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 15:13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Baeksa Village', the last shantytown in Seoul
백사마을의 마지막 봄
코로나 여파가 2년째 계속되는 가운데 또다시 봄을 맞았다. 그래도 계절은 어김없이 바뀌고 꽃은 무심한 듯 피어났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백사마을에도 봄이 왔다. 서울의 동북쪽 끝 불암산 자락에 있는 이곳은 노원구 중계동 산 104번지(현재는 중계로 2다길)라서 백사마을로 불리고 있다.
1967년 당시 개발을 이유로 정부에서 청계천 등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마련해 준 보금자리다. 8~20평 남짓한 허름한 집 1,200여 가구의 절반 이상이 현재 빈집(공가)으로 남아있다.
수년 전부터 추진해온 재개발을 앞두고 내년에 착공 예정이라고 하니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백사마을의 마지막 봄이라 생각하니 지금껏 수없이 찾아와 보았던 모습과 달리 더 각별하고 애틋하게 보인다.
남녘에는 진즉부터 봄이 찾아와 매화꽃이 한창이라지만, 코로나 때문에 좋아하는 여행도 못가고 동네 주변만 맴돌다 집 가까운 불암산 가는 걸 낙으로 여기고 내려올 때 가끔씩 들러보던 백사마을.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고향 같은 곳이기에 봄이 가기 전에 다시 또 찾아가 보았다.
이제는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고요한데 빈집 가운데서 목련이 하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집들과 함께 사진으로 남기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는데, 파란 나무대문 집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조반을 준비하고 계셨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퍼지는 밥 짓고 고등어 굽는 냄새가 요 며칠 잃었던 식욕을 자극한다.
이곳은 주로 연탄을 때느라 굴뚝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집 앞에는 연탄재가 쌓여있다.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올라서니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 앞에 연둣빛으로 물이 오른 수양버들이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 아래엔 샛노란 개나리가 무리 지어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리고 게딱지 같은 납작 지붕 너머로 고층아파트들이 딴 세상처럼 보이고 또 그 너머로 북한산이 보인다.
다시 골목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다 보니 옹기종기 화분에 심어진 파와 부추가 파릇파릇하다. 얼마 후면 빈 화분에도 고추와 호박 모종이 심어질 것이다. 마을을 벗어날 즈음, 하얀 페인트칠이 반쯤 벗겨진 건물 벽에 누군가 노랗고 빨간 꽃들을 어설프게 그려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이 모두가 얼마 후면 사라질 모습들이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반세기 이상의 수많은 사연과 애환을 간직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의 터전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터의 무늬가 없어진 또 하나의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를 백사마을의 봄이 더 애처롭게 느껴지는가 보다.
개나리와 목련은 반쯤 지고, 마을 입구 한편엔 마지막으로 피어난 벚꽃이 화사한 빛을 발하며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99년 만에 가장 먼저 벚꽃이 피었다는 올봄엔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어났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 때문이란다. 먼저 핀 꽃은 벌써 지고 봄을 제대로 느낄 사이도 없이 그렇게 봄날은 가고 있었다.
백사마을 이야기
1967년 초기에는 그야말로 산비탈의 어설픈 판자촌이었다가, 10년 후인 1978년경에야 마을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때는 마을 초입에 시장통이 형성되고 발 디딜 틈 없이 붐빌 정도로 활기가 넘쳤다. 하루에 몇 번 허허벌판 외길을 따라 들어오는 버스를 타려는 마을 사람들의 줄은 끝이 없었고, 눈이라도 올라치면 확성기를 통해 안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방송이 울리자마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삽시간에 눈을 치우던 풍경들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 무렵 전기 공급도 시작되었지만 물 공급이 원활치 않아 공동 우물을 길어 사용하기도 했다. 교통은 불편했고 살림은 모두 옹색했지만 더할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자연 속에서 따뜻하고 끈끈한 공동체 생활이 이어졌다(노원구 소식지 2021년 3월호 중, 백사마을에서 43년을 살아온 곽영일 통장 인터뷰 일부 정리).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
주소로부터 명칭이 유래된 마을, 백사(104)마을 재개발구역의 사업시행계획이 오랜 기간의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인가되었다.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2년 만으로, 1967년 마을이 형성된 후로부터 54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백사마을은 앞으로 사업시행과 함께 개발과 보전을 통한 총 2,437세대(아파트 1,953세대, 다세대 임대주택 484세대) 규모의 상생형 주거 단지로 변신하게 되는데, 현재 75%의 주민이 이주를 완료한 상태이다.
