 모델링도 북한의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하여 추진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 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 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 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