사업시행 초기에 우리 노원구지역건축사회(회장 이종호)에서는 노원구의 건축문화 발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결의문(아파트 위주의 도시개발 반대, 저층·저밀도의 친환경적인 도시계획 추진 등 5개항)을 채택하여 서울시에 건의하고, 지역 신문에도 기고하는 등 공영개발사업에 따른 우려를 지적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백사마을은 도시재생과 재개발을 결합한 방식으로 재정비된다. 기존 골목길을 보존하고 아파트와 주택을 결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재개발이다. 이런 기존 주거지 보존 방식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사업의 시초가 될 것이다.
60년 된 백사마을 2022년 착공
백사마을은 1967년 도심 개발로 청계천·창신동·영등포 등에서 강제 철거당한 주민이 이주하면서 형성된 주거지다. 2009년 주택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돼 개발이 가시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사업성 문제, 건축 방식을 둘러싼 갈등 등으로 사업이 지연돼왔다. 그러던 지난 3월 2일, 노원구는 중계본동 104번지 일대 백사마을(18만6965㎡) 재개발 예정지에 대한 사업시행계획을 인가했다고 밝혔다. 계획안에 따라 60여 년 된 노후 저층 주거지가 총 2,437가구 규모의 주거단지로 탈바꿈한다.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지 12년 만이다. 백사마을은 일반적인 재개발과 달리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어우러진 주거지 보존 방식이 적용된다. 아파트는 지하 5층~지상 최고 20층, 34개 동, 전용면적 59~190㎡, 1,953가구로 지어진다. 일반주택은 주거지 보전사업으로 지하 4층~지상 4층의 다세대주택 136개 동, 484가구가 들어선다. 전용면적은 30~85㎡ 미만이다. 9명의 건축사가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다양한 층수의 아파트와 일반주택을 적절히 배치해 자연경관을 살리고, 골목길 등 기존 지형을 일부 보존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도록 했다고 노원구는 설명했다.
지역 역사를 보전하기 위한 시설도 들어선다. 전시관에 각종 생활 물품과 자료, 행사·잔치·인물 등의 사진을 수집하고 전시해 예전 동네 모습과 마을 주민들의 삶의 기억을 보전할 계획이다. 2025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올해 하반기 시공사를 선정한 뒤 2022년 관리처분 계획 인가를 거쳐 착공 예정이다.
개발형 도시재생 성공 모델 되나
정비업계에선 백사마을 개발이 현 정부가 추구하는 개발형 도시재생사업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백사마을은 2008년 서울시가 그린벨트를 해제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개발 논의가 시작됐다. 2011년 9월에는 ‘주거지 보전구역’으로 지정돼 지역 원형을 최대한 살린 재개발 방식이 결정됐으나, 2016년 1월 사업시행자였던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손을 떼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재개발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은 2017년 7월 SH(서울주택도시공사)가 공공사업시행자로 나서면서다. 골목길 보존, 아파트와 주택이 결합된 개발 방식도 그때 결정됐다. 재개발이 도시재생을 접목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다른 정비 사업에도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하고 있다.
글. 이종호 Lee, Jongho 시원 건축사사무소
이종호 시원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연세대 공학대학원을 졸업(공학석사)했다. 현재 시원건축사 사무소 대표이자 서울특별시건축사회 풍수지리연구회 회장 을 맡고 있다. 제1회 간향건축문학상 수상 및 행정중심복합 도시(세종특별자치시) 수필 공모전에서 당선(국무총리상)하 였고, 노원문화정보센터 등의 현상설계에 당선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